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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별 Feb 24. 2021

취미보다 먼, 중독보다 가까운

알콜중독은 아니지만 마시는 횟수로 보아 의존의 단계에 들어선것 같다. 기분이 좋아 술을 마시고 힘들때도 술을 마시고 일이 잘 풀리거나 풀리지 않아도 술을 마신다. 맛있는 안주와 거기에 맞는 술을 페어링 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요즘엔 오히려 빈속에 맥주로 배를 채우고 있다. 거의 매일 안주를 달리 해가며 술을 마셨더니 늘어나는 체중에 대한 나름의 관리랄까. 주변에 술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것도 한몫 한다. 어제 A와 많이 마셨으니 오늘은 좀 쉴까 하면 B한테 한잔 하자며 연락이 오는 것이다. 딱히 다음날 일정이 없다면 거절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사양 하지 않고 술 마시러 나간다. 그리고 나에겐 아주 많은 동네 친구가 있다. 일주일에 일곱번 마시는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여기까진 혼자 살때의 일이었고 반려견 달에를 입양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술이야 앉았다 하면 6-7시간 마시게 되므로 강아지를 두고 술을 마시러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든게 ‘박별Bar’다. 3인용 소파에 3인용 벤치와 테이블을 놓은게 전부지만 팬분들한테 선물 받은 네온사인 간판과 미러볼, 그리고 운치 있는 음악과 함께 각종 배달 음식을 잔뜩 시켜두면 완성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서교동의 내로라 하는 바 중 하나가 됐다. 소파에 앉아 조명을 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혼술도 적잖이 했다. 누군가와 함께 마시거나 혼자 마시거나. 폭음은 안하지만 적당량을 아주 자주 마셨더니 안마시는 날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로 그냥 심심해서, 할 게 없어서 술을 마시는 친구도 있다. 취미가 음주인것이다. 어느 이력서에도 적을 수 없는 취미지만 그에겐 최고의 여가생활 일테다. 자주는 안마시지만 한번 마셨다 하면 고꾸라질때까지 마시는 친구도 있다. 우리 모두 이 두 친구 다 알콜 의존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이라기엔 왠지 무섭고 나도, 친구들도 중독이 아니었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래, 우리 다 알콜의존이지 뭐” 라며 퉁치는 것이다. 알콜중독이라고 하면 치료받고 센터에도 들어가야 할것 같으니까.

술은 계속 마셨지만 술자리의 즐거움은 20대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제대로 배웠다. 그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때는 단골술집에서 친구들끼리 말하지 않아도 모였었다. 날이 좋으면 좋아서, 비오면 비가와서. 일 끝마치고 가면 늘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우정을 나누며 예술에 대해 얘기하고 연애와 사랑에 대해 논했다. 앉았다 하면 8시간, 밖에서 해 뜰때까지 마시기 일수였고 맥모닝으로 하는 해장은 자연스러웠다. 술은 좋아했지만, 그리고 잘 마시는 편이었지만 술자리의 즐거움은 아슬아슬하게 20대 막바지에 잘 배웠다. 들이붓는 술이 아니라 삼삼오오 모여서 깡통철학이라도 나누며 동조하거나 반박하고 말도 안되는걸로 싸웠다가도 술로 화해하는 그런 친구들. 그런 술자리.

매번 홍대에서 마셔서 그런지 바다가 가고 싶었다. 멀리는 아니더라도 가까운 한강에서 강물 흐르는 걸 바라보며 친구들과 한잔 하고 싶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왠지 센치해져서는 “우리는 평생 바다는 커녕 한강에도 못 갈거야”라고 읊조렸다. 시간은 새벽 4시. 맞은편에 앉아 함께 마시던 친구가 먹던 술을 들고 일어서서 “왜 못가 지금 가자 애들 다 부르자!” 객기를 부렸다. 찰나의 객기인줄 알았는데 친구들한테 싹 다 전화를 돌렸다. 간곡히 부탁하기도 하고 호기롭게 성질을 부리기도 하면서 친구 부탁 한번 못들어주냐며 전화를 돌리고 우리는 망원 한강지구로 갔다. 거기, 배 내려가는데 있지 않나. 그곳에 삐딱하니 누워 가져온 술을 마시고 있는데 놀랍게도 하나 둘씩 결국 친구들이 모두 와주었다. 한명도 빼지않고. 그들은 무슨 일이냐며, 박별 혹시 암이야?? 라고 사색이 되어 달려온 친구도 있었다. “아니, 그냥 너네랑 한강에서 술 먹고 싶어서” 말했을때 거의 한대 맞을뻔 했지만 그래도 다들 큰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한잔씩들 했고 해가 뜨고 사람들이 운동하러 돌아다니는 와중에서도 술을 마셨다. 아마 내가 진짜 암에 걸리더라도 친구들이 이렇게 모두 모여주진 않을거다. 이제 우리는 방황을 끝내고 각자 자리를 잡아 바쁘게 음악하는 30대 중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을 그때처럼 마시면 하루도 아니고 이틀을 잃어버린다. 내내 잠만 자는거다. 진정한 해장은 잠이라서, 일정이 딱히 없으면 숙취가 풀릴때까지 내내 잠만 잔다. 다들 프리랜서라 일정으로부턴 자유롭지만 이제는 몸을 사리게 되더라. 다가올 숙취, 두통, 날려먹을 시간 등이 걱정되어 전만큼 신나게 마시지 못하는것이다. ‘청춘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린 아직도 청춘인가’를 논하던 20대의 청춘들은 이제는 어른이 되어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청춘 조차 논할 일이 없는 30대의 알콜의존증 환자들이 되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지 3년이 넘었다. 알려졌다시피 우울증 약을 먹을때에는, 사실 무슨 약이든 그렇지만, 술을 마시면 안된다. 용량이 높은 우울증 약이나 무슨 일이 있어도 술과 함께 먹으면 절대 안되는 약을 복용했을 경우 친구들이 이상해지는것도 봤다. 무서운건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다. 우울증약이 기억력을 점점 감퇴시키긴 하지만 술과 함께 먹으면 그날 기억은 다 날아가기 십상이다. 그래도 술을 마신다. 다니는 정신과 주치의한테는 비밀로 하고 계속 술을 마신다. 맥주,와인,위스키,청하 등등 소주 빼고 가리는거 없이 다 마신다. 취미처럼 버릇처럼 중독은 아니지만 계속 마신다. 아마 내가 술을 자제한다면 그 이유는 체중감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것이다. 60이 되어 친구들과 한잔 하는 상상을 한다. 하나 둘씩 모여 어느새 전부가 자리를 잡고 있는 홍대의 24시간 김치찌개집에서, 그때는 개똥철학 대신 좀 살아본 인간의 지혜 보따리를 풀어내며 늘 하던 말, “한 잔 먹고 잊어버려”를 외치겠지. 20대 끝자락에서 청춘을 부르짖던 우리들이 여전한듯 술잔에 비친다. 이래서 술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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