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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 Dec 12. 2018

마냥 친절하진 않은 스위스 산타. Samichlaus

아이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11월 말이었다. 일부 상점은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 시작했고, 거리엔 반짝거리는 별과 은하수를 닮은 조명들이 장식되었다. 슬그머니 마을 중앙 마켓 가운데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넌덜머리를 냈다.


"아니, 이제 겨우 11월 말인데 벌써 크리스마스 타령이야. 이러면 정작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쯤에는 벌써 질려 있다구... 이런 연말 분위기는 다 상술이야, 상술!"


이 사람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흐리고 찌뿌드드한 스위스의 겨울 날씨에 이런 상술 분위기라도 없으면 오늘 내일 바로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 나로서는 이른 크리스마스가 마냥 반갑다. 특히 며칠 전에는 별 이유없이 기분이 좋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햇빛이 살짝 30분 정도 비춘 날이었나-

혹시 겨울에 스위스 여행을 올 생각이라면, 절대로 날씨를 미리 봐두어야 한다. 비가 오면서 동시에 바람이 분다면, 현지화가 되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을 시에 상당히 낭패를 보게 된다. 옷이 예쁘고 스타일이 좋을수록 스위스의 겨울은 당신을 슬프게 할 수가 있다.


아무튼 이곳의 아이들도 세계의 모든 아이들처럼 산타를 기다리고, 엄빠인 줄 알면서도 산타를 기다리고 그럴테지만, 그 산타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산타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내가 생각해 왔던 산타는 어메리칸 스타일의 코카콜라 산타였던 것 같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빨간 코의 루돌프와 함께 저 밤하늘을 날아 굴뚝으로 들어와 (요즘 굴뚝 있는 집이 많지 않지만...) 아이들이 걸어놓은 양말 안에 선물을 놓고 가는 어메리칸 산타 말이다.


늘 기분 좋아보이고 행복한 느낌 그 자체인 코카콜라 산타 할아버지


매년 12월 6일이면, 스위스에서도 스위스의 산타 사미클라우스(Samichlaus)가 아이들을 만나러 온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오진 않고, 매우 현실적으로 눈이 오면 그 눈을 밟고 그의 동료 쉬무츨리(Schmutzli)와 당나귀를 끌고 저벅저벅 걸어 온다.


일단 사미클라우스는 산타클로스처럼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다. 그의 원형은 뮈라(Myra)의 주교였던 성인 니콜라우스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구제에 힘을 쓴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 및 전설이 많은데, 그 중 하나는 가난에 찌들어 딸 셋을 시집 보낼 수 없어 매춘부로 팔아 버리기로 한 아버지에게 지참금이 될만한 황금을 창가에 몰래 두었다는 거다. 몰래 선물을 주는 모습이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몰래 와서 선물을 두고 가는 산타클로스와 닮았다.


Alexa Peyrov의 성화 속 성 니콜라우스의 모습

아무튼 다른 성 니콜라우스의 현신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와서 선물을 주던지, 스위스의 사미클라우스는 쉬무츨리와 당나귀를 끌고 자박자박 걸어와서 선물(주로 땅콩, 귤, 초콜렛, Lebkuchen렙쿠흔;진저브래드)을 준다. 물론 그것이 끝이 아니고, 그의 친구(?) 쉬무츨리가 같이 온 이유가 있다.


뭐? 넌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고???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랬다.


그런데 착하지도 않았던 아이가 선물만 받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가야 되겠는가? 쉬무츨리는 그다지 착하지 않았던 아이들을 자루에 넣어 데려간다....


물론 이건 다소 아동 학대적 요소가 있어서 더는 이루어지지 않는 전통이지만, 사미클라우스 옆에서 아무런 말없이 시커먼 모습으로 서 있는 쉬무츨리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조용한 카리스마로 군림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미클라우스가 보통 상당히 커다란 성인 남자가 한다면, 쉬무츨리는 그보다 더 큰 사람이 자주 역할을 떠 맡는다. 무엇보다 쉬무츨리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흠...크흠흠..이렇게 목을 가다듬는 정도이다.


이렇게 라인업!
한 루체른 출신 여성의 증언(?), 출처: swissinfo.ch


그리고 그 전통은 단순히 자루에 담아가는 것으론 그치지 않은 모양인데, 위에 서술되듯이 쉬무츨리 복장을 한 십대들이 아이들을 잡아다 빗자루로 팼다니- 요즘은 일절의 손찌검도 절대 안되고, 폭언이나 심한 학업 부담을 주는 것도 학부모가 교사와 상담해야 하는 걸 보면 참 급변한 세태이다.


하긴 한국에서도 그랬다. 난 중학교때 평생 맞을 분량의 매를 다 맞은 것 같은데, 하필 사춘기와 겹친 공포스러운 학교 분위기는 어린 나를 굉장히 공격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남학생들은 얼마나 맞고 자랐는지 아니면 생존했는지 은근히 훈장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여기서도 저기서도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쉬무츨리도 그런 세태를 타서 얌전해(?)졌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가능하면 눈을 사미클라우스에게 맞추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예쁜 목소리와 태도로 이야기한다.


어쨋든 점잖고 상냥해 보이는 사미클라우스는 저 쉬무츨리를 같이 데려온 사람 아닌가.


백화점 Globus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운영하는 트램. 아이들만 탈 수 있다. 사미클라우스가 운전하는...건가?


그런 사미클라우스와 쉬무츨리의 이미지도 아마 글로벌 시대에선 외국 친구들과 경쟁을 해서 좀 더 순해진 것 같다. 저렇게 트램도 운행하고, 마트에서 선물을 나눠주기도 하는 상업적인 형태로 많이 등장하니 말이다.


유치원에도 왔다. 선물로 받은 땅콩, 귤, 초콜렛이 든 자루와 그리띠밴츠.
링크: 그리띠밴츠, 빵을 왜 사람 모양으로 만드는가

이 글을 쓰며 다른 나라의 사미클라우스와 쉬무츨리에 대해서도 많이 읽고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게 같은 원형에서도 각각 문화에 맞게 변한 모습이 재미있었다.

요점은 대부분 크리스마스의 시간을 축복을 나누고, 가능하면 그 와중에 아이들 교육도 잊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이 생각하고 사는 건, 다소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생각에 파묻혀 안개 자욱한 12월도 중순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간만에 정말 맑은 날
마을에 선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될 시간을 기다리는 잘린 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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