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헤픈 마음의 진화

글을 짜내면 안되잖아요?

by 은수
어떤 마음은 지켜보는 걸로 충분하다.

지난 1년의 대부분을 두문불출로 지낸 내게, 이 공간은 세상으로 열린 창구였다. 짧았던 봄은 이미 기억도 희미했고, 폭염은 나의 은둔을 도왔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는 말은 흥겨운 노랫말 같았지만, 이제 너무 많이 춥지 말라는 위로를 전할 계절이 다가왔다.


요즘, 나는 한동안 소원했던 브런치 작가님들 글방을 짬나는 데로 찾고 있다. 그러다 나의 처음을 기억하는 작가님 글방에 도착하면, 응석을 부리는 아이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반면 그 사이 이곳을 떠났거나 오랫동안 멈춘 글방의 문 앞에선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다. 소식이 궁금한 건 물론, 떠난 줄도 몰랐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브런치. 이곳에는 각기 다른 직업, 나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은 이들이 많고도 많다. 그중에서도 구독자 수가 많고, 댓글이 활발한 글방 앞에는 자연스럽게 응원과 박수가 모였다. 나 역시, 빛나는 작가님들에게 진심 담긴 응원을 보내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모든 곳에 음영이 있는 것처럼, 빛나는 곳의 왁자지껄함 뒤엔 조용히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제 막 브런치에 입성한 사람, 떨리는 마음으로 발행을 하고 읽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마음. 이곳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통과 의례 일 것이다.


나는 어쩐지 조용한 그곳에서 자주 마음이 멈췄다. 그렇다고 내가 감히 여기서 헤픈 마음에 시동을 걸려는 게 아니다. 그저,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뭔가를 할 것도 없어서 조용한 글방에 댓글을 남기거나 첫 구독자가 된다. 그저, 혼자가 아니니 너무 외로워 말라는 메시지는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나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방을 다니며 새로 올라온 글을 읽던 중이었다. 그때, 우연히 한 글방을 발견했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은 마구 간질거렸고, 나는 헤벌쭉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중간중간 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느낀 설레는 감정이었다.


브런치에는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있다. 문장마다 각자의 경험을 통한 연륜과 통찰이 담긴 글부터 청년 세대의 외로움이나 고민이 느껴지는 20대의 글은 위태롭기도 했다. 가끔 '유서' 같은 제목의 글을 남겨, 나 혼자 밤새 마음을 졸인 적도 있다.

간혹, 고등학생 작가의 글을 만났을 땐, 나는 저 나이 때 뭘 했더라? 신기하고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발견한 글방 작가님은 고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닌,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 작가님이었다.


20년 넘게 어린이, 청소년들의 독서 논술 선생으로 살아온 내겐, 모래알 속에서 작은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운 일이었다. 당당히 브런치 심사를 통과했다는 걸로 짐작할 수 있지만, 문장을 끌고 가는 솜씨나 그의 짧지 않은 문장 호흡을 신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 대목에선, 글 쓰는 일은 정말 나이와 상관없는 일이구나, 했다. 물론, 중간중간 나이를 숨길 수 없는 깨알 같은 귀여움도 나는 좋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이곳 브런치에서 만난 어린 작가님이 참 귀하게 여겨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마치 어른들끼리 싸우는 집 안에서 아이들이 뒷 전에 방치된 느낌이다


우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휴대전화에 시선을 뺏겼다. 시험성적, 경쟁에 줄 세워질수록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어린이, 청소년을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목소리를 낼 마당이 사라졌고 마당이 있다한들, 그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된 어른이 있는 걸까?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과거엔 티브이에서 장학퀴즈, 도전 골든벨, 전국에 있는 학교를 방문해 재치 넘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땐 엉뚱하고 기발한 청소년들의 모습에 눈물을 쏙 빼게 웃으면서도 알 수 없는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오히려 아이들의 부정적 모습을 자극적으로 편집한 프로그램이 '요즘 애들'이란 편견을 키우는 실정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짜 놓은 판 위에서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마땅히 내야 할 자기 목소리를 잃어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린 작가님이 마치 희망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날 그 어린 작가의 팬이 되었다. 그는 우리와 다름없이 당당히 브런치 심사를 거쳐 작가가 됐고, 이미 65편의 글을 발행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치명적인 고민은 있었다. 구독자 수가 0이라는 뼈아픈 현실. 처음 2명의 구독자가 있었지만, 얼마 안 가 구독 취소를 누르고 떠나셨다는...(브런치의 호환마마=구독취소)

나는 당연히 작가님의 구독자가 됐다.


누군가의 처음을 지켜보는 일. 무엇보다 나는 이 어린 작가의 건강함이 무척 귀하게 여겨진다. 부디, 따뜻한 브런치 공간에서 이 귀한 작가님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펼치길 바란다. 수직 관계의 위계 따위 없이, 그가 그 나이에 맞는 목소리를 내는 걸 지켜 봐줄 어른이 이곳에 많았으면 좋겠다.


요즘 브런치에는 여러 귀인 작가님들이 있는 줄 알지만, 우리 모두 귀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누려보시길 대놓고 바라본다. 이건, 절대 헤픈 마음이 아님을 강력히 주장하며, 이곳 브런치 문 앞에 나는 이런 문구를 써놓고 싶다. ' 여기, 귀한 어린 작가님이 크고 있어요'라고 말이다. 조용히 자기 목소리를 내며 성장 중인 어린 작가님에게 많은 응원의 손길이 가 닿길 바라본다.


아래는 귀한 어린 작가님의 글방 링크입니다. 그날, 여러 편의 글을 읽던 나는 '글을 짜내면 안 되잖아요?'라는 당찬 제목에 한번 놀랐고요. 글 속에 담긴 어린이 창작자로의 고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답니다~^^

글을 짜내면 안 되잖아요?

http://brunch.co.kr/@b46ff9e16c8c4df/53

'같은 공간에서 글 쓸 수 있어, 영광입니다.'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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