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터를 처음 본 날은 하교길에 지나가며 인사나누게 된 내 또래 아이 때문이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알고 지내서 - 기억도 거의 안 나고...-이름도 잊어버렸지만, 그 아이의 엄마가 떠주었다는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파스텔 빛깔의 실로 짠 스웨터는 분명하게 기억난다. 그 스웨터를 입고 나를 바라보는 그 아이 얼굴은 스웨터를 함께 기억해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다. 그 색깔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나중에야 알았고, 나는 구름같다 내지는 하얀 솜털이 뭉쳐있는 것 같다 식으로 설명하지 않고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후에 그 스웨터 색깔은 솜사탕 색이야라고 소리쳤는데, 운동회가 열린 학교 앞에서 분홍색과 하늘색 솜사탕 그리고 하얀 구름을 점점이, 촘촘히 엮으면 그 아이의 스웨터가 될 수 있었다. 그 스웨터 때문에 나도 엄마한테 털실 어쩌구 하면서 -스웨터라는 단어를 알 턱이 없어서- 징징거렸는데, 할머니가 보내주었다는 스웨터 조끼는 내가 겨우 머리를 끼우면 가슴을 조여서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작은 거였다. 내가 낑낑대는 꼴을 본 엄마는 한 번 입고 벗을 때 머리통에서 빠져나오지 않자 집 안 어딘가로 숨기셨다.
아무튼, 스웨터는 읽으면서 그 시절 생각을 떠올린다. 엄마가 한 올 한 올 떠주었을 그 아이의 스웨터. 나는 그 아이의 스웨터를 보고 감상은 잘 했지만, 나의 첫 조끼 스웨터는 보라색 오리가 가운데 있고 인디언 분홍-어린 내 눈에는 그렇게 칙칙한 분홍은 처음이었던-색으로 직조된 뻑뻑하기 그지 없는 스웨터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후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드럽고 포근해 보이는 스웨터를 볼 때마다 나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갖게 해주었다.
요새 가장 최근 산 스웨터는 '다홍색' 스웨터이다. 겨울 끝 무렵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샀다. 저렴한 가격이었다. 품질은 구제이지만 실이 도톰하고 색이 고와서 마음에 들었다. 서너번을 입고 지금 빨래를 기다리는 중인데, 아마 다시 돌아올 겨울에 잘 입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털실이 좋은거라서 부드러운데다가 따뜻하다. 청바지 위에 하얀색 티를 바쳐서 스웨터를 입으니 딱이었다.
스웨터를 생각해본다. 내가 가장 좋아한 스웨터는 '아무튼, 스웨터'에서 말했듯이 '분위기 있는 고동색' 가디건 스웨터이다. 이제는 아마 소각장에서 재가 되었을 법한데, 떡볶이 단추가 달린 초겨울 스웨터였다. 브랜드가... SYSTEM이었던가.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검은색 배기청바지, 까망과 하양이 체크무늬로 된 칼라가 주름이 진 긴 남방, 겉에는 진회색의 면가디건이다. 오늘 내 패션은 그저 그렇지만, 맨바닥을 딛는 새운동화가 포인트가 되어서 중심을 잡는다. 어제 샀다. 순간 '아무튼 08'을 읽고 '아무튼, 운동화'라고 나도 써볼까싶게 운동화는 내가 좋아하는 의류이다. 운동화가 신발에서 그치지 않는 것은 운동화나 스니커즈가 주는 엄청난 실용성-워킹화니까-과 멋스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운동화 자랑 좀 하자면... 1981년에 시작한 한국산 운동화 메이커, <프로스펙스>에서 40주년 기념으로 할인을 한다는 문자를 보고-하지만 이 운동화는 할인제외 상품-퇴근하고 곧장 가서 고른 멋진 운동화이다. 딱보면 아주 귀여운 돌고래를 양발에 얻고 다니는 것처럼-색깔이 이건 회색으로 말하기에는 좀 더 세련되고 환상적이다, 돌고래빛깔!- 눈에 쏙 들어온다.
매장이 다소 어두워서 음, 내가 좋아하는 연회색이군하고 골라놓고 집으로 와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보니, 돌고래 한 쌍이 현관문 앞에 나란히 있었다. 프로스펙스 마크가 오른쪽과 왼쪽에 무늬로 들어가서 심심하지 않다. -이대로 아무튼, 운동화를 쓰는거야!- 스니커즈도 좋아한다. 바닥에 착착 붙었다가 떼어지는 것 같은 캔버스화도 착용감이 좋은데, 이 운동화는 이름도 멋지게 (Cloud Walking)이다. 구름위의 산책 !
스웨터와 운동화는 잘 어울릴까. 충분히! 요새는 디자인이 형태와 색깔로 너무나도 다양해서 발품만 팔고, 카드를 긁을 베짱이 있으면 코디는 시간문제니까.
'아무튼, 스웨터'는 스웨터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이색적인-네 저 옛날 세대에요ㅠ-시선과 함께 마지막 글인 '레아의 스웨터'라는 소설이 담겨있다. 등장인물이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이 된 것 같은데, 음... 잘 순서가 짚어지지 않는 입체적인 줄줄이 사탕이다. 읽으면서 박솔뫼 소설가의 '을'이 겹쳐졌다. 분위기가 말이다. 중간 쯤 가면 이 단편은 계속 문을 열고 다음 문을 또 열고 그러다가 뫼비우스의 띠가 두 바퀴를 돌아야 처음으로 돌아온다는 말도 거짓말이 된 것처럼 제자리를 못찾겠다.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마지막에 실렸을까 내 마음대로 말해본다면 시인인 작가 '김현'은 소설도 쓰고 싶구나이다.
어떤 독자는 생경한 이 이야기를 읽다가 그만뒀을 수도 있다. 나는 숨을 두세번 깊게 들이마시고 그냥 블랙홀로 빠졌다. 글자는 눈에 들어오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달까... 그러니까 오리무중으로 읽었다는 말이다. 뭐 그럼 어때? 작가 마음이지. 마치 여러개의 스웨터를 큐브처럼 짜보겠다는 엉뚱 발랄한 손재주로 쓴거다 이 말이다. 책을 다시 펼치자. 아하... 이런 안내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