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의 세계라 할 숲이 통째로 사라진 뒤였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대한 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곰은 졸지에 턱수염을 깎지 않고 코트를 입은 '게으른 인간'으로 규정된 뒤였다.
“나는 곰입니다."
곰은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나 호소는 공장의 빈틈없는 시스템 안에서 힘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인사 과장부터 사장까지, 권위 있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진짜 곰은 동물원 철창 안에 있거나 서커스단 무대 위에 있는 거라고 말이다.
“네가 믿는 네 모습은 가짜야!”
평생 숲에서 살아온 곰에게, 세상은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퍼부었다.
세상이란 공장은 존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원죄를 가진 존재의 태생적 결함이나 죄책감, 딸이니까, 엄마니까, 남자니까. 그냥, 너니까라는 직물로 지어진 코트가 수시로 바꿔 입혀졌다. 마침내 완성된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는 코트는 갑옷처럼 무겁기만 하다.
공장의 소음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버티던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그들이 원하는 '유능한 인간'의 옷을 입고 기계 앞에 서 있을 때마다, 그 안에서 짓눌린 본능은 조용히 파괴되고 있었다. 자신이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소진된 에너지는 결국 그를 심리적 탈진 상태로 몰아넣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를 곰으로 증명하게 한 것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쏟아지는 졸음이었다.
“인간은 겨울잠 따위 자지 않아! ”
세상이 몰아세워도, 그의 몸은 겨울이 왔음을, 이제는 쉬어야 할 때임을 기억해 냈다.
공장을 떠난 곰은 비록 안락한 호텔에서는 쫓겨나 찬 바람을 견뎌야 했지만, 마침내 눈 덮인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곰은 더 이상 인간이 입혀 둔 코트를 걸치고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동굴 앞 눈밭에 앉아,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마침내 우리가 기억해 낼 겨울잠은 무엇일까? 턱수염을 깎고 무거운 코트를 입으라는 강요와 압박을 뒤로하고, 오직 나를 나이게 할 본능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인 채로 살고 싶다. 타인에 의해 입혀진 코트 자락에 발이 걸리며 그들의 언어를 모방하는 대신, 태초의 나인채로 나만의 문장을 벼리는 존재가 되고 싶다.
더 이상 사라진 숲에 연연하지 않으리. 내가 나 임을 기억할 뜨거운 본능을 따라가, 더 이상 졸음을 참지 않을 것이다.
[나를 달래는 기록 #7]
숲으로 가는 길 위에 세상이 입혀준 코트를 벗어 놓았다. 무거운 코트에 눌려 있던 원래 내 코트는 털이 눌리고 얇아져 추웠다.
나는 보폭을 넓혀 성큼성큼 숲으로 들어간다. 곧 동굴이 나올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나다워질 꿈을 꾼다. 거기선 더 이상 졸음을 참을 필요가 없으므로.
요르크 뮐러/ 요르크 슈타이너-그림책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