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너머로 어떻게든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엄마지만, 그 너머에는 아빠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아빠가 아빠의 도리를 안 하는데 왜 나는 딸의 도리를 해야 하냐며, 불쌍한 우리 엄마 괜히 날 낳아 고생한다고 꺽꺽 울며 소리를 질렀다. 그냥 지우지 뭣하러 낳았냐며 몹쓸 말도 했다. 나의 탄생으로 우리 가족이 탄생했으니 내가 죽어야 이 불행도 끝나겠구나 싶었다. 평소에 쓰지도 않던 말인데 한이 서린 아이고란 말이 계속 나왔다. 초상집 같았다. 그렇게 엄마는 아빠가 들어야 할 말을 대신 들으며 숨죽여 우셨다.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아빠의 알코올 중독 증상. 갓 스물이 넘어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으니 짊어진 짐이 많아 먹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약한 아빠는 술을 마시며 현실에서 도피했고 그 대가는 엄마에게로, 열 달 뒤에는 내게로, 그 6년 뒤에는 동생에게로 쭉 이어져 갔다. 아빠가 술을 마시면 우리 가족은 가장 먼저 부엌의 칼과 가위를 숨겼다. 나와 동생은 한 방에 문을 잠그고 있었다. 여성의 기능을 할 때즈음 큰 소리가 나면 동생을 두고 방을 나왔다. 싸우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셋이 되었다. 술을 이겨내지 못하니 당연히 가장은 엄마가 되었고 집을 기울어 갔다. 나중엔 대출 사기까지 당해 나는 부모님의 빚을 20대 나이에 8천 가까이를 갚았다. 월세가 세 달이 밀려도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나는 나의 자리에서 벌어먹고 살기 바빴다.
결혼을 앞두고 나의 불행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전염되기 시작했다. 결국 참을 수 없어 그 사달을 만들었다. 상견례도, 결혼식에도 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어느 누가 내게 돌을 던진다 한들, 모진 딸이라고 욕을 한들 내 인생에 한 번뿐인 날과 새롭게 생길 나의 가정을 지켜야 했다. 가장 행복해야 하는 그 순간에 술과 아빠를 앞에 두고 불안에 떨고 싶지는 않았다. 훗날 생길 나의 아이가 행여나 아빠의 술주정을 볼까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모진 딸이 되기로 했다.
"우리 아빠는 내가 어릴 적 바람나서 도망간 거야. 알았지? 나한테 이제 아빠는 없어."
나는 나의 가족이 될 H에게 말했다. 어느 누구보다 내 옆에서 나의 오열을 지켜봤을 그였고, 누구보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그였다. 어떤 날은 괴롭게 우는 나를 보고 함께 울기도 했다. H는 말없이 나를 토닥였다.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내 가족이 된다. 내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살게 했다.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그렇게 나는 살아있는 아빠와 이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