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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는 밤에

#687

by 조현두

비가 그친 골목 끝,
늦은 바람이 불어온다
돌담 아래, 찢긴 꽃잎
빗물이 스며든 자리마다
붉은 흔적이 번진다

나는 그 꽃을 본다
붉은 것은 선명하고,
촉촉한 꽃잎은 아직 따뜻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나는 끝내 닿지 못하고

한때는 소중했으나,
한때는 너무 아팠으나,
이제는 그저 멀리 남겨둬야 할 것.

멀리서 종소리가 울리고
어둠은 점점 짙어지는데,
꽃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 자리에서 스러지고 있었다

보고 싶지만,
다시 손에 쥘 수 없는 것이 있다
손끝에 남아 있던 온기마저
천천히 식어가는 밤

나는 서서,
그냥 서서,
바람이 꽃잎을 데려가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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