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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 Jan 05. 2019

새해 첫눈

 언제부턴가 해가 바뀌는 것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기 시작했다. 될 일은 될 것이고, 안 될 일은 역시 미완 상태로 머무르리란 것을 알게 되어서- 또는 노력으로도 되는 일이 있고 아닌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인지, 진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한 해가 가면 와, 벌써 올 해도 다 갔구나 싶고 새해에는 취리히에 있는 한인마트에 가서 떡국 떡을 사서 떡국을 해 먹을 정도의 부지런이 내 안에 남아있으면 작게나마 새해 기분을 낼 수 있다.


이웃을 만나면 다들 짧은 인사로 알레스 구테 Alles Gute!나 구텐 루취 Guten Rutsch! 하며 새해 인사를 건네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한국어 인사에 내 마음이 더 코옥 아리는 것이 전형적인 향수병 증세일테다.


넷플릭스에서 밀린 한국 드라마를 실컷 보며, 그리고 최근에 새로 생긴 한국어 개인 교습시간에 수업이 끝나고도 수다를 떨며 부족한 한국어 지분을 채운다.


반가운 새해 첫눈은 이 세상 풍경을 비슷비슷하게 만든다. 문득 서울에 있을 때 눈 오던 날 다니던 회사가 있던 언덕을 조심조심 오르고 내리던 기억이 나며, 향수병이 그새 좀 사라져 버린다.



눈이 하염없이 내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마냥 덮을듯이 쌓인다. 이후에 녹아 진창을 만들지라도 일순간 모든 것이 하얗게 잊혀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까만 초콜렛 케이크 위에 슈가 파우더처럼. 하긴 케이크는 그 하얀 슈가 파우더 밑에 더 맛있는 케이크가 있으니, 모양이 비슷해도 본질이 전혀 다르겠구나...


닉은 아빠와 함께 도서관 책 반납과 장보기 미션을 달성하러 나갔고, 노아는 공식 엄마 껌딱지니까 발코니에서 쌓인 눈을 장난감 삼아 논다. 원래 유리로 외벽을 하려던 공간인데 해괴한 건축법의 압박으로 트인 공간이 되어 불만이었다. 그러나 유리가 없어서 눈이 들어와 쌓이기도 하였으니 마냥 나쁘지는 않다.


새해에 바라는 게 그냥 그런 것 같다. 세상에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두루 보고, 어제 그랬듯 오늘도 내일도 사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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