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베네딕트와 프렌치 토스트
2월 초 대학 친구와 함께 일본에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는 하루에 다섯 끼를 먹겠다는 다짐을 하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고 여행 자금의 80% 이상을 먹는 곳에만 투자하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국물을 잔뜩 머금어 이불처럼 폭신해진, 씹을수록 달콤한 유부를 얹은 우동, 구수한 단맛이 도는 편의점의 구운 푸딩, 호텔 조식으로 먹은 정갈한 밥과 반찬들까지.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었다.
일본 후쿠오카 텐진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 '아이보리쉬(Ivorish)'는 여행 계획을 세움과 동시에 친구가 강력하게 추천한 가게다. 여행객들이 포스팅한 가게 사진을 보는 순간 일본 브런치에 대한 로망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언젠가 일본 영화에서 봤던 고등학생들이 방과 후 디저트 가게에 앉아 케이크를 향해 '귀여워~'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리고 가게를 향하던 그날 아침, 흐린 하늘에선 비가 죽죽 쏟아졌다.
자연광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을뿐더러 인터넷에서 미리 보았던 2층 자리는 예약을 하지 않아 이용할 수 없었다. 결국 1층에 놓인 좁고 높은 의자에 앉아 에그베네딕트와 프렌치 토스트, 그리고 오렌지 주스 두 잔을 주문을 했다.
에그 베네딕트의 홀랜다이즈 소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산미(아마도 레몬즙)가 과하게 들어가 혀 양쪽이 아려오는 홀랜다이즈 소스가 아니었다. 소스에서 우러나는 버터의 녹진한 풍미와 두툼한 빵 그리고 햄의 짠맛을 중화시키는 수란까지, 먹는 내내 에그 베네딕트야 말로 브런치의 이데아라 생각했다.
프렌치 토스트와 함께 나온 우유 아이스크림이 녹기도 전 에그베네딕트를 모두 먹고 디저트로 손을 뻗었다. 계란물을 묻혀 구운 달달한 빵 사이에는 새콤한 베리 콤포트(과일에 설탕을 넣고 졸여낸 것)가 듬뿍 들어 있다. 너무 달기만 했더라면 금방 물렸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부드럽게 휘핑한 생크림을 얹어 한입 가득 행복하게 먹었다. 단지 내 상상에 못 미쳤을 뿐, 절대 실망스러운 식사는 아니었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1층엔 커피를 주문한 중년과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묵묵히 프렌치 토스트를 먹던 직장인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화사함보다는 우중충한 분위기에 가까웠다. 다시 한번 미디어의 대단함을 느꼈다. 어쩌면 외국인들도 한국사람들이 매일 행복하게 치맥을 즐기는 줄 알겠지. 그건 분명 비만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