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만남
Hast du vielleicht Donnerstag am Abend Zeit? 너 혹시 목요일 저녁에 시간 있니?
Vielleicht(퓔라이히트)라는 말은 50%의 확률이 담긴 혹시, 어쩌면이라는 뜻이라고 배웠다. Wahrscheinlich(봐샤인리히) 역시 비슷한 뜻이지만 여기에는 90%의 확신이 담겼다고 한다.
Vielleicht 대신 Wahrschenlich가 들어갔다면 이 문장은 “너 아마 목요일 저녁에 시간이 있을 거 같은데?”라는 뜻이 되어 내가 시간이 있다는 걸 그가 거의 확실시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Vielleicht를 썼으니, 그는 지금 50%의 기대를 갖고 조심스레 묻는 것이다.
심심할 때 가끔 친구들의 독어 메시지를 이렇게 문법적으로 뜯어보고는 한다. 뜻이 비슷비슷한 많은 단어들 중에서 굳이 그 단어를 고른 데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 원래 문장 안에서 그 단어를 빼고 사전에 적힌 풀이를 그대로 대입해 다시 읽어본다던가, 또는 그 친구가 선택한 단어가 다른 유의어들과 비교해 어떻게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는 지를 찾아 그 미묘한 차이점을 음미한다던가 하는 일들.
독일어를 외국어로 습득하는 외국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이다.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남자라고 다르지 않다. 확신이 없는 사이에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50%의 기대를 갖고 용기 내 물어봤을 그에게 용기 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깔끔하게 대답했다.
“저녁 6시 우리 집에서 피자 먹을래?”
목요일 오후, 그가 오기 전 아이와 잠깐 산책을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에게 이따 보자며 메시지가 왔다.
그의 집과 우리 집은 1km가량 떨어져 있는데 정확히 중간 지점에 꽤 큰 공원이 하나 있다. 날씨도 좋은데 산책하러 나가는 김에 겸사겸사 만나서 같이 걸어오면 좋을 것 같았다.
“우리 지금 나가려던 중인데, 이따가 공원에서 만날까? 우리가 마중 갈게.”
“응. 좋아. 나도 서두를게. 근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약속 시간까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 당연하다. 지금쯤이면 아마 일 마치고 들어와 좀 쉬면서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했을 시간이다.
아이랑 나랑 먼저 공원 놀이터에서 놀다가 얼추 시간 맞춰 중간 지점에서 만나자는 뜻이었는데, 괜히 빨리 나오라고 보챈 것 같아 얼른 답장을 보냈다.
“아냐 아냐. 우린 산책하러 먼저 나가는 거야.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춰서 이따 공원에서 보자.”
그는 별 다른 약속 없이도 우리가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우리는 공원에 좀 더 머물기로 했다.
아이는 역시 밖에서 뛰어놀아야 한다. 좁은 집에서 셋이 복작복작했던 지난번 만남과 비교하니 훨씬 수월하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와는 달리 그와 아이는 에너지가 넘쳤다. 둘이서 커다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신이 났다.
여느 때 같았더라면, 나무 위에서 잡아달라고 외치는 아이의 부름에 하루 종일 공부하고 집안일하느라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달려가 아이를 이고, 지고, 받치느라 피곤했을 텐데 오늘은 이렇게 나 대신 놀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편하다.
멀대 같이 키 만 큰 줄 알았는데 그의 몸놀림이 제법 날렵하다.
“너 꽤 운동신경 있어 보인다.”
“그럼. 학교 다닐 때 학교 대표 운동선수였어. 공으로 하는 건 다 잘해. 달리기도!”
“아, 그래? 나도 초등학교 때 육상 했는데! 나도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야.”
“그래? 어떤 종목?”
“단거리. 그리고 중학교 때는 태권도, 고등학교 때는 수영을 했어.”
“태권도를 했어?”
태권도라는 말에 나무 위에 있던 그가 갑자기 내 앞으로 뛰어내려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얼른 겨루기 자세를 취하고, 기합을 한번 크게 넣었다.
“흐앗!!!! 그러니까 까불지 마!”
내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Sei lieb (부모가 아이들에게 흔히 "말 잘 들어, 예쁘게 굴어"라는 뜻으로 쓰는 말) 하고 말하자 그가 오버스럽게 뒤로 물러나며 제법이네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말로 뱉으니 새롭다. 그러고 보니 나도 꾸준히 운동을 했었구나. 작아도 체력이나 운동신경으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았는데 혼자 사내아이를 키우다 보니 체력이 항상 달린다.
늘 충분히 쉬지를 못하기 때문에 끼니라도 잘 챙겨 먹고, 잠이라도 푹 자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그가 피자를 주문하는 동안 아이를 씻기고 재울 준비를 마쳤다. 먹고 나서 양치만 하면 되게.
아이는 피자를 무척 좋아하는데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 만을 위해 한 판을 시키기에는 양도 많고 비싸서 자주 안 시켜주는데 오늘은 피자를 먹는다니 아이가 신이 났다.
공원에서 충분히 놀고 들어와서 그런지 오늘따라 얌전하고 말도 잘 듣는다. 지난번보다 수월하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니 여느 때처럼 그가 혼자 식탁에 앉아있다. 언제나 그가 앉는 자리에. 우리 집에는 3인용 소파가 있지만 그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소파에 나란히 앉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식탁을 가운데 둔 채 마주 보고 앉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그렇게 코로나 발 사회적 거리두기가 충실히 지켜지고 있었다.
거실을 둘러보던 그가 내 디지털피아노를 가리키며 물었다.
“피아노 쳐?”
“아, 응. 엄청 잘 치는 건 아니지만 혼자 좋아할 만큼은 쳐.”
“멋지다. 우리 엄마도 피아노 치는데.”
“너희 엄마도?”
“응. 지금은 더 이상 안 치지만 내가 어릴 때 항상 엄마가 피아노를 쳐 주던 게 생각나. 엄마가 피아노를 치면 그걸 듣는 게 좋았어.”
“그럼 너도 피아노 칠 줄 알아?”
“아니, 안타깝게도 나는 못 쳐. 나는 악기 연주보다는 음악 듣고, 춤추는 걸 더 좋아해.”
“헉. 춤추는 걸 좋아해? 나는 완전 몸친데…. 난 노래하는 걸 더 좋아하는데 독일에는 노래방이 없어서…. 집에서 노래하고 싶을 때 대신 피아노나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거야.”
“언제 나도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고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 그럼 지금 들어볼래?”
어릴 때 3년 정도 잠깐 배웠던 피아노를 까맣게 잊고 살다가 이혼하고, 근 20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처음 2년 정도는 망가진 키보드를 주워다가 바닥에 놓고 유튜브로 손가락 연습을 했고, 한국에 갔을 때 집중코스로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악보 보고 치는 방법을 다시 익혔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오자마자 배운 걸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큰 맘먹고 디지털피아노를 장만했다. 4년 넘게 망설이던 결정이자, 싱글맘으로 살며 처음으로 해본, 오로지 나의 유흥만을 위한 사치스러운 결정이었다.
예측하고 산 건 아니었지만,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할 일이 없어진 덕분에 내 피아노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피아노 연주는 스트레스를 푸는 데도 아주 효과적이었다.
40-50분 푹 빠져서 피아노를 실컷 치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스트레스 해소법이 또 있을까? 그동안 내가 피아노를 치며 느낀 정서적 위안을 계산해본다면 피아노 값 본전을 충분히 뽑고도 남으리라.
나에게 피아노는 사치가 아니라 살아간다는 고독한 수행 길에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물해 준 가치 있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장만하는 일이 이렇게 후회 없는 일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 앞에서 쳐 보인다고 나름 잘 치는 곡을 골랐는데도 몇 군데 틀렸다. 치기 전에는 마음이 편안해서 부담 없이 쳐준다고 한 건데, 누가 보는 앞에서 친다는 건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자꾸만 그를 의식하게 되어 손가락 끝이 찌릿찌릿하고 땀이 났다.
괜히 쳐준다고 했나 보다.
아이가 깰 까 봐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조용했고, 그럭저럭 무사히 연주가 끝났다.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니, 약간 놀란 듯 멍하게 뜬 눈으로 입은 살짝 벌리고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그가 작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쑥스러워 괜히 한마디 했다.
“생각보다 많이 틀렸네. 괜히 쳐준다고 한 거 같아.”
“아냐. 듣기 좋았어. 나 라이브 연주 좋아하는데, 피아노 연주를 이렇게 바로 옆에서 들으니까 정말 좋다.”
진심으로 만족하는 듯한 그의 표정을 보니 나도 금세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그의 엄마는 가족상담사였다. 그래서 그도 17살 때부터 한 달에 한번 꼴로 엄마가 이끄는 그룹상담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3년간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문제에 관해 들었고, 그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했다.
그가 나이에 맞지 않게 월등하게 깊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였다.
“문제에는 두 종류가 있어. 진짜 문제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 많은 사람들이 문제 때문에 끝없이 인생을 낭비하지만, 그중에서 정말 고민할 가치가 있는 문제들은 몇 안돼.”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이 뭔데?”
“이를테면, 거울 앞에 서서 살을 빼고 싶다던가 어디가 못 생겨서 속상하다던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은 진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비하면 정말 피상적이지.”
“그럼 네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들은 뭔데?”
“질병, 기아, 전쟁, 죽음 그리고 가족의 해체와 같은 것들이지. 아파서 자기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해 남은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기본적인 먹을 것조차 없어서 굶어 죽는 아이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소중한 아들이 죽고 난 뒤로 몇 년째 밤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엄마의 절절한 고백이나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는 참전군인의 울부짖음 같은 걸 3년 동안 듣고 나면, 이 세상에는 사실 그렇게 크게 고민할 일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게 돼.”
“그렇긴 하지만, 사람마다 고통의 강도를 견디는 능력은 다 다른 거잖아. 고통의 무게를 과연 그렇게 함부로 비교해서 재단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아니지. 찾아와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팔순 노인에게 오늘 오후 함께 퍼즐을 맞추기로 해놓고 못 오게 됐다는 누군가의 전화 한 통은 그를 몸져눕게 할 만큼 깊은 슬픔에 빠지게 만드는 고통이기도 하니까.”
아주 구체적인 예시인 걸로 보아 그가 요양보호사로 일 할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인 것 같았다.
“그 취소 전화 때문에 누가 몸져누우셨어?”
“그럼. 일주일 내내 그 약속만 기다리고 계셨었거든.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소한 일이 팔순 노인들에게는 건강이 악화될 만큼 큰 실망으로 다가오기도 해.
아무튼 고통의 무게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진짜 고민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들과 그렇지 않은 문제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
그의 말은, 고통의 무게를 일괄적으로 달아 네 문제는 질병, 죽음과 같은 것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으니 입 다물라는 뜻이 아니었다.
삶을 좀 더 거시적으로 보고,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이 아니라면 다 길이 있으니 삶을 낙관한다는 뜻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나도 힘들 때면 그런 생각을 하곤 해. 그래도 아이랑 나랑 몸 건강하고, 밥 굶지 않고, 비 피할 집과 추위를 막아줄 벽이 있으니 바랄 게 뭐가 더 있을까 싶은 그런 생각.
너도 알겠지만, 남편이랑 헤어지고 처음에 아이랑 보호소에서 시작했거든. 그때는 정말…. 너무나 막막했어. 독일어도 못했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고, 아이는 이제 겨우 돌이 지났는데 이 낯선 독일 땅에서 아기랑 둘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감당하기 힘들었어.
그래서 난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해. 남들이 보기에는 낡고 좁은 집일지 몰라도,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밤새 아이랑 내가 맘 편히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몰라.”
그동안 틈틈이 곁다리로 내가 어쩌다 독일에 남게 됐는지 말을 하긴 했었다. 숨길 게 없으니까. 청승맞아 보이고 싶지 않아 구구절절 풀어놓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얘기들을 하니 아기랑 고생하던 때가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때의 감정들이 차올라 목이 메었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나 보다, 그때 일을 회상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파오는 걸 보면.
말을 더하면 울 것 같아서 시선을 피하고 감정을 추스르는 나에게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넌 정말 정말 강한 사람이야. 아무도 없는 독일에서 아이랑 여기까지 왔잖아. 작지만 누구보다 큰 마음을 갖고 있어. 그리고 정말 좋은 엄마이기도 하고. 게다가 아주 예쁜 여자이지.”
Eine wunderschöne Frau
눈 가에 눈물이 고였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그의 칭찬에 조금 민망해질 무렵 맨 끝에 아이네 분더쉬네 프라우(아주 예쁜 여자)라는 그의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드니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이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어찌할 바를 몰라 표정관리가 안 되는 나와 달리, 그는 입에 한껏 미소를 띤 채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강한 사람이라는 말은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다. 독일에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여기 사람들은 나를 마치 여전사라도 되는 양 대했다. 좋은 엄마라는 말도 적지 않게 들었다.
그런데 예쁜 여자라는 말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남자에게, 불쾌하지 않게, 대놓고 들은 일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는 보통 잘 꾸미고 나갔을 때나, 아니면 친한 여자 친구들이 기분 좋게 칭찬해줄 때, 또는 개념 없이 무례한 인간들에게 희롱을 당할 때다.
그런데 함께 배 터지게 피자를 먹고 식탁 앞에 앉아있는 괜찮은 젊은 남자가 맨 얼굴에 츄리닝을 입고 있는 애엄마인 나에게 예쁘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능글맞게!
이건, 썸이다!
지금 내 앞에 앉아 팔짱을 낀 채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는 뻔뻔하게 눈썹을 들썩이며 자기가 던져놓은 말에 당황하는 내 표정을 한없이 재미있는 얼굴로 즐기고 있는 이 남자,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타고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금부터 내가 너를 꼬실 거야.
기대해!
그는 그렇게 지금껏 보지 못한, 세상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에게 매우 간접적이면서도 아주 분명하게 썸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