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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Jul 18. 2021

글의 계절성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이므로 굳이 시간 내어 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교수님과 전화 상담을 마치고 감사 문자를 보내는 그 짧은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울컥 솟았다. 결론적으로 울지는 않았지만 혼자만 앓고 있던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힘은 절대 물리적이지 않아서 결국 나의 미래를 이끌어내는 일은 나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코어 근육도, 생각하는 근육도 잘 형성되지 않은 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다. 교수님은 나더러 무엇이든 좋으니 열심히 하라며 용기를 주셨다. 


 나에게 있어 여름은 용기가 나는 계절이다. 유난히 단단해 보이는 구름과 힘찬 매미 소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 더운 여름날 긴 카디건을 챙겨 외출을 한다는 것(챙기지 않는다면 냉방병과 열사병을 동시에 겪을 수 있게 된다) 자체부터 이미 용기 있는 일인 것이다. 작년과 다를 바 없이 올여름에도 마스크가 필수 옵션으로 추가되었다. 몸과 정신은 물렁하게 녹아내리지만 어째서인지 마음 만은 굳게 다져지는 계절이다.


 뉴스는 매일 폭염 주의보를 띄우며 오늘보다 더 더워질 내일을 예고한다. 오늘도 여간 더운 날씨였지만 내일은 이보다 더한 온도가 예상될 것이란다. 그럼 나는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런 날씨에는 에어컨을 틀고 요리하는 것도 좋지만 부엌에 달린 작은 창문 너머 불어오는 더운 여름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칼질하는 것을 선호한다. 불을 쓰는 일은 여전히 고역이지만 가지런히 손질되는 재철 야채들을 보며 여름을 만끽한다.

 여담이지만 이맘때즘음이면 영화 '토토로'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따라 하고 싶어 진다. 메이와 사츠키가 계곡물에 담가 뒀던 오이와 토마토를 아주 맛있게 먹는 장면인데, 나는 두 야채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에 올려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마음을 굳게 먹는 내가 하는 일들이라곤 '끝내주게 밥 먹기', '야무지게 잠 자기' 이런 것 들뿐이다. 사실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인생이 꽤 행복할 것이라는 큰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 글로 쓰기에는 모자랄 만큼 아주 현란하고도 어리둥절한 변화를 겪어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나는 살이 2kg 정도 빠졌고 머리카락은 조금 푸석해졌으며 엄마 말로는 키가 조금 큰 것(2n 살에도 성장판이 충분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듯하다. 기특하다 나의 성장판!) 같았다. 아주 재미없는 회색의 어른과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낭만은 작은 불씨처럼 버티어 내다가 이내 사라졌다. 나의 글은 대부분 로망에서 온다. 철없고 유치한 그런 망상과 주제를 바닥에 깔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유형인데, 버팀목이 되어줄 로망이 사라지니 글을 쓸 엄두가 나질 않았다. 글을 업으로 삼고 싶다던 사람이 글을 쓰는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의 글은 계절을 탄다. 고로 나뭇잎이 시들고 입김이 떨어질 때 즈음 감성을 충전한 채 글을 써내려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음 글을 쓸 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나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므로 나의 변화가 가장 기대되는 독자는 사실 스스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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