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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Jun 17. 2022

또다시 여름

아직 매미는 울지 않았다

 

 J를 만났다. 3년 만에 재회였다. 그녀는 당시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잘랐고 반대로 짧은 머리였던 나는 이제 제법 중단발에 속하는 편이었다.


 나에게 있어 연희동은 어색한 동네이다. 홍대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되는 거리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쉬이 닿질 않았다. 벌써부터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길들여진 탓일까. 

 바질 페스토 샌드위치와 트러플 오일 감자튀김을 주문한 뒤 자리를 잡았다. 가게의 넓은 유리창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덥지는 않았다. 바람이 불면 그런대로 선선한 초여름 느낌이 물씬 났다. 천장에는 갓 대신 챙 넓은 모자가 씌워진 전등이 달려 있었다. 겨울이 되면 모두 털모자로 바뀐다고 J가 말했다.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그마치 3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의 안부를 게을리 물은 탓이다. 어떤 일은 가볍고, 또 어떤 일은 이제야 겨우 웃어넘길 수 있었다. 


  오늘은 J로부터 삶을 담담하게 살피어내는 용기를 얻었다. 나는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용기를 얻는다. 사실 용기보다는 새로운 마음가짐에 가깝다. 하지만 이 거친 세상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이니, 어쨌든 나는 이걸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J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즐거웠어. 잘 가, 연락할게. 들어가.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또 만나."


 매 계절을 힘들게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배웅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너무 덥지 않은 여름과 너무 춥지 않은 겨울 등을 인사말로 쓴다. 

 버스에 올라타자 습한 마스크 너머 찬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다. 안팎의 온도가 제법 차이가 나는 게 이제야 여름이 실감 났다. 아직 매미는 울지 않았다. 여름이 덜 여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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