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떠다니자
나에 팔에는 조그마한 타투가 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float'이라는 단어를 필기체로 새긴 것인데 하게 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20대 시절부터 좋아하는 모델이 있다. '프레야 베하 에릭슨'이라는 이름의 덴마크 출신 모델인데 그 당시 중성적인 스타일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또 목에 새겨져 있는 'float'이라는 타투가 특히 더 인상적이었다.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위치에 굉장히 크게 새겨져 있던 단어.
그 단어는 오래오래 내 뒤를 쫓아다녔다. 언젠가 타투를 하면 나도 그 단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똑같이 따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더 적당한 단어가 없을까, 어찌어찌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래도 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보다 명확하게 나에게 닿는 언어가 없었음 이제는 인정했기 때문.
나는 infj이다. 인터넷에서 하는 mbti는 다 간소화된, 신뢰할 수 없는 테스트라고 치부하면서도 사실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할 적에는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자주 써먹기도 하고, 꽤 잘 먹힌다.
근데 infj라는 이 프로계획러에게 float이라는 단어는 사실 굉장히 이질적인 면이 있다.
float : (물 위나 공중에서) 떠[흘러]가다[떠돌다]
나는 지금까지 계획이 틀어지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 성격은 지금도 여전한 구석이 있다. 이런 성격은 좋은 면이 있으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지점들이 왕왕 생기는 것이다. 특히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아니지 회사의 특성상 계획했던 일이 늘 순항하지 않는 편인데 초반에는 그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돼서 애를 먹었다. (근데 열에 한둘은 순항해야 하지 않나? 회사일은 늘 열에 열이 엎어지는 기분)
그래서 조금은 떠다녀도 되지 않겠어?라는 심정으로 새겼다. 나는 수영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그냥 물에 둥둥 떠있을 때에 가장 평온함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획이 없어도 되고, 계획이 어그러져도 괜찮으니 가끔은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자고. 타투는 나를 달랜다. 가령, 사주에 나무가 없어서 숲을 가까이하고 등산을 다니는 그런 의식의 한 종류라고 보면 되려나.
무튼, 샤워를 할 때마다 물방울이 맺혀있는 타투를 보면서 문득문득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조그만 물길을 터준 것 같은 그런 기분. 사람이 너무 빡빡하기만 하면 안되잖아? 가끔은, 떠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