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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Jan 08. 2024

고딩엄빠와 인간극장

새해에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은 따뜻함들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최근 '고딩엄빠' 라는 프로그램이 이슈를 끌었다. 제목만 보고는 내용이 기대가 되었는데,  출연하는 이들이 얼마나  비난받을만 한지가 궁금해서는 아니었다. 그들이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어떠한 고민과 허들이 있었으며, 현실의 벽을 그들이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는 지가 한 명의 동료 부모로서 궁금했다. 


그러나 실제로 방송을 위해 그러한 이야기를 애써 찾은 건지, 아니면 극화를 위해서 과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방영된 내용들은 극단적으로 철이 없어 보이거나 걱정스러운 스토리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극적인 내용들은 캡쳐되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기까지 하였다. 


프로그램은 한 편의 막장 드라마로 그들의 삶을 소비하고 폄하해버렸다. 단톡방에 돌아다니는 캡쳐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애들이 불쌍하다' '역시 준비가 안되면 애는 낳으면 안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애를 키우는 부모들은 한 목소리로 공분했다. 이렇게 방송을 해 버리면, 저 가족들, 특히 애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것일까. 


출연자들 뿐 아니라, 어려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금도 성실히 이어가고 있을 수많은 어린 엄마 아빠들이 프로그램과 이어지는 반응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 지 마음이 아려온다. 이를 생각했더라면 그러한 뉘앙스의 프로그램을 함부로 송출할 수 있었을까.




마치 대놓고 시청자들이 함께 욕해주기를 바라는 듯한 장면들. 막장 드라마를 보며 욕을 하는 카타르시스 이외에 어떤 의의가 프로그램에 있는 지를 알기 힘들었다. 이를 기획하고 송출하는 이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오히려 되묻고 싶은 대목이다.


이를 보며 나는 최근 사회에 만연한 '자극 강박' 을 느꼈다. 솔직한 것과 속물적인 것이 동일시 되고, 개인적인 욕망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것만이 날 것 그대로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불편한 진실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각광 받을 것이라 간주하는 세태다.


'너희는 이렇게 자극적이고, 특별하고, 세속적인것만 좋아하지? 그렇지 않으면 보지도 않잖아. 우리도 돈 벌어야 하니까 이런 것들만 만드는 거야.'  그러한 세태에 따르는 최근의 기사, 영상들을 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양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고, 또 그것이 사회 전반의 컨센서스를 이뤄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만약 '고딩엄빠'와 같은 주제를 인간극장에서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좀 더 평범한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이어가는, 그러나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었다는 것만은 특별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다. 


양가 어른들이 만나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는 장면, 어떤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지를 진지하게 상의하는 장면,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한 어린 부모의 고충들이 담담한 나레이션으로 담길 것 같다. 나이에 맞지 않는 부모로서의 성찰에 함께 놀라기도 하고, 사회적, 행정적인 벽에 부딪치는 모습을 담으며 청자는 자신의 삶과 사회의 부조리를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꼭 자극적이지 않아도, 잔잔하고 따뜻하여도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감응한다. 되려 충격적이고 감정선을 흔드는 자극적인 내용에만 치중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더 깊은 성찰과 고뇌를 헤아릴 수 있게도 된다. 


그러고 보면 그리운 프로그램에는 다들 비슷한 감정선이 있었다. 인간극장, 사랑의 리퀘스트, 체험 삶의 현장, 순풍 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져 비현실적으로 '잘난' 타인의 인생을 관음하거나  '못난' 삶의 형태를 함부로 규정하고 폄하하지 않았다. 대신 완벽하지 못하지만 늘 그 나름의 최선을 추구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줬었다. 


취업을 준비하다 떨어지고, '호박고구마' 발음을 지적하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삐지고, 술값을 내기 싫어 빼다가 오랜 친구들로부터 비난받는 그런 우리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의 모습을 웃음과 눈물로 풀어가는 장면들을 보며 우리는 보편적인 삶의 기쁨과 슬픔이 주는 위로를 받았었다. 살아간다는 건 고단하지만 그만큼 따뜻할 때도 있음을 기억할 때 주어지는 위로다.



최근 유튜브에서 인도에서 한국으로 이민 온 트럭 기사의 스토리를 보았다. 성실히 납세를 하고, 한국에도 집을 마련하고, 고향 땅의 부모에게도 집을 지어준 스토리. 지금은 커다란 트럭을 장만했고 집도 마련하며 여유있는 생활을 하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청과물 시장과 비닐하우스를 전전하며 트럭 밑천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그에게 한국은 밤에 다녀도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여권이 신장되어 딸을 조금 더 존중받는 환경에서 키울 수 있고, 가족의 미래를 꾸려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에게는 타인들이 어떻게 그를 바라보는지, 이 사회에서 그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지와 같은 비교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아가기에 이 땅이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오늘도 가족들과 어떤 시간을 함께 보낼 지가 더욱 소중해 보였다. 


누구도 감히 폄하할 수 없는 그의 인생,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삶을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 사회의 주류가 강요하고 인정해주는 삶의 형태와는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인생 스토리 자체가 내게는 어떤 막장 드라마나 최근 유행하는 프로그램 보다도 자극적이었다. 물론 종류는 다른, 인생의 의미와 행복에 대한 새로운 자극이었다. 


이왕 판타지를 팔 것이라면 이렇듯 제대로 된 것을 팔았으면 좋겠다. 비현실적인 부와 명예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는 것, 실현 불가능한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만이 판타지는 아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이어간다면 홀로 또는 가족끼리 꾸려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존재함을 이야기하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꿈을 파는 것이 아닐까. 


이미 그렇게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군상이 있는데, 그들의 삶이 주는 따뜻함과 울림이 있는데 왜 우리는 이에 주목하지 못하는가. 어째서 우리가 불행할 수 밖에 없는지를 더욱 정교히 이야기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할 수 있는 형태의 행복을 폄하하는가.어째서 티비에서 다시 좀 더 보편적인 형태의 따뜻함을 만날 수 없는 걸까.




그래서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다. 당장 세상이 바뀔 수 없다면, 우리 각자부터 뻔한 욕망과 불행의 포르노를 단호히 거부하기를. 한강뷰 아파트, 연예인들이 매입한 건물이 급등한 이야기, 20대 외제차 오너가 물려받은 사업체를 경영하는 이야기, 막장과 파국의 이혼과 무개념 육아 이야기, 다 떠나서 이제는 새롭지도 않고 재미가 없다. 오히려 식상할 뿐이다.


저출산, 암울한 미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고 동화속에서 살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회가 말하지 않는다 해도, 방송이 보여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기억할 수 있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이어주는, 누구에게나 허락될 수 있는 형태의 소중함들이 우리의 삶 속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찰나라도 당신이 삶은 살아볼 만 한 것이라 믿게 했던 소중한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 때의 나를 살렸던 괜찮아, 따뜻한 격려의 한 마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떠났던 바다에서만났던 노을,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 처럼 누군가가 써 두었던 책 속 한 줄 글귀... 그 온기를 마음 속 주머니에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삶이 시릴 때면 손을 넣어 따스함을 느껴보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꼭 제언하고 싶다. 세상에는 따뜻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모두들 사실은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의 온기를 더하고 싶어하는 중이라고. 굳이 혐오와 질시, 박탈감과 부러움이 아니라도, 그러한 따뜻함에 목마른 이들을 위한 컨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그놈의 조회수와 광고에 '꽤 수지맞는 장사' 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싶다. 


지금과 같이 극단적이고 혐오적인 것들만이 잘 팔린다는 집단적 착란이 방송가에 만연한 이 시대야 말로 따뜻함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기에 적기이지 않을까. 방송가에 있는 의식있는 누군가는 꼭 한 번 이라도 시도해 줬으면 좋겠다.




오래 전 인간 극장의 일부를 편집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서 만났다. 절에 맡겨진 아이가 스님과 함께 책을 읽는다. 책의 내용이 재밌어 졸음으로 눈이 감겨도 잠이 오지 않는다 투정을 부려 본다. 그러다가도 이리오세요~ 부르는 비구니의 부름에 스르륵 눈이 감기듯 안긴다. 나즈막히 반야심경을 읊어 주는 보살님의 품속에서 아기 부처님처럼 잠드는 아이. 


그 장면 하나에 나와 아이가 살아갔으면 하는 삶의 원리, 생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사람의 온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란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와 당신, 그리고 나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온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익숙한 불행이 우리를 또다시 엄습해 오더라도, 새해에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좀 더 당연한 일이 되어가길 바라 본다.









P.S 1.

주제넘지만 불행의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의식, 부채의식 같은 것이 있다. 좀 더 나와 아이들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이다. 너무 식상할까.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는, 냉소 대신 따뜻함을 귀히 여기는 글들이 훨씬 드물고도 귀한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과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새해 다짐이자 올해의 목표이다.


P.S 2.

사랑의 리퀘스트 600회 특집으로 임형주 테너가 부른 노래이다. 삶이 아무리 차갑고 두려워도 우리는 노래 한 곡으로도 잠시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https://youtu.be/k17IVzQM53I?si=Mw3kcd3uYA0MJoCe







https://blog.naver.com/dhmd0913/223304501528

https://blog.naver.com/dhmd0913/223266135900

https://blog.naver.com/dhmd0913/22322262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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