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시즌_ 진저리
시골을 배경으로 한 글과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말에 <진저리>를 추천받아 읽었다. 2권이란 콤팩트한 분량과 소재 모두 좋았다.
특히, 공어매(수보다 공캐릭터에 더 몰입하는 비엘러) 에게 주인공 황장엽의 순애보는 핵폭탄급 설렘이었다.
황장엽이.
내 니 한 번 억수 사랑했데이!
줄거리
서울에서 크게 치던 사업이 망해 땅끝 어촌으로 도망쳐 온 염 씨네 일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모친이 도망가자, 주인수 염기정은 학교도 안 간 어린 동생 기영과 무능한 부친을 돌보며 살아간다.
어느 날, 아픈 기영을 업고 쩔쩔매던 기정은 섬에서 가장 뱃일을 잘하기로 소문난 어부 장엽에게 도움을 청한다. 투박하고 험상궂지만 잔정이 많은 장엽은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밟히던 기정과 기정의 삼부자를 돕기 시작한다.
이후, 장엽은 기정에게 집착에 가까운 과격한 애정을 쏟게 된다. 사랑했던 이를 서울로 떠나보낸 장엽은 급기야 기정의 대학 입학마저 막는다. 지긋지긋한 어촌을 떠나는 게 평생의 꿈이었던 기정은 결국 장엽의 통장을 들고 서울로 야반도주한다.
다녀왔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정은 끝내 서울에 터를 잡는데
성공한다. 한편, 기정의 회사는 기정의 출신지인 어촌 근처의 섬에 리조트 사업을 확정한다. 기정은 기영과 장엽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파견을 자처한다.
어느덧 훌쩍 자란 동생 기영은 저를 버리고 간 형 기영을 거부한다. 모진 세월을 견딘 장엽 역시 기정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 기정의 진심 어린 참회로 두 사람은 어긋났던 마지막 단추부터 하나씩 짜 맞춰 나아가게 된다.
감상
현생과 덕생을 막론하고 말을 예쁘게 안 하는 캐릭터를 싫어한다. 소위 '츤데레'라는 이율배반적인 인물에게도 정이 안 간다. 장엽은 츤데레인 데다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장엽의 태도가 납득 됐다.
장엽은 아무 대가 없이 가난한 형제를 거두고, 염 씨의 초상을 거뒀다. 배신자 기정이 버리고 간 기영까지 7년 넘게 키웠다. 곁에만 있어 달라는 애원을 뿌리치고 달아난 그에게 좋은 말이, 다정한 태도가 가당키나 하냐.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
작가가 의도한 지는 모르겠으나 기정과 장엽 모두 엄마의 삶을 이어받았다.
기정의 엄마는 굶주리는 자식과 못난 남편을 두고 도망간 여인이다. 기정은 엄마를 이해한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다 몇 년 후, 똑같이 동생과 장엽을 버리고 떠난다.
반면, 우악스럽고 이기적으로 묘사되던 장엽의 엄마는 미우나 고우나 장엽과 함께 했다. 장엽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싸운다. 사는 내내 만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추앙받진 못했던 여인은 아들 장엽과 함께 남의 자식 염기영을 키워냈다.
그런 의미로 기영은 버려짐과 동시에 지켜진 아이다. 유복하진 않아도 책임감 있는 어른들의 품에서 자란 기영이 멋진 어린이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디 버려짐과 동시에 지켜진 사랑이 내리사랑뿐이랴.
거센 풍랑과 폭우에도 무너지지 않던 장엽의 순애는 바람 앞에 등불 같던 못난 남자, 염기정의 ‘진저리 나는’ 귀소본능이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