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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슬욱 Jul 10. 2019

홍콩 현지인들과 즐긴 마작 체험기

홍콩에서 발견한 마작의 매력

    비비안은 쉬는 날에 종종 가족들과 함께 마작을 치곤 했는데, 한 번 쳤다 하면 기본 7시간이 넘어가서 처음에는 ‘도대체 마작이 얼마나 재미있길래 7시간을 연달아서 치지?’라고 생각하며 조금 의아해했다. 컴퓨터 게임도 서너 시간 이상 하면 질리기 마련인데 마작은 그렇지 않은 걸 보니 게임 이상의 사람을 끌어당기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에 그런 것 같다고 막연히 추측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홍콩에서 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비비안의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마작을 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보통 초보자가 게임을 배우려고 하면 나머지 참가자들의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게임에 안 끼어줄 법도 한데,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마작에 큰 흥미를 보여서 그런지, 아니면 “친소유별”이라는 개념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비비안의 지인들은 모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내가 마작이라는 게임을 완전히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낯선 장소에서 생각보다 큰 관심을 받다 보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들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마작을 습득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현지 사람들처럼 자연스러운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과 같이 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까지는 키우게 되었는데 치다 보니 7시간은 우습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 17시간도 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홍콩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작을 치더라도 다음 날에 부담이 없는 금요일, 토요일, 그리고 공휴일 전 날에 집에 삼삼오오 모여 마작을 치곤 하는데, 요즘같이 낮 기온이 33도, 습도는 80%가 넘어가는 덥고 습한 여름에는 그 모임이 더 잦아진다. 홍콩의 여름날엔 집에 앉아있기만 해도 진이 빠지고 샤워를 하고 나오자마자 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진기한 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이럴 때에는 거실에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몇 시간 동안 늘어지게 마작을 치는 게 제일이다. 마작을 치면서 홍차, 녹차, 우롱차 등의 차를 한 잔씩 따라 마시고 중간중간에 과일도 먹다 보면 더위는 금세 잊힌다. 홍콩에서 중년 이상 세대 중 마작을 못 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며, 그들과 종종 문화적인 단절이 일어나기도 하는 그 아랫세대인 20~30대도 체감상 약 80% 정도는 마작을 칠 줄 아는 것 같다. 이 사실을 인지한 다음부터는 홍콩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한 일종의 전략으로 마작을 이용하게 되었다. 가령, 일터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비비안의 지인을 소개받았을 때 처음에는 필연적으로 서로 어색하기 마련인데, 그때 “마작을 치는 걸 좋아한다”, 혹은 “마작 좋아하냐?”라고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건네면 무심한 듯했던 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어떤 연유로 마작을 배웠냐”, “한국에도 마작 같은 게임이 있냐” 등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다시 건네곤 하기 때문에 처음 만난 홍콩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을 때는 이런 식의 질문을 많이 건네게 되었다. 

가지런히 정렬된 마작 패들로, 게임 시작하기 직전 모습이다.

    중국은 땅이 워낙 넓기 때문에 뭐든지 그 형태가 다양한데 언어도 그렇다. 표준어인 보통화 (官話, Mandarin)를 중심으로 수많은 방언들이 지방마다 존재한다. 중국의 방언은 일반적인 국가의 방언과는 달리 그 형태와 쓰임이 표준어와는 아주 달라, 표준어와 아예 다른 언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광동 지방에 있는 홍콩의 경우도 표준어가 아닌 광둥어를 사용하는데 그 형태는 표준어와 매우 달라 두 언어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또, 지역을 광동 지방으로만 한정해 본다고 하더라도 지방마다 광둥어의 형태와 쓰임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홍콩의 광둥어는 광저우의 광둥어, 마카오의 광둥어와 상당 부분 비슷하지만 미세하게 다르다. 현지인이 아닌 이상 그 차이를 구분해 내기는 매우 힘든데, 비비안은 홍콩이 아닌 다른 지방의 광둥어를 들으면 귀신같이 구분해 내고 심지어 언어 사용자가 어느 도시 사람인지 맞추는 경우도 많다. 마작도 중국어와 비슷하다. 지역마다 그 형태가 달라 패의 개수가 다르기도 하며, 점수를 내는 방식도 다르다. 따라서 “마작은 어떤 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형태는 다양해도 한자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중국의 수많은 언어들처럼, 마작의 경우에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게임 원리는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홍콩 마작의 경우 총 144장의 패가 있으며 참가자는 4명 고정이다. 각 참가자는 13장의 패를 갖는다. 반 시계방향으로 차례가 돌아가며, 자신의 차례에 판에 정렬되어 있는 한 장의 패를 가져와 확인한 뒤 본인 소유의 패 중 하나를 버리면 다음 사람의 차례로 넘어간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갖고 있는 13장의 패를 손에서 가장 먼저 없애는 사람이 승리하는데, 패는 크게 5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공 모양의 패로 筒子(통지)라고 한다. 패에 새겨진 공의 개수는 한 개부터 아홉 개까지 있으며 (9종류), 각각의 패는 “숫자+筒(통)"의 형태로 불린다. 예를 들어 두 개의 공이 새겨져 있는 패는 “二筒(이통)”이라고 부르고 여덟 개의 공이 새겨져 있는 패는 “八筒(빳통)"이라고 부른다. 각 패는 4장씩 있다. 두 번째는 대나무 모양의 패로 索子(썩지)라고 한다. 패에 대나무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대나무의 개수는 한 개부터 아홉 개까지 있으며(9종류), “숫자+索(썩)”의 형태로 불린다. 각 패는 4장씩 있다. 세 번째는 萬子(만지)라고 하며 패에 萬(만)이라고 하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1만부터 1만 단위로 9만까지 있고 각각 4장의 패가 있다. 萬子(만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숫자+만(萬)”으로 불린다. 다음은 番子(판지)라고 하는 특별한 패로 中(중)、發(팟)、白板(박반)、東(똥)、南(람)、西(세이)、北(박) 글자가 새겨진 패가 각각 4장이 있다. 마지막은 花(파)라고 하는 패 종류로, 추가적인 점수 합산에 사용되는 일종의 보너스 패다. 

    갖고 있는 패를 없애는 방법은 똑같은 패 3장을 모으는 방법인 碰(펑)과 연속된 3개의 숫자를 모으는 방법인 上(성)이 있다. 예를 들어 萬子(만지)의 三萬(삼만)을 3장 모으면 碰(펑)으로 세 장의 카드를 손에서 없앨 수 있고, 索子(썩지)의 七索(찻썩), 八索(빳석), 九索(가우썩) 3장의 카드를 모으면 上(성)으로 세 장의 카드를 없앨 수 있다. 보통 여러 종류의 패를 섞을 경우 점수를 낼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종류의 패를 정해서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외에도, 게임 참가자의 순번이나 지모(스스로 점수를 내는 것), 보너스 패 등의 기타 다른 게임 요소에 의해 점수가 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점수가 나지 않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규칙 설명은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처음에 받은 패를 분석하고 어떤 전략으로 플레이해 나갈 지 정하는 게 중요하다.

    게임 참가자들은 13장의 패를 처음 받았을 때 자신이 “어떤 종류의 패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느냐”를 빠른 시간 내에 분석하여, “어떤 조합을 이용하여 갖고 있는 패를 없앨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13장의 패 중 10장이 筒子(통지) 계열이라고 한다면, 索子(썩지)나 萬子(만지)가 아닌 筒子(통지) 패를 계속 모으면서 索子(썩지), 萬子(만지) 패는 버리는 게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이런 식으로 13장의 패 중 10장이나 같은 종류의 패가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4종류의 패가 섞이기 마련인데, 이런 경우에는 게임을 진행해 나가면서 어떤 패가 소위 말해 “붙는지”를 보고 전략을 짜 나가는 것이 좋다. 이런 이유로 마작은 순간순간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며 들어오는 패에 따라 경기 진행 중에도 수시로 전략이 바뀌기도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이다. 또한, 같이 게임하는 참가자들이 어떤 게임 계획을 갖고 있느냐를 분석하고 자신의 게임 계획은 상대방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불어 대부분의 경우 마작 판 위에서 개개인의 성격이 발현되기 마련인데 이를테면 어떤 플레이어는 안정성을 지향하고 어떤 플레이어는 큰 한 방을 노리는 경향이 마작판에서 드러난다. 이런 개개인의 성격과 플레이 스타일까지 고려할 수 있다면, 게임을 이기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모두 플레이어의 실력으로, 마작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네모난 판 위에서 벌어지는 네 명의 전략 싸움이 마작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작은 실력만으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고 어느 정도에 운이 따라야 이길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패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다고 할지라도 그다음에 들어오는 패에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절대로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고, 반대로 처음에 나쁜 패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다음에 들어오는 패에 운이 따르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운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패가 어떻든 간에 항상 이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게임에 임하게 된다. 홍콩 사람들은 마작을 하며 자신의 운에 대해 가늠해 보기도 한다. 운이 좋아 계속 게임에서 이긴다면, 앞으로 며칠간 운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운이 나빠 좋은 패를 갖고 있었음에도 게임에서 졌다면 ‘며칠간 운이 안 좋을 것이니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게임은 실력에 관계없이 게임의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홍콩 사람들은 오히려 운이라는 요소가 마작을 더 다채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길 수 있었지만 한 끝 차이로 지거나, 거의 다 졌지만 극적으로 패가 붙어 승리하는 데서 오는 짜릿함은 마작의 또 다른 재미이며, 여기에 재미로 돈까지 조금 걸려 있다면 그 짜릿함은 배가 될 것이다. 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게임이다 보니, 게임을 하면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일화도 많은데 어떤 사람은 운에 영향을 받을까 봐 마작 게임을 하는 동안 절대 화장실을 가지 않기도 하며, 물을 한 모금도 안 마시는 사람도 있으며, 틈만 나면 자리를 한 번 섞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광동식 마작에서 가장 맞추기 어려운 조합인 13么(Yiu). 13점으로 고득점을 낼 수 있다.

    마작은 플레이어를 도전하게 한다. 실력과 운이라는 요소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좋은 패로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으며 좋은 패로도 질 수 있으니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고 난 뒤에는 다음 판에는 게임에서 이기도록 마음을 다잡을 수 있으며, 이기고 난 뒤에도 연승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된다. 마작에는 이런 게임 내적인 요소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순기능이 한 가지 있다. 마작을 치게 되면 4~5시간 정도를 치는 게 보통이고, 길어지면 7~8시간, 어떤 경우에는 밤새 치는 경우도 있다. 비비안의 친척들 같은 경우도 마작을 치러 간간히 모이곤 하는데 밤새 치는 경우가 일 년에 한두 번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마작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친다는 것이다. 마작을 치면 필연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사각형의 마작 책상 위에서 얼굴을 마주 보게 된다. 사실, 일상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작은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서로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며, 게임 복기도 같이 해보고,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그래서 마작을 한 번 치고 나면, 같이 친 사람들과 확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게임 자체의 재미와 서로를 가깝게 이어주는 순기능까지 있는 마작 게임

    “얌차”가 다양한 딤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마작”도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을 한 데 모아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머리를 많이 써야 이길 수 있는 재미있는 중국 게임”이 아닌,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비안 가족들과 마작을 하면 20번 정도 게임을 해야 겨우 한 번 이길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비비안과 그녀의 가족들을 알아가는 과정이어서 더 의미가 있었다. 잘그락 거리는 마작 패 섞는 소리와 함께 홍콩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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