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알못의 인테리어 턴키 시공기 05
이사 갈 곳은 살고 있는 집에서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으므로 하루, 이틀 사이에 견적 상담 약속을 잡은 모든 업체를 만나기로 했다.
첫날, 이른 오전부터 오후까지 최대한 빈틈없이 시간과 동선을 짜서 네 곳의 업체를 만났다.
A : A업체는 이사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블로그에 포스팅되어 있는 시공 사례에 내가 살 아파트의 같은 평형이 있어서 고른 곳이다. 포트폴리오상 인테리어 디자인의 호감도는 10점 만점에 7점 수준이었다.
분명 합당한 금액을 지불할 의사를 갖고 공사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견적 상담을 받는 자리인데, 내가 무슨 대단한 갑질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잔뜩 주눅 들 일도 아닌데 왠지 떨렸다. 돈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호갱회피 난도가 높기로 소문난 인테리어 공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과 요청하는 측의 정보 격차가 심해서 주도권을 잡기는커녕 질질 끌려다니지 않으면 다행인 분야라고 생각해 지레 겁을 먹은 탓이겠다.
업체 사무실은 적당히 넓고 깔끔했다. 업체 대표 외에 직원도 한두 분 따로 계신 것 같았다. 노트북에 정리해 놓은 문서 파일을 보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원하는 공사 내용을 전달했다. 업체 대표님이 내 얘기를 듣다가 중간에 의견을 내기도 했고 내가 먼저 이것저것 묻기도 많이 물었다.
이때 얻은 한 가지 깨달음이 있다.
‘인알못에게 업체 견적 상담은 전문가에게 직접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장이다’
인테리어 업체의 양심 탑재 여부에 따라 거짓 정보에 낚일 수도 있고 같은 업자라도 다 같은 의견을 가진 것은 아닐 테지만 나 같은 수준의 인테리어 무지랭이에게는 그분들이 ‘낫 놓고 기억’ 수준으로 쉽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조차 감지덕지하고 챙겨갈 만한 정보가 된다. 폴딩도어를 시공할 때는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하는지, 마이너스 몰딩을 만들기 위해 어떤 밑 작업을 해야 하며 6센티 걸레받이가 아닌 4센티 걸레받이를 구축 아파트에 시공할 때는 어떤 추가 작업이 필요할 수 있는지, 각기 다른 디자인 스타일 중 하나를 고를 때에는 어떤 장단점을 인지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그 밖에 기타 등등 그동안 혼자서 인터넷 검색으로만 배웠기에 모자랄 수 있는 부분을 견적 상담을 통해 채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첫 번째 만난 업체와의 상담에 비해 뒷 순서로 갈수록 나 자신의 이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A업체와의 상담은 대체로 무난했다. 3일 내로 견적을 보내주시겠다고 한다.
B : 이곳은 블로그에 기존 시공 사례가 그닥 많이 올라와 있지는 않았다. 디자인 또한 그냥저냥 무난했지만 비교적 거리가 가깝고 지역 부동산 카페에 추천 댓글 몇 개가 눈에 띄어서 상담을 요청했다. (이곳과 세 번째 공사를 진행 중이라는 댓글이 결정적이었다)
아담한 사이즈의 사무실에는 업체 대표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막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오신 것 같은 복장의 사장님이 나를 반겼다.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동네 인테리어(무시하는 표현은 아니다) 사장님 스타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다시 노트북을 꺼내 문서를 띄우고 A업체 때와 같이 설명을 이어나갔다.(이 짓을 이틀 동안 하려니 그것 또한 고역이긴 했다) A업체 때와는 달리 별다른 메모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시던 사장님이 중간에 한 말씀하셨다.
“뭘 그렇게 많이 준비해왔어요?(웃음) 대충 얘기하면 우리가 다 알지”
그렇다. 이분은 전형적인 동네 인테리어 사장님이시다(다시 말하지만 무시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래도 친절하게 내가 여쭙는 말에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본인 의견도 많이 내주셨다. 견적서는 쿨하게 ‘다음날’ 보내주시겠단다. 이야기를 마치고는 곧장 ‘한 4천 쯤 나오겠네’하며 예상가를 턱 하니 내놓으셨다.
C : C는 내가 원하는 화이트 미니멀 인테리어 스타일의 시공 사례가 많고 포트폴리오 사진도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 ‘인테리어 제법 아는’ 사람 또한 이곳의 시공 사례를 보고 가격만 맞으면 여기랑 해보라고 권유했던 곳이다.
널찍한 사무실 안에는 몇 개의 책상이 놓여 있었고 깔끔한 차림의 시크한 사장님과 미팅용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벽에 설치된 대형 TV에 내가 의뢰할 아파트의 평면도를 띄워 놓고 상담을 시작했다. 사람의 태도가 진정성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상담에서 만난 인테리어 업체 대표님들은(혹은 실장님이거나) 대부분 뭐랄까 ‘다정’이나 ‘따뜻함’보다는 무뚝뚝하고 시크한 느낌이었다. 내가 지레 쫄고 들어가서 더 그런 것이리라. 그래도 상담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묻는 내 질문에 다들 귀찮아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셨던 부분이 좋았다.
결론적으로 이날 상담한 곳 중에서는 C업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포트폴리오, 상담 내용과 사장님에 대한 내 개인적인 느낌을 종합한 결과다. 내심 견적만 가용 예산에 근접하게 잘 나와준다면 여기하고 진행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D : 상담 첫날 마지막으로 만난 D업체.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가장 많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도착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무실 넓이도 가장 넓고 책상 수와 직원 수도 많았다. 역시나 시크한 스타일의 대표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만 네 번째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내 이야기를 간단한 메모를 곁들여가며 듣던 그가 “평당 180 이상은 생각하셔야겠네요”라고 말했다. 평당 180이면 32평으로 환산했을 때 5760만 원이다. 내 예산을 한참 초과한 금액이다.
이 날 있었던 모든 견적 상담에서 내가 빼놓지 않고 했던 이야기 중 하나, 견적은 최대한 상세하게 내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예산보다 높게 나오더라도 선택과 포기를 통해 금액을 조율하려면 공사의 세부 내역에 각각 소요되는 비용을 아는 편이 훨씬 낫다. 원래 견적이라는 게 상세할수록 좋은 거 아닌가.
평당 180만 원이 예산 범위 밖이었지만 상세 견적을 받고서 더하기 빼기를 해볼 생각으로 견적을 요청했다. 그런데 대표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방침상 계약을 하기 전에는 견적을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세 견적을 보지 않고 어떻게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이지?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 공사 내용을 듣고서 ‘평당 180 이상’을 부른 사장님은 컴퓨터 두뇌의 소유자여서 이미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 금액 이하로는 공사 못한다’는 의미인가.
그러고 보니 처음 앉았을 때부터 뭔가 쌔한 기분이 들기는 했었다. 무시당했다는 기분마저 들었던 건 나의 자격지심이라 치자. 아무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내 꼴이 바다에 젖은 나비 같았다. 만약 이곳을 첫 순서로 잡았다면 다른 업체들 상담 다닐 맛이 뚝 떨어졌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곳이 오늘 마지막 일정이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 만나야 할 업체가 네 곳이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