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마다마다 계절을 타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계절뿐 아니라 날씨도 타는데 종종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 없이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면서 곧 ‘난 진짜 왜 이러나 몰라.’ 순간순간 본인 스스로를 타기도 한다. 어찌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마련이지, 암.
3월의 쨍한 해와 포근한 공기, 만개한 꽃이 그녀는 더 외롭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계절이든, 비 오는 날이 좋다고. 약간 어둡고 추적거리는 색과 소리 안에서 보호받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의 반색하는 표정을 보니 내 맘에 알전구가 켜진 기분이었다. 취향이 같다는 건 특정한 어떤 것을 선호한다는 공통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 좋아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추상적이더라도 ‘아, 그거 뭔지 알아.’라고 할 수 있는 꽤 특별한 차원의 것이랄까. 취향이 독특할수록 그 차원이 더 고유해지겠지.
그녀와 나는 비슷한 점이 꽤 있는데, 그중 가장 비슷한 점은 생각하는 방식과 느끼는 방식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어떤 장면, 어떤 대사가 가진 감정을 공감하는 정도, 인간관계 안에서 상황과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 그때의 내 태도를 후회하거나 안심하는 이유 같은 것들이 비슷하다. 다르더라도 그 도식의 과정이 비슷해서 동기화가 쉽다. 이 점이 가진 가장 큰 순기능은 위로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친분이나 책임감이 어떤 것을 이해시켜준 척할 때 마음은 외로워지기 마련이라. 따지고 보면 참 사려 깊은 친절이고 노력인데도 씁쓸하고 쓸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때로는 상대의 의도와 내 느낌이 일치하는 게 얼마나 날카로운지. 관계를 만들고 어떤 때는 그르치면서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면 내 어떤 부분이 완전히 인정받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가짜가 아닌 진짜 이해는 부피도 무게도 커서 오랜동안 마음에 생긴 골을 척척 잘도 채우는구나 싶다.
비 오는 날 아늑한 실내에서 비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무척 많겠지. 계절이나 날씨를 버스나 지하철 타 듯 타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어. 영화나 드라마는 말해 뭐해.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선호, 그 안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공통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자신의 취향만 고귀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의 공감을 의심하지 않고, 비 오는 날에 마음이 살랑거린다는 어렵지는 않으나, 그게 뭔지 설명해보라고 했을 때 꼭 같은 뜻을 말할 수는 없는 어떤 말의 뜻이 통한다는 것이 그녀 덕분에 새삼 감동스럽다.
비 오는 날에 마음이 살랑거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