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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테 Sep 27. 2021

내가 뭐 백수하고 싶어 하나?!

나는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20대 끝자락 결국 백수가 되었다. 


내가 백수가 된 이유


'백수(白手)' 라는 단어를 초록창 국어사전에 보면 '아무것도 끼거나 감지 아니한 손' ,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두가지가 나온다. 보통 백수라 하면 후자인데 나는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는 아니니까 백수는 아니지 않나 라는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고등학교때부터 나는 일반적인 인문계 학생들과 다르게 요리사를 꿈으로 요리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따고 펜 대신 팬을 잡고 전문대에 진학했다. 전문대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적성에 맞는 것을 하니 성적도 좋았고 무엇보다 배우는게 즐거웠다. 남들은 지잡대다 뭐다 하겠지만 여튼 전문대 2년간의 과정은 내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한때가 되었다. 그러고 일본워킹홀리데이를 통해 첫 직장을 다니면서 주방일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되어 10여년간 쌓아온 요리사의 모든걸 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첫번째 도전으로 블로그를 통한 디지털노마드였다. 한 반년정도의 달콤한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일이었다. 최고 수익 한달 800만원이 넘었었는데 그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그리고 그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야했는지 잘알지 못한채 내 분에 넘치는 행운은 곧 내 그릇을 떠났다. 그때 더 요행을 바라며 암호화폐에 손을 댓다. 2017년말 말도 안되는 불장에 끝물에 들어와 개미들이 그랬듯 나도 한낱개미에 불과하게 장렬히 전사했다. 


두번째 도전으로 일본공항 지상직에 도전했다. 기껏 열심히 배운 일본어를 써먹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일본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도피였던거같다. 월드잡에서 운영하는 케이무브연수에 일본지상직연수과정이 있었고 잘모르는 분야지만 어차피 내가 전공인 요리 외에 취업한다는건 이런 루트로 밖에 하기 힘들거라 생각해 도전한것이다. 취업은 잘됬다 이상하리만큼 근데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더 꼼꼼히 대비해야했다. 한국에서 배운것과 일본에서 실제 일하는건 괴리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하청의 하청으로 맘대로 부려먹는게 타국에서 더욱 서러움과 억울함이 밀려와 3개월만에 그만두고 한국에 다시 왔다. 


세번째 도전으로 창업을 했다. 그전에 마케팅관련 취업연계 프로그램도 받아봤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고 같이 연수받는 학생들은 나보다 어리고 관련학과도 많아 경쟁이 안됬다. 가장 큰 이유는 연봉이 최저시급도 안된다는 사실이 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라하지만 젊음의 가장 큰 무기는 시간인데, 그 시간을 성장가능성 없는 열정페이로 채워 기득권세대들 배불리는 행위는 나에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구한명과 동업하여 창업을 시작했고 동업의 뼈아픔을 맛보고 홀로서기를 했다. 올해 5월까지 아둥바둥 코로나와 싸우며 버틴가게는 그래도 시설비라도 받고 넘겼다. 그리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고등학교때부터 20대 초까지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다 달성해왔고, 나름 인생의 방향을 가지고 사는대로 생각하는게 아닌 생각하는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결과가 백수다. 하지만 백수도 백수 나름! 나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위의 사전적 정의로 단지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그런 백수가 아닌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전략을 가진' 백수기 때문이다. 전략을 가진 백수의 슬기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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