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알못의인테리어 턴키 시공기 04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소싯적에 미용실에서 이 말을 들으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깔끔하게...’라고 대답한 게 거의 다였고, 언젠가 조금 친해진 미용사에게 ‘최선을 다해주세요’하고 드립을 쳤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인테리어 견적 상담 준비를 하던 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3천 만 원에 샷시 포함해서 깔끔하게 해 주세요’라는 딱 한 마디로 끝내면 참 쉽고 편할 텐데, 덤으로 최선을 다해달라고 한 마디 덧붙이는 것만으로 모든 눈탱이와 날림 시공의 가능성을 지울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내 주머니에서 꺼낸 큰돈 쓰는 일에 이렇게 빡세게 공부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다가도 문득 ‘내가 진짜 돈이 많다면 어디 유명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스타일 상담이란 걸 받고서 내주는 견적대로 똬앗! 하고 공사대금을 꽂으면 그만이겠구나. 공부고 뭐고 다 필요 없겠구나’하는 생각에 이르자 더 큰 자괴감에 빠져버렸다. 몇 천만 원을 푼돈으로 대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골머리 썩을 일도 없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빡세게 공부까지 해 가면서 큰돈을 쓰는 작은 자괴감에 최선을 다하기로, 본의 아니게 결심당해버렸다.
이렇게 공사해주시면 얼마 나와요? : 견적 요청 내용 정리
인테리어 견적을 내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업체에 공사 현장이 될 집을 보여주고 ‘실측 견적’을 받는 것이다. 평면도 상에 나타나지 않는 구석구석 공간의 실치수를 재는 작업이 당연히 필요하고, 집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나 내가 이사할 구축 아파트의 경우에는 실측의 중요성이 더 크다. 문틀과 문짝 상태에 따라 굳이 교체하지 않고 필름 시공만으로 대체 가능할 수도 있고(물론 의뢰인이 원한다면), 벽면 상태나 바닥의 평활도에 따라 도배, 몰딩, 바닥 공사에 부수적인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그래서 제대로 확인 작업도 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공사 견적을 싸게 부르는 업체를 조심해야 한다. 견적을 최소치로 잡아 계약 먼저 따내고 막상 공사에 돌입하면 이런저런 추가 공사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추가 공사비가 붙는다고 모두 눈탱이는 아니지만, 업체를 선택할 때 오로지 저렴한 견적만을 고려했다면 그 업체의 장점은 결국 장점이 아닌 게 되고 만다)
같은 아파트 평수라 할 지라도 샷시의 개수와 사이즈가 천차만별이므로 이 부분에 대한 실측도 필요하다. 인테리어 비용에서 샷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만큼, 실측 후 낸 견적과 평면도만 보고 어림으로 낸 견적의 차이는 무시 못할 수준이다.
문제는 내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살게 될’ 그 집은 현재 내 집이 아닌 다른 분들이 살고 계신 집이라는 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20~30분 동안 집안 곳곳을 들여다보고 치수를 재는 일을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분에게 아무 때나 횟수 제한도 없이 요청할 수는 없는 일이다(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시국 아닌가). 인테리어 견적을 요청할 대상 업체가 대략 7~8곳이었으나 내가 양해를 구해서 실측하기로 한 횟수는 최대 두 번이었다. 이런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실측 없이 7~8곳 업체의 견적을 받고 난 후에 최종 후보 두 곳을 정해서 실측을 맡기고 최종 견적을 비교하여 한 곳과 계약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께서 주택 계약 후 인테리어 공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매도인과 주택 인도일 이전 실측 횟수를 조율해서 매매 계약서 특약사항에 넣는 방법을 추천한다. 내가 계약서를 작성할 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실측 없이 1차 견적을 의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더욱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견적 의뢰를 해야만 했다. 원하는 공사 내용을 꼼꼼하게 전달해서 그만큼 상세한 견적을 받자. 실측 없이 낸 견적이라 최종 견적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어떤 업체와 진행을 하면 좋을지 추려내는 데에는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작성한 인테리어의 고작 이응만을 아는 본인의 견적 요청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특정 회사나 모델명은 가렸다)
화이트 미니멀 인테리어의 극한이라 하는 무몰딩, 무문선, 무걸레받이 대신 2계단 마이너스 몰딩, 9mm 문선, 4센티 걸레받이를 택했다. 아예 없애버린 수준의 미니멀은 아니지만 그나마 ‘3무’ 보다는 시공 비용이 덜 드는 방식이라 한다. 붙박이장은 안방과 아이방에, 거실은 확장 대신 폴딩도어를 택했다. 돌도 안된 아기와 함께 살 집이라 싱크대 장과 붙박이장 자재 등급은 가급적 E0, 조명은 메인 등 없이 매립등만으로 하는데 쨍하고 하얀 주광색 말고 보다 아늑한 느낌의 주백색으로 정했다(색온도에 따라 주백색, 주광색을 구분하는데 주광색은 사무실 조명처럼 무지 환하고 하얀 조명이고 주백색은 그보다는 약간 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조도가 조금 낮은 조명이다). 그밖에 타일 사이즈, 강마루와 벽지의 브랜드와 색상, 샷시 브랜드와 모델명, 스펙까지 적었다.
인테리어 일자무식이 이제 막 벼락치기 눈팅 마구잡이로 머릿속에 집어넣은 정보를 토대로 정리한 내용이라 실제 여건과 차이가 날 수 있다. 최종 견적을 낼 때는 많은 것들이 바뀔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그려볼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다.
미용실에 찾아가 대뜸 원빈 사진을 들이밀며 ‘이거랑 똑같이 잘라주세요’했더니 손님은 원빈하고 두상이 이렇게 다르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별로 어울리지 않을 수 있고 무엇보다 니 얼굴이 원빈이 아니고... 뭐 이런 소리 들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잘라 달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훨씬 낫지 않겠나.
꼭 이대로 하지는 않더라도 인테리어 업체에서 봤을 때 ‘음,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알겠군’ 할 수 있게, 나는 나대로 견적 비교를 하며 ‘음,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를 하려면 대략 이 정도 비용이 드는군. 업체들 중에서는 견적이나 포트폴리오, 상담할 때의 느낌을 봤을 때 이곳이 제일 잘 맞네’하면서 선택할 수 있다면 베스트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능한 한 견적 상담은 미리 받을수록 좋다. 인기 있고 잘하는 업체는 그만큼 공사가 많다. 요즘은 가뜩이나 인테리어 업계가 호황이라 사시사철 성수기인데, 잘하기로 소문난 곳은 공사 일정이 일찌감치 꽉 차기도 한단다. 못해도 원하는 공사 시작일에서 석 달 이상은 여유를 갖고 알아보자. 여유가 그리 안된다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인테리어 업체 탐색
그럼 이제 ‘어디에’ 견적 상담을 요청하느냐다. 뭐든 시작은 포털 사이트 검색이다. 당연히 엄청 많이 나온다. 홈페이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지 않아 최소한의 포트폴리오 사진도 볼 수 없는 곳은 우선 제외한다. 암만 내가 보는 눈이 없어도 뭘 봐야 판단을 할 텐데, 아예 볼 건덕지가 없는 곳은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견적을 의뢰할 업체를 고르는 데에 신경 썼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실제 시공 사례 사진을 많이 참고했다. 해당 업체가 작업했던 결과물이니만큼 인테리어 디자인의 측면에서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되겠다.
2.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 스타일의 포트폴리오가 많으면 더 좋다.
3. 인테리어 카페나 해당 지역 부동산 카페글을 검색해 특정 업체를 추천한 글을 참고했다. 대놓고 홍보성이 아니라면 유용한 정보다.
4. 내가 이사할 아파트를 시공한 사례가 있는 업체를 찾아봤다. 경험이 있는 업체가 시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인테리어 업체가 이런 부분에서는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견적 상담을 요청할 일곱 곳의 업체를 정하고 연락을 돌렸다. 온라인 견적 요청을 받는 곳은 신청 양식을 채워 제출한 뒤에 연락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차로 2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틀 동안 모든 업체를 만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