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알못의 인테리어 턴키 시공기 02
32평 아파트 기준 샷시를 포함한 집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인테리어 공사에는 아무리 못해도 2천 만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았을 때 이렇다는 거고, 요즘은 평당 100만 원을 넘어 200만 원에 가깝게, 혹은 그 이상 들이는 사람도 많다. 못해도 3천에서 많게는 6천만 원 이상 든다는 말이다. 돈만 있으면 1억이고 2억이고 못 쓰겠냐만, 그건 나하고 다른 지갑 통을 가진 사람들 얘기니 논외다.
집 구할 때를 빼면 살면서 이 정도 돈이 한 방에 나가는 일, 별로 없다. 꼽아봤자 자동차 살 때나 결혼식 비용 정도? 헌데 결혼식은 ‘식대 곱하기 하객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니까 여기에 들이밀기는 좀 애매하다. 가구 하나를 수천 만 원 주고 살 정도의 재력이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이 수천 만 원 대의 돈을 쓰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앞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들여야 할 최소 2500만 원(부동산 사장님피셜) 이상의 돈은 내 기준에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단언컨대 집을 제외하고 단일 지출로는 내 인생 최대 규모가 될 것이다. 지금 타고 다니는 차도 새 차를 살 때 차값이 25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그마저 차값의 반이 36개월 할부였다.
그렇게 큰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그에 비해 나는 인테리어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자동차는 운전만 할 줄 알면 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도 구입해서 몰고 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이왕이면 빠삭하게 아는 게 낫겠지만 중고차가 아니라 신차를 산다면 자동차 일자무식이 겁도 없이 차를 샀다고 해서 자동차 회사에 눈탱이를 맞거나 심각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리조차 받지 못할 가능성은 희박하다.(아주 간혹 그런 억울한 일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더라만...)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자동차를 주문 제작으로만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핸들도 직접 고르고 자동차 시트도 직접 고르고 문짝과 차 유리, 엔진, 브레이크, 전조등 암튼 자동차를 구성하는 굵직한 것들을 다 직접 골라야 한다면? 게다가 그런 방식으로 차를 만드는 수 천 개의 업체 중 하나를 골라 조립을 맡겨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평소에 자동차에 관심이 맞았거나 미리 엄청나게 공부한 사람은 부품 하나 하나와 디자인까지 세세하게 정해놓고 잘한다고 입소문 난 업체를 돌며 견적을 비교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교적 덩치가 큰 업체에서 내놓는 ‘표준형 조립 모델’ 중에서 본인 예산에 맞추어 고르거나 주변 사람이 여기에 ‘맡겼는데 잘해주더라’하는 말을 듣고 찾아가 ‘얼마 정도에 잘 맞춰서 해주세요’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자동차가 아니라 조립 PC를 예로 들 걸 그랬나 보다. 하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테리어에 비할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자동차가 급이 맞는다.
아무튼 인테리어가 딱 이런 식이다. 집 안 인테리어를 구성하는 요소는 너무나 많은데 각각의 요소 안에서 골라야 할 보기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선택의 연속이 펼쳐지는데 그에 비해 나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구성 요소만 어느 것으로 할지 잘 고른다고 끝이 아니다. 업체마다 부르는 값도 다르고 부리는 인력의 수준도 다르다. 애초부터 ‘나 거기랑 인테리어 하길 참 잘했어’ 하기 쉽지 않은 판이다.
내 인생 최대의 지름이 될 인테리어 공사가 인생 최대의 호구 짓이 되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모든 건 확률의 문제다
어차피 어딘가에 턴키로 인테리어 공사를 맡겨야 한다면 계약 전에 공사 견적부터 뽑는 게 순서다. 옷 한 벌을 사더라도 “다른 데도 좀 보고 올게요”하면서 여러 곳을 둘러보고 사는데 수천 만 원이 드는 일이라면 당연히 몇 곳에서 견적을 받아 비교해 봐야 한다. 이건 인테리어에 대해 잘 알고 모르고를 떠나 돈 쓰는 일을 대하는 기본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떻게 견적을 어떻게 요청하지?
“구축 32평 아파트 샷시 포함 올 리모델링 견적 좀 내주세요”
물론 지금 당장 ‘특정 지역+인테리어’를 검색해서 나온 업체들에 전화를 돌려가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말만 듣고도 당장 견적을 내주는 업체가 있을 수 있고 간단한 몇 가지 사항이나 취향만 확인하고 견적을 내주는 업체도 있다. 아니면,
“예산을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데요?”
라고 되묻고 가능 여부를 말해주는 곳도 있겠다. ‘내가 천 원 줄테니까 피자 한 판이랑 치킨 한 마리 주문하고 남는 돈으로는 음료수 사 와’하는 허무맹랑한 예산이 아니라면 의뢰인의 예산 범위에 맞추어 공사를 못해줄 것도 못해줄 곳도 없다.
문제는 견적을 이런 식으로 내고 공사를 맞기는 행위가 눈탱이 확률을 크게 상승시키는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실제로는 눈탱이가 아님에도 내가 눈탱이를 맞은 게 분명하다는 확증 편향에 빠지거나 눈탱이는 아니더라도 인테리어 디자인을 보고 ‘저긴 나랑 안 맞아’ 하면서 그 집에서 사는 내내 투덜댈 확률이 높다는 데 있다.
물론, 모든 건 확률의 문제다. 32평 올수리 3천만 원에 맞춰서 해달라고 딱 한 마디 했을 뿐인데도 그 지역의 매우 기술 좋고 양심적인 귀인을 만나 눈탱이 하나 없이 합리적인 값에 공사를 마쳤는데 알고 보니 그 업체의 디자인 취향이 의뢰인과 전생의 부부급으로 잘 맞는 그런 행운이 나에게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코스피에 상장된 수백 종목 중에 눈감고 아무거나 골라서 돈 3천을 몰빵 했는데 얼마 안 가 주가가 두 배로 뛰는 그런 행운 말이다.
하여, 모든 건 확률의 문제이므로, 나는 그저 확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그 집에 들어가 살 때까지 다 할 생각이다. 눈탱이 맞고 호갱 될 확률,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설명은 하지 못하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은 돈대로 쓰고도 불평, 불만을 쏟아낼 그런 확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