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연애 시장에 뛰어들며 세운 대원칙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날 때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만나는 남자들을 아이가 다 알 필요는 없으니까.
상대 남자와 나의 관계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아이를 소개해 나와 아이에게 도움될 건 없다.
아빠 없는 아이가 덜컥 마음을 줬다가 데이트하던 남자가 돌아서면 아이가 실망하게 될 것도 싫다. 정 많고 사람 좋아하는 아이인데.
아이와 남자가 서로 마음에 들어하는데 내가 그 남자를 별로라 느끼게 될 때 복잡해지는 것도 싫다. 나는 아이의 새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길고 고독한 삶을 심심하지 않도록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동무를 원하기 때문이다.
또, 혹시라도 남자가 내 마음을 끌기 위해 아이를 이용할까 봐 걱정되는 것도 있다.
순전히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나를 굽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 한 시간들이 있었다.
다시는 내 아이 때문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아닌 남자 때문이라면 더더욱.
이 원칙은 거꾸로도 적용되었다.
아이와 함께 만난 남자와는 데이트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와 돌아다니며 함께 만나게 되는 남자들, 이를테면,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이나 축구코치, 태권도 사범, 아이 친구들의 아빠들 또는 남자 가족들, 동네 이웃 등의 남자들에게는 추파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 동선을 공유할 확률이 높은 남자들과 시시덕거렸다가 나중에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잘 안됐을 때 서로 민망한 건 둘째 치고, 내 아이가 누구고, 우리가 어디 사는지 다 아는데 나중에 괜히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한국 남성들과 비교해 독일 남성들은 상당히 수동적이다. 일단 마음이 오고 가면 그 뒤로 수위조절은 재량이지만, 그렇게 마음이 오고 가기 위해 눈빛으로 플러팅을 하고 먼저 남자를 유혹해야 하는 것은 처절할 정도로 여자의 몫이다.
여성의 인권도 높은 데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일이라면 딱 잘라 거부하는 독일 여자들에게 남자가 함부로 내지는 일방적으로 찝쩍거렸다가는 대놓고 뺨 맞기 십상이다. 그래서 여자가 먼저 틈을 내어주지 않으면 남자들은 절대, 네버 다가오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에 반해 강요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어떤 의도를 가졌든 일단 일종의 폭력으로 간주하고 한번 브레이크를 밟는 독일인들.
내가 먼저 추파를 던지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남자를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성가신 일에 휘말릴 일도 거의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아이 데리고 혼자 살기에 꽤 만족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런 원칙을 지키자면 만날 수 있는 남자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집, 학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전부인 나에게 집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싱글로서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오픈할 수 있는 공간은 학교밖에 안 남는데, 나는 대학 동기들과도 데이트하지 않기 때문이다.
Don’t Shit where you eat
네가 먹는 곳에서 싸지 말라는 이 말은, 사내연애를 경계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직장은 아니지만, 졸업할 때까지 계속 봐야 하는 사이인 데다 매 학기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안전한 졸업을 위해 굳이 복잡한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다만, 좋은 사람들을 두루두루 알아둬서 장차 나쁠 건 없겠기에 만약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친구사이로 잘 지내다가 졸업하고도 괜찮다 느껴지면 그때 대시해보기로 했다.
그전에 그가 인연을 만난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와는 인연이 아닌 사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싱글맘 친구들은 진작부터 연애 시장에 뛰어들어 굽이굽이 사랑의 희로애락을 맛보고 있는데 나는 오랜 기간 조용했다. 그래도 썩 나쁘지 않았다.
인연이라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모든 것에는 각자의 때가 있으니까.
또 사람에게는 연인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부분과 혼자인 시간을 잘 보내야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이 있을 때는 그에게 충실하면 되는 것이고, 혼자일 때에는 언젠가 나와 정말 잘 맞는 좋은 짝이 나타났을 때, 나 역시 그에게 걸맞은 좋은 짝이 될 수 있도록 그 시간 동안 나의 내실을 다지면 된다. 결국 쓸모없는 시간은 없는 것이다.
결혼도 해봤겠다, 내 새끼도 하나 있겠다, 생각해보면 내 입장에선 딱히 아쉬울 게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싱글맘의 삶은, 피눈물 나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것이다. 이미 아쉬울 것 없는 내 인생에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곁을 내어줘야 할 남자라면 이 정도 필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온종일 별 볼일 없는 남자들과 시답지 않은 메시지를 보내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를 하는 것보다 아이와 나에게 집중하며 살다가 매력적인 남자가 나타나면 가끔 데이트를 즐기는 게 생활패턴에 훨씬 적합했다.
가족의 도움 없이 아이를 혼자서 키우다 보니 현실적으로 느긋하게 누군가를 알아갈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아이 없이 보낼 수 있도록 허락된 귀하디 귀한 시간을 아무에게나 값어치 없게 쓰고 싶지 않았다.
또 어떤 의도로 나에게 접근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들의 불안한데이트 신청을 허락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 다가가는 게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에게 선택되는 것보다 내가 선택한 남자와 데이트를 할 때 더 즐겁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지간하게 매력적이지 않고서는 굳이 내가 먼저 다가갈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데이트를 한다고 해도 나와 진지하게 관계를 발전시켜 가려고 공들여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굳이 더 이상 애쓰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 옆자리라는 게 내가 자리를 내준다고 해서 아무 남자나 쉽사리 서서 버틸 수 있는, 그런 만만한 자리는 아니니까.
데이트 신청으로 나는 이미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선택은 그의 몫이어야 했다.
인생은 짧고, 나는 언제나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서 오늘이 가장 현명했으며, 내가 살아갈 날들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었다.
안 그래도 고민할 게 많은 인생사, 사랑마저 번뇌와 고통으로 일그러트리고 싶지 않았다.
네 번째 만남이 있고 나서 우리는 3일에 두 번 꼴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주로 간단한 안부와 학사 정보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마저도 서로의 대답이 몇십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다음날까지의 텀이 있어 가끔 궁금해질 때도 있었지만 별 상관없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각자의 생활이 견고해지고 자기 일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누군가와의 연락을 위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일은 확연히 줄어든다.
엄마가 되면 특히 더 그렇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메시지에 한두 시간 늦게 답장하는 것은 예사다.
학기가 시작되어 둘 다 정신이 없었다. 나는 학업과 육아를, 그는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른이 훌쩍 넘은 으른들답게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고 있었다.
네 번째까지 우리는 공식적으로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래서 나도 시간 약속을 하고 만나는 데 적극적일 수 있었다.
이제 그와 나 사이에 볼 일은 다 끝났다. 내가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앞으로 그와 내가 만나야 할 일은 사적인 호감 외에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그가 과연, 나에게 먼저 만나자고 할까?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내가 다른 독일 친구들에 비해서 사랑의 번뇌가 적은 이유는, 남자를 남자로 대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관심이 있는 여자라면, 절대 헷갈리게 만들지 않는다.그러니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 건가 아닌가 잘 모르겠으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나에게 정말 관심 있는 남자는 내가 아무리 둔해도 모를 수가 없다.
남자는 관심 있는 여자에게 반드시 먼저 연락한다. 그러니 연락이 안 온다고 초조할 필요 없다. 열흘이 넘어가도 연락이 안 오는 남자는 그냥 잊으면 된다. 그럼 가끔 아쉬워서 뒤늦게 연락 오는 찌질이들이 있는데, 그것도 그냥 무시해주면 된다.
남자는 시시콜콜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보다 직접 만나기를 원한다.대부분의 독일 친구들은 여기서 가장 많이 헤매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다는 그놈의 극단적 남녀평등사상 때문인지, 밤마다 시답지도 않은 내용이 담긴 남자의 장문메시지를 문장마다 여자의 언어로 해석하며 몇 달째 속을 끓인다.
나에게 관심 있는 남자라면 조만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를 묻지, 수수께끼 같은 긴 메시지로 몇 주, 몇 달씩 장난질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은 대부분 남자면서도 여자의 언어를 사용해 여자들을 어장 관리하는 놈팡이들이다.
그런데 내 독일 친구들은 만나자는 말 대신 그런 메시지나 쳐 보내고 있는 놈팡이들을 다정하다고 해석했다, 매일 긴 메시지를 보낸다는 이유로. 그건 여자들이나 그렇다. 남녀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본다.
남자는 단순하다. 여자들처럼 복잡 미묘하지 않다.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다. 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나만의 의미를 불어넣을 필요 없이, 곧이곧대로 믿으면 된다.
좋은 남자는 위에서 언급한 남자의 언어를 쓴다.여자를 헷갈리게 하거나, 관심이 있는데도 표현하지 않고 오래도록 뜸을 들인다거나, 말과 행동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데, 한 번씩 연인 사이에서나 할 법한 사탕발린 말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면 그건 절대 좋은 남자가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어설픈 가짜들 말고도, 제대로 자기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랑하기를 원하는 진짜 남자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에게 먼저 만나자는 연락이 올지 말지 기다려보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행위이다.
그가 나에게 몇 주가 지나도록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친구사이로 남으면 된다. 친구로 두기에도 좀처럼 만나기 힘든 좋은 사람이니까 아쉬울 건 없다.
그런데 그가 조만간 만나자고 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도 알고, 나도 안다.
여자가 심심하다고 연락한다고 해서 목적도 없이 부를 때마다 달려올 멍청이는 없다. 남자는 단순할 뿐이지 멍청한 게 아니니까.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뭘 원하는지가 크게 중요할까?
글쎄, 그건 내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어쩌면 그 스스로도 아직 모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또는 앞으로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3일에 두 번 꼴로 간단한 메시지만 보내면서도 말미에, 조만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은 빼놓지 않던 그가 어느 날 목요일 저녁에 시간 있느냐며 물었다.
만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강정정 기간도 끝나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한 이때에, 구체적 시간을 콕 집어 만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