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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Feb 04. 2024

스스로에게 연인이 되어 주기

연애로 보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상대방은 관심이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낭만으로 여겼던 기억이 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는 속담 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거나, 연락을 하거나, 선물 공세를 하는 등의 방식이 짝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같으면 이러한 방식은 스토킹으로 고발당하기 십상이다. '고백 공격' 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사회적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애정공세는 아름답기보다는 두렵고 부담스러운 것으로 이해된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라는 나의 입장보다 '사랑을 표현할 때 당신은 어떠할 지를' 를 먼저 고려하고 배려하는, 관계를 대하는 좀 더 성숙한 방향으로의 변화가 아닐까 한다.


나와 함께 하는 것이 그에게도 행복이 될 때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단 한 사람에게만 허락할 수 있는 것이 옆자리이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연인으로 인정하기 까지 숙고를 거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




'너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아.' '아직 직장은 못 구했어?' '그렇게 하면 안되지 않아?' 이렇듯 내가 어떻게 부족한지, 문제가 있는지를 평가하고 판단하며 지적하는 사람은 어떨까. 


만날 때마다 어떻게 내가 잘못되고 부족해 보이는 지를 반복하여 지적하는 불편한 이들. 만나기 전 부터 오늘은 무슨 말을 들을까 위축이 되고,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외면하고 싶고 돌아서고 싶다.


때때로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다시 보게 해 주는 날카로운 조언은 삶에 꼭 필요한 소금과 같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만을 반복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짜서 견디기 힘들다. 가끔 만나 밋밋한 일상에 간을 맞추기에는 좋지만 매일을 함께 하기에는 버겁고 불편하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대하는 모습도 비슷한 것 같다. '취업을 하면 인정해 줄게.' '돈을 이 정도는 모아야 행복해질거야.' '너는 이런게 문제야, 이렇게 해서는 똑바로 사는 것이 아니야.' 반복하여 스스로를 판단하고, 스스로를 평가 절하한다.





반대로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소한 것을 기억해 주는 사람. 나의 미묘한 감정선을 소중히 여겨주는 중요한 사람. 힘든 순간이라도 따뜻한 말과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언제고 삶의 위기가 오더라도 함께 한다면 든든할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닐까. 


늘 서로 아껴주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사람. 존재 만으로 함께하는데 힘이 되는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드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마음이 열린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다면 '내가 나에게 좋은 존재가 되는 것' 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은사님에게 들었던 기억나는 말이 있다. '자기 부정과 혐오를 거치지 않은 자기 긍정은 모래성 같은 가짜다' 라는 이야기이다. 살다 보면 지금까지 쌓아온 가치관이 무너지고, 명확해만 보이던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진심을 다한 노력과 사랑도 얼마든지 배신당할 수 있음을 알게되는 시기가 온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럴만한 이유를 찾는 것, '결과론적인 사랑' 의 추구는 실패하고 부정당하기 쉽다. 열심히만 하면 되어서, 고민이 하나도 없어서, '사랑할 만 해서' 나를 사랑하는 방식은 때로 좌절과 아픔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삶에서 성립되기 어려운 공식이다.


실망과 좌절, 자신에 대한 부정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갈 예정이라서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택하는' 것이다.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삶을 이어가는 내가 가련하고도 대단해서, 살아가다 보면 의미있는 순간도, 행복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스스로를 좀 더 아껴주기로 한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까. 




나를 사랑해야지, 라고 생각하기 전에 ' 내 마음의 입장에서 어떤 방식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 느끼게 될 지' 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가족이라도 세상의 기준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지를 만날때마다 지적하는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다. 


대신, 내가 나 자신에게 꼭 만나고픈 연인이 되어 주자. 힘들 때는 가벼운 위로와 농담으로 어깨를 주물러주자. 평가나 판단은 잠시 내려두고 어느 누구도 모르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슬픔을 들어보자. 쉬는 날이면 좋아하는 풍경을 함께 찾아 주고,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의 레시피에 따라 마트에 들러 재료를 사고 서툴게 요리해보자. 사소한 나의 기쁨과 슬픔을 기억해 주자.  


따끔한 조언이 필요하더라도 따뜻함을 담아 보자. 정신 차려, 이대로는 안돼 라는 습관적인 자기 비하나 압박 보다는 꼭 필요한 제안에 격려를 함께 담는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한 번 해 볼까, 꼭 필요한 선택이라면 조금은 과감해져도 괜찮아,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다가 오더라도 같이 힘을 내 줄게.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은 말이지만 잘 해주지 않는 말들, 스스로에게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지금 나의 마음에 어울리는 음악을 잊지 않고 틀어주는 사람, 좋아하는 장소를 기억했다가 그 곳이 꼭 필요한 순간에 같이 가자 제안을 주는 사람,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세심한 배려를 보이지 않게 챙겨주는 연인과도 같은 존재다. 어느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이다. 


스스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주는 것, 나 자신에게 '좋아하는 형태의 일상과 삶'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내가 제안하고픈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P.S. 

사랑하며 살다보니 느끼는 게 있다. 처음의 기호와는 별개로 시간이 쌓이면 기준이 그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아내보다 키가 크면 키가 큰 사람, 작으면 작은 사람이 된다. 첫째보다 눈이 작으면 작은 아이 (아빠랑 다르게 눈이 큰데도, 내 눈 보다 아이의 눈이 기준이 된다)로 보인다.  기준에 흡족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기준이 되는 원리다. 


나 자신에게도 스스로가 세운 기준을 적용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 좋아하는 바닷가 풍경 속에서 머물때의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위로. 아무리 번잡한 세상의 기준이 나를 몰아세워도 그 느낌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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