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띠밴츠 Grittibaenz
스위스에 눌러 앉으러 온 것이 2012년 2월이다. 아이 둘 낳고 머릿 속이 뿌옇게 변해버려서- 출산 후 건만증과 기억상실증이 겹쳐 그게 2012년 초의 겨울인지 후반의 겨울인지는 희미하지만 처음에 그리띠밴츠를 보고 꽤나 식겁했던 생각이 난다.
마트에서 보고 식겁하여 집에 온 뒤, 아직 학생이었던 남편에게 물어봤었다. 도대체 빵을 왜 아기 모양으로 만들어 파는 거냐고. 저걸 먹는거냐고. 먹으면...그러니까, 저걸 먹으면, 어쩐지 식사나 간식 느낌보다는 도살의 느낌이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그렇게 식겁하다가도 인간이란 동물은 이렇게 적응을 잘한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더니, 내 손으로 그리띠밴츠를 사서 애들 손에 들려준다. 먹으라고.
하지만 간혹 궁금했던 건, 도대체 왜 굳이 빵 모양을 이렇게 해서 파느냐 하는 것이다. 귀여워서? 설마...
놀라운 것은 이건 아기 모양도, 그보다 더 큰 아이도 아닌- 나이가 든 남자가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여 만든 빵이란 거다. 어째서 그런 모습을 굳이 형상화해 빵까지 만들어 먹느냐고 묻는다면, 그 남자는 사미클라우스와 한 패(?)인 쉬무츨리라고 대답해 주련다.
링크: 사미클라우스와 쉬무츨리에 대한 글
그리띠밴츠의 그리띠(gritti: gritte, grittle, grättle 엇비슷한 같은 뜻이 참 많지만 지역색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모양새가 아니고 좀 허세나 위협을 가하려고 부러 취한 자세이다. 밴츠는 베네딕트(Benedikt)라는 당시 한스(Hans)만큼이나 흔하던 이름을 줄여 부르던 걸 따온 것이다.
한국식으로 생각하자면 철수같은 (이젠 전혀 흔하지 않지만, 살면서 철수를 진짜로 본 적은 텔레비젼에서 뿐이다.) 이름을 그냥 뒤에 갖다 붙인 것이다.
그래서 바젤에서는 그냥 그래띠마-(graettimaa)그냥 철수 대신 남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선 오직 그리띠밴츠만 들어봤을 뿐, 기차타고 40분이면 가는 곳에서 벌써 다른 이름으로 부르니 외국인으로선 참 배우는 게 일이다. 하긴 바젤은 양반이다. 뷘터투어(Winterthur) 지역에선 엘꺼마-Elggermaa라고 부른단다. 그게 누구예요? 전혀 다른 이름이잖아!!
아직 안 끝났다. 계속 곰방대 들고 나를 헷갈리게 했던 독일의 쉬투텐케를(Stutenkerl)이다. 이 친구는 성 니콜라우스-그러니까 사미클라우스를 형상화한 거란다. 그러니까 스위스에서는 쉬무츨리, 독일에서는 사미클라우스를 형상화 하는 거랄까.
저 곰방대는 사실 -
무려 주교의 지팡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굳이 곰방대여야 했는지- 남성성을 나타내려는 시도였다는 글도 본 적 있지만 저 곰방대 굽은 모양과 주교의 지방이의 구부러진 모양이 사실 비슷해서 원래는 지팡이로 표현하려 했지만 쉽지 않아서 간단하게 만들다 보니 와전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렇게 비슷한 친구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친구도 만나게 될 것 같지만,
내일 있는 한국어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내 생활권 밖의 친구이기도 하니까 언젠가로 미루기로 한다. 한글을 혼자서 먼저 공부하고 온 사람이라고 하니, 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