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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저 간판 아래 숨은 이야기를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월간 옥이네 2023년 3월호(VOL.69) 여는 글

색색의 회전간판이 골목 어귀를 도니 또 하나 더 등장합니다. 그리 오래 걷지도 않았는데 한 집 건너 또 한 집, 미용실이 나오는 걸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옥천읍 중심가를 걷는 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2023년 1월 기준 옥천군에 등록된 미용업소는 모두 122개, 이 가운데 100개가 넘는 미용실이 옥천읍에 몰려있습니다. 여기서 또 50여 개가 옥천읍 금구리에 있고요. 금구리는 전통적으로 상권이 발달한 지역입니다. 그렇다 보니 미용실이 많은 것도 일견 당연한 일인데, 그래도 50개가 넘게 모여 있다는 건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하고 많은 업종 중 미용실이라니.


그런데 이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리지요.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떠올려본다면 말입니다. 아이를 기르면서 혹은 가계를 건사하면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터,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성이 일하기 좋은 양질의 일자리가 지역에서는 손에 꼽힌다는 것도 이런 상황의 간접적인 배경이 되지 않을까요?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추측입니다만.


읍 중심가를 걷다 문득, 이토록 많은 미용실 간판 아래 숨은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옥이네 편집국은 지난 한 달 동안 금구리 미용실 50여 곳의 전화벨을 울리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결과 총 9곳의 미용실이 저희의 요청에 응답했는데요. 지면의 한계로 밀도 높은 삶의 이야기를 다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더불어 이번에 취재하지 못한 나머지 미용실에도 자꾸만 미련이 남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이야기를 들어요. 그냥 저기 큰 미용실 가 봐.”, “어휴, 뭐 자랑이라고 인터뷰를……. 찾아와 준 건 고마운데, 괜찮아요.” 이 말 뒤에는 또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요? 미용실 9곳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다 보니, 궁금함이 더 커집니다. 한편으로는 “인터뷰로, 기록으로 남기기에 충분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이야기를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독 이번 호에는 지역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여성 기술자로 꿋꿋한 삶을 살아온 9명의 미용사를 비롯해 여성 농민, 지역에서 재미난 일을 꾸려가는 여성 청년과 어린이, 여성 예술가와 여성 활동가 등 넘기는 페이지마다 여성의 얼굴이 가득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환한 웃음 뒤에 묻어나는 고단함을 알고 있기에 희망찬 이야기에도 시큰한 감정이 앞서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저만의 감정 과잉이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열심히 만든 3월호와 함께 독자 여러분께 기분 좋은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월간 옥이네가 2023년 우수콘텐츠 잡지로 선정됐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큰 응원과 애정, 그리고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가치를 알아주시는 독자 여러분이 있어 오늘도 힘을 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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