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창작자가 될 거냐 묻는다면.
더운 여름이 물러가자 제주에서도 여러 문화 예술 관련 공연 현수막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제 막 가을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글을 통해 창작가가 되고 싶은 이에게 독서를 하거나 음악과 미술, 그 외 다른 문화 공연을 접하는 것은 큰 숨을 한 번 쉴 수 있는 기회였다. 방식만 다를 뿐, 다른 창작자의 고민을 들여다 봄으로 나를 돌아볼 계기일 테니 말이다.
그중 내 눈길을 끈 것은 만화 '검정고무신'의 공연 안내 현수막이었다. 기영이, 기철이, 오덕이와 땡구 모습이 인쇄된 현수막이 제주 시내 가로수 길을 따라 나부꼈다. 나는 검정고무신의 오랜 팬으로 반가운 마음부터 든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 공연은 누구에 의해 기획되고 누구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공연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캐릭터를 탄생시킨 창작자는 이미 고인이 됐고, 유가족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 법적 분쟁의 중심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계가 있을 리 없던 과거 계약이라고 백 번 양보해도, 검정고무신의 저작권 계약 과정은 미스터리하기만 해서 더욱 안타깝다. 그저 작품을 알리고 싶던 창작자의 순수한 열정이 이용당한 사건이라고 치부하기엔 작가가 전하지 못한 메시지가 가볍지 않았다. 앞서, 우린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구름빵'의 사례를 안타깝게 지켜봤고, 이번엔 작가의 죽음으로도 쉬이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분쟁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다.
가장을 잃은 유족의 삶이 여전히 분쟁에 휘말려 궁지에 몰린 와중에도 누군가는 이 작품을 이용해 돈벌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어디까지를 인간의 행위라 해도 좋은지 막막해졌다.
나는, 아직 창작자라 부를 수도 없는 내게 물었다. 너는 과연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거냐고. 누군가 네가 지켜온 삶을 통째로 빼앗고 그건 네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너는 어떤 걸 더 해 볼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말이다.
이미, 이 일은 고인이 되신 이우영 작가와 유족이 홀로 감당할 개인의 서사를 넘어선 문제가 됐다. 창작자를 꿈꾸는 이들이 모인 이곳 브런치 스토리 공간에서 예술인 저작권과 불공정 계약 환경에 대해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럴 곳은 어디인 걸까?
저는 며칠 전 이우영 작가의 유족이신 브런치 스토리 '앞니맘 작가님'의 글방에서 이 사안에 대한 탄원서를 공유하고 계신 걸 보고, 저와 가족 모두 서명했습니다. 부디, 창작자를 꿈꾸는 많은 분의 발길이 닿아, 유족분들의 긴 싸움이 덜 외롭길 바랍니다. 이 일을 계기로 체계화된 창작 환경이 만들어져 더 이상은 허망하고 헛된 것으로 소진되지 않길 소원하며 부족한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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