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보지 않으면 변명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사소했었는데 변명하지 못하다 보니 어쩐지 커져버리기도 하고.
퍼뜩 떠오른 생각으로는, 호주에서 잠시 만난 어떤 이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 앞에서 참도 열심히 혀를 굴려가며 퍽 영어를 잘하는 척했었다. 그럼에도 가증스럽게 겸손을 가장했었지. 어쨌든 그들 중 한 명과 연이 닿아 한국에서 만나게 됐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내게 간단한 영어 단어의 철자를 물어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즉슨 나는 그 철자를 틀리게 말했었다. 같은 날 한참이 지난 후에 왜인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갑자기, ‘아, a가 아니라 e 지’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왜 꼭 나중에 이런 생각이 나는지 알 수 없다. 단어 철자도 철자지만, 차라리 몰랐으면 속 편했을 내 실수를, 말하자면 수치심을 무마할 수 없을 때에야 알게 되는 건지. 영어를 잘하는 척이라도 안 했으면 아주 나았지 싶다. 어쨌든 이후에 영어에 있어서는 솔직함만 갖는 자세를 가지게 됐다. 그에게 내 영어 실력을 까 보임으로써.
이런 사소한 일이 하나뿐일까. 한 번은 어떤 이와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한 감독의 이름을 대며 그의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좋아하진 않지만 어떤 영화는 인상적이었다고 대답했다. 그 감독은 유명했고 특히 많은 남성팬이 있었다. 시네필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기도 했고. 나 또한 그가 만든 몇 편의 작품은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다만 순간 그의 다른 작품들이 가물가물해서 다소 엉성하게 대답을 했고 그렇게 대화가 지나갔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생각이 난 김에 감독의 이름을 검색해 봤고 그뿐이었다. 문제는 검색 히스토리였다. 포털 앱에 로그인을 해두면 검색 히스토리가 뜨는 건 그때까지 가끔 유용했을 뿐 내게 큰 영향을 미치는 기능이 아니었다. 다만 당시 2G 폰을 쓰던 그가 내 스마트폰을 빌려가면서부터 비교적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포털 앱을 눌렀고 무언가를 검색했고 그때 자동으로 펼쳐지는 내 검색 리스트를 보고 싶지 않아도 봤을 거였다. 엉성하게 대답했던 좀 전의 나와 검색창 하단에 뜬 감독의 이름은 그로 하여금 ‘아는 척하더니 화장실에서 몰래 찾아본’ 나를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 밖에도, 공중화장실에서 이전 사람이 남긴 진한 냄새가 공기 중에 흩어지는 데 비해 내 볼일에 든 시간이 짧을 때, 그런데 하필 방금 전 들어온 사람이 같은 칸으로 들어갈 때나, 내가 거의 다 끝내 놓은 일을 다른 사람이 마무리만 했는데 괜히 생색내기 싫어서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더니 결국 모든 공이 그 이에게 돌아갈 때.
대게 이런 일이 있을 때 상대는 내게 묻지 않는다. 오해하기 딱 좋은 어떤 상황을 재차 확인할 리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색하고 황당하다. 변명은 그렇다. 하자면 사람이 참 사소해지고 안 하자면 또 개인적으로 너무 찝찝하다. 하고 나면 오해는 풀릴지언정 (혹은 혼자서 풀렸다고 믿거나) 상대 또한 내 체증이 해소된 것만큼 자신이 이미 받은 인상, 내린 판단을 재고할지 확신할 수 없다.
필요한 변명과 필요하지 않은 변명은 어떻게 다를까, 어떻게 구별하고, 얼마큼 구구절절할지를 결정해야 할까. 사소한 오해에도 끙끙거리는 더 사소한 마음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오해라는 것을 누가 알고 말고가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거지라는 이 엄청난 정신력을 어디 가서 쌓아야 할까.
변명을 안 하고도 문제없이 살 수 있을 만큼 실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해할 만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됐으면. 사실, 문제는 내가 너무 많이 신경 쓴다는 데 있다. 별 거 아닌 문제, 누군가에게는 문제도 아닌 문제로 움츠러든다. ‘쟤는 참 쓸데없는데서 자존심을 부리더라.’의 쟤가 될 때가 너무 많은 거다.
낙엽처럼 가볍고 힘없는 일들, 오래되고 오래된 일들을 가지고 여전히 고개 젓는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라도 그때 그 일은 오해였다고 말하는 나를, 누군가 어떤 일인지 잘은 몰라도 니가 그렇다고 말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만 알아주길 바라는 나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정말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결국은 확신하지 못하는 나를. 엄마 아빠 중 누구를 닮아 이러나. 어릴 때 아동 심리 검사 같은 걸 해봤다면 좀 나았을까.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하면서 자존감 높이기 훈련을 하는 기분이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기대 무슨 말이든 하면서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하는 연습을. 습작을 하려던 거였는데 왜 이러나. 늘 그렇듯 좀 그러면 안 되나 하면서 또 이렇게 이불을 날려버릴 한 장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