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매미는 울지 않았다
J를 만났다. 3년 만에 재회였다. 그녀는 당시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잘랐고 반대로 짧은 머리였던 나는 이제 제법 중단발에 속하는 편이었다.
나에게 있어 연희동은 어색한 동네이다. 홍대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되는 거리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쉬이 닿질 않았다. 벌써부터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길들여진 탓일까.
바질 페스토 샌드위치와 트러플 오일 감자튀김을 주문한 뒤 자리를 잡았다. 가게의 넓은 유리창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덥지는 않았다. 바람이 불면 그런대로 선선한 초여름 느낌이 물씬 났다. 천장에는 갓 대신 챙 넓은 모자가 씌워진 전등이 달려 있었다. 겨울이 되면 모두 털모자로 바뀐다고 J가 말했다.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그마치 3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의 안부를 게을리 물은 탓이다. 어떤 일은 가볍고, 또 어떤 일은 이제야 겨우 웃어넘길 수 있었다.
오늘은 J로부터 삶을 담담하게 살피어내는 용기를 얻었다. 나는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용기를 얻는다. 사실 용기보다는 새로운 마음가짐에 가깝다. 하지만 이 거친 세상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이니, 어쨌든 나는 이걸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J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즐거웠어. 잘 가, 연락할게. 들어가.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또 만나."
매 계절을 힘들게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배웅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너무 덥지 않은 여름과 너무 춥지 않은 겨울 등을 인사말로 쓴다.
버스에 올라타자 습한 마스크 너머 찬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다. 안팎의 온도가 제법 차이가 나는 게 이제야 여름이 실감 났다. 아직 매미는 울지 않았다. 여름이 덜 여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