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눈치 주고, 합석 하고
홍콩 국제공항에 식사하기 애매한 오후 4시 40분쯤 도착했기 때문에, 홍콩 땅을 밟자마자 비비안과 함께 애프터눈 티 세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보통 세트 하나에 메인 음식 하나, 음료 하나가 포함되는데 세트를 하나만 시켜서 나눠 먹기에는 양이 조금 부족할 것 같아 세트 2개를 시켰다. 나는 홍콩 스타일 볶음 국수와 차가운 밀크티, 비비안은 버터를 올린 빵(奶油豬)과 따뜻한 레몬차(薏米露)를 시켰고, 애피타이저로 나눠먹을 생선 껍질 튀김도 시켰다. 가격은 다 합쳐서 15,000원 정도였다.
“홍콩 음식점은 아마 한국 음식점이랑 좀 다를 거야.” 직원에게 음식을 주문한 뒤 직원이 우리 식탁을 떠나자 비비안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다른데?” 나는 비비안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점이 꽤 많은데, 다 높은 임대료랑 연관이 있어. 음식점 입장에서는 높은 임대료를 내면서 이윤을 남기려면 최대한 많이 음식을 팔아야 하잖아. 그래서 가게 종업원들은 손님이 음식을 다 먹자마자 접시를 치워 버려. 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손님의 음식 상태를 체크한 다음, 빈 접시를 보면 잽싸게 달려가서 치우는 거야. 그래야 음식을 다 먹은 손님을 빨리 내보내고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지. 이렇게 하는 건 ‘우리 음식 더 팔아야 하니까, 나가주세요’라고 말하는 무언의 압박인 것 같아."
“그렇지… 왠지 빨리 나가야 할 것 같고, 눈치도 좀 보이고.”
"응 맞아. 그리고 직접적으로 "다 드셨으면 나가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홍콩 음식점에는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먼저 말해줘야겠네."
"음식점에 시간제한이 있다고?" 나는 놀라서 물었다.
"응. 시계로 시간을 재는 음식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 시간을 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통상 1시간 30분이 식당에서의 식사 제한시간이야. 손님이 자리에 좀 오래 앉아있다 싶으면 점원이 출입한 시간이 적힌 영수증을 출력한 뒤 자리에 가져다주면서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는데 언제 나가세요? 밖에 사람들 많이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라고 말해. 그러면 얼른 짐을 싸서 나와야지."
"와 그렇구나. 제한 시간이 다 되기 전에 알아서 음식점에서 나오는 게 가장 속 편하겠다."
“응 맞아. 근데 홍콩 사람들은 임대료가 비싼 걸 알고 있으니까 식당에서 그렇게 해도 크게 신경 안 써. 그리고 한국 음식점에서는 물, 휴지를 제공해 주잖아. 홍콩 음식점에서는 안 그래. 물은 제공해주는 곳도 있는데, 따로 달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휴지는 없는 곳이 대부분이야. 그래서 홍콩 사람들은 개인 물통, 휴지를 꼭 가지고 다녀.”
“그렇구나. 한국에서는 비교적 쉽게 물도 마실 수 있고, 휴지는 어딜 가나 구비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그러면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맞아.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점이 되게 편했어. 그리고 식당에서는 최대한 많은 손님을 수용해야 하니까, 식탁 사이의 간격도 엄청 좁아. 그래서 음식을 먹다 보면 옆에 사람이 부부싸움을 했는지,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등등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어." 비비안은 재미있다는 듯 웃은 뒤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만약 식탁이랑 의자의 크기가 크면, 식당 안에 많은 양을 들여 넣을 수 없잖아. 그래서 식당 안에 식탁이나 의자를 하나라도 더 들여놓기 위해 아주 작은 것을 써. 너한테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거야. 아! 방금 생각났는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어.”
“뭔데?”
“홍콩 음식점에서는 “합석”이 엄청 보편적이야.”
“합석?” 음식점에서 다른 손님과 식탁을 공유한다니, 상상이 안 갔다.
“응 합석. 손님이 없을 때는 상관없는데, 손님이 많은 경우에는 사람들인 자연스럽게 합석을 해. 예를 들어 4인용 식탁이 있는데 3명 일행이 갔으면 한 자리가 남잖아. 그럼 그 한 자리에 혼자 온 손님이 앉아서 음식을 먹는 거야. 이런 합석이 엄청 흔해. 사실, 홍콩 사람들은 합석하는 걸 더 선호해. 합석을 안 하면 개인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합석하면 자리가 났을 때 바로 먹고 다른 일 보러 갈 수 있잖아. 홍콩 현지 음식점에서는 합석이 보편적이지만, 예외도 있어. 혹시 “얌차"라고 기억해?”
“네가 전에 설명해 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얌차는 보통 점심시간에 가족들끼리 중국 식당에 모여서 원탁에 둘러앉아 딤섬을 비롯한 점심을 먹는 거야. 점심만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근황 이야기도 주고받고 안부도 묻고 하는 거지. 먹는 것과 이야기하는 것의 비중이 딱 반반 정도인 것 같아. 이런 식문화를 얌차라고 하는데, 얌차는 꼭 원탁에서 먹어. 원탁 크기는 다양한데 보통 12인이 앉을 수 있는 큰 식탁이 있고, 4인용 식탁 등 작은 것들도 있어. 홍콩(중국) 사회에서 "12"라는 숫자는 "기본" 숫자야. 무슨 말이냐 하면, 12개를 1세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얌차 식탁의 경우도 그렇고, 결혼식 등의 행사 자리에서도 보통 그래. 아무튼, 얌차 음식점에서는 합석 하는 경우가 드물어. 아무래도 얌차는 가족끼리 즐기는 경우가 많고, 중간에 음식을 올려놓고 돌려가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거든. 그런데 만약 다른 일행이 껴있으면 음식 먹기도, 이야기하기도 불편할 거야”
“그렇구나. 너는 음식점에서 다른 사람과 합석하는 게 어때? 불편하지는 않아?” 나는 신기해하며 비비안에게 물었다.
“음… 사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서 그게 불편한지 아닌지도 모르겠어. 그냥 나한테는 일상인 것 같아. 한국에서도 외국인한테는 생소한데 너한테는 익숙한 것들 있잖아. 뭐가 있을까…” 비비안은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이마를 약간 찌푸렸지만, 마땅한 예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예를 들면 카페 같은 공용 공간에서 개인 물건을 식탁에 와둔 채로 자리를 비우는 거?”
“응 맞아! 그런 거 있지. 그런 게 너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합석이 나한테는 그런 느낌이야.”
“그렇구나. 우리 문화랑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게 참 신기하네.”
홍콩의 식당 문화 이야기를 마칠 때쯤,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