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원래 그 마트에 거의 가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은 멀리 떨어진 할인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어쩌다 한 번 들른 날 공교롭게도 나와 마주쳤던 것이라고 한다.
그는 나와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1년 반 넘게 살았지만 우리는 라이프스타일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움직이는 시간도, 동선도 달라서 전혀 마주칠 일이 없었다.
참고로 내가 늘 창 밖으로 내려다보던 우리 집 골목길은 그와 함께 일하는 친구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 그가 거의 매일 오고 가던 길이라고 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1 싱글맘과 코로나, 그리고 라푼젤
싸우고 왕래를 끊은 채 데면데면 지내던 옆집 여자와는 세 달 뒤 화해했다. 끝까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며 내가 원하는 식의 제대로 된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성격상 그 정도로 인정했으면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든다는 게 그런 거 아니겠나. 나와 다른 남들을 인정하고, 때로는 내 고집도 꺾을 줄 아는 것. 그녀는 가끔 감정 기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냥하고, 정 많고, 다정다감하며 받는 것 없이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좋은 사람이다.
그녀와 싸우고 왕래가 없던 몇 달간 사실 그녀가 그리웠고, 생각하면 슬펐다. 우리는 화해하면서 서로 꼭 끌어안고 지난 건 잊기로 했다.
놀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노는 건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제도 그녀는 맨 발로 우리 집에 들러 커피 한 잔에 30분 동안 나와 담소를 나누고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잘 익은 딸기 3개를 따갔다.
나는 그녀가 좋다.
이웃집 강아지를 함께 산책시키는 그녀의 딸과 우리 아들. 그 집 딸은 우리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다.
#2 그 남자의 정체
필립은 입학 초기에 그와 늘 함께 다니던 친구였다. 독일에서 보기 힘든, 음식이 새지 않는 멋진 도시락통을 들고 다녀서 빈이에게도 하나 사주고 싶어 그와 번호를 교환했었다. 그래서 헷갈렸나 보다.
그는 원래 아무 여자 하고나 번호를 교환하지 않는데, 나는 자기 마음에 들어서 번호를 준거라고 한다. 싱글맘이라 분명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호를 가져가고도 연락이 오지 않아 살짝 실망했다고도 했다.
그러다 1년 반이 넘어 나에게 처음 메시지가 왔을 때 내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직감하고는 빙그레 웃었다고 한다.
#3 첫 번째 만남
나와 열 번의 만남 동안 늘 함께 마셨던 사이다가 섞인 무알콜 맥주를 사실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는 맥주는 frisch gezapftes Bier. 아마도 생맥주인 듯하다.
내가 늘 같이 하자고 했던 보드게임도 사실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는 게임은 딱 하나, 여럿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전략적인 카드게임이며, 사귀고 나서 그는 다시는 나와 자발적으로 보드게임을 하지 않는다.
가끔 내가 아주 심심해 보이면 한 번씩 선심 쓰듯 놀아준다며 꺼내 올뿐….
왼쪽은 우리가 늘 함께 마시던, 내가 사랑하는 무알콜 병맥주. 오른쪽은 원래 그의 취향인 생맥주.
#4 그에 관한 몇 가지 기억들
전 여자 친구와 꾸준히 연락한다던 그 친구는 그 당시 동거 중이던 여자 친구와 작년 여름에 결혼하고 두 달 뒤 아기를 낳았다. 이미 오래 만나기도 했고, 자기를 자유롭게 놔두는 여자라 잘 맞는다고 했던 여자 친구는, 그러나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그를 아주 당혹스럽게 만든 모양이다.
무난하게 둥글둥글 아기를 키우고 싶은 그와는 달리, 이제는 아내가 된 그의 여자 친구는 전해 듣자 하니 유난도 그런 유난이 없었다. 5년이 넘도록 안 싸우고 살다가 아이 문제로 사사건건 부딪히니 힘든 게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내가 아이 때문에 힘들어할 때 너무 잘할 필요 없다며 대충 키우라고 조언하던 그가 떠오른다.
#5 그는 한참 어린 여자들과 같이 산다
그와 사귀고 나서 그의 두 여자 룸메이트들과 곧바로 통성명을 했고, 그 뒤로 우리는 가끔 어울려 함께 요리도 해 먹고 논다. 바쁠 때 아이를 맡길 곳이 늘어나니 정말 편하다.
참, 그가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운 사이에 둘이 청소문제로 싸움이 불거져 결국 하나가 이사를 나가고, 그 방에는 이제 스물네 살짜리 남자아이가 들어와 산다.
정리정돈에 영 재주가 없는 애와 결벽증에 가까운 애 사이에서 그동안 그가 정리정돈에 재주가 없는 애 대신 눈치껏 청소를 도와주며 중재를 잘했던 모양인데, 그가 사라지니 민낯이 드러났는가 보다.
한 명이 이사 나가고 나서야 둘 사이는 다시 나아졌고, 화해를 한 지금은 모두 사이좋게 잘 지낸다.
#6 근데 나 게이는 아니야!
그는 이 날 내 눈에서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존경하는 내 눈빛을 봤다고 한다. 어떤 독일 여자들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순수한 그 눈빛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본인이 아무 여자나 쉽게 만나는 남자로 보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성적으로 문제없는 사람이라는 걸 꼭 어필하고 싶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가 되기 전 그는 배우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그가 찍었던 10분짜리 단편영화를 보여줬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앳되고 귀여워서. 그의 스무 살 적 모습을 영화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7 원나잇이나 즐길 것 같은 남자가 말하는 종교와 신
“하룻밤 자고 헤어질 만한 남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실제로 그의 삶의 모토와 같았다. 그의 방에 놀러 갔다가 이 포스터를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의 방 옷장에 붙어있는 포스터. "나는 하룻밤을 위한 남자가 아니야!"
그는 실제로 신앙심이 아주 깊었다. 가스펠과 힙합, 레게를 사랑하는 이 남자는 성경 두 권을 각각 본인의 방, 우리 집에 두고 자기 전에 항상 읽고 잔다.
주말이면 주방에서 가스펠을 틀어놓고 우리가 좋아하는 크레페를 만들어 누텔라와 함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나와 아이는 그를 통해서 누텔라라는 혁명적인 신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 그가 저녁에 우리를 방문할 때면 제일 먼저 잠든 아이방에 들어가 꼭 머리맡에서 기도를 해준다. 내가 슬프거나 힘들 때에도 그는 내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해준다.
#8 그와는 썸 타는 사이가 아닌 이유
그는 내가 사는 집이 낡았다거나 주방이 초라하다거나 하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그가 생각했던 건 오로지 음식이 맛있었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방귀를 뀌었을 때에도 속으로 그냥 많이 웃겼을 뿐, 그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그날 비참한 기분이었다는 걸 말하자 그는 깜짝 놀랐다. 나는 너를 돕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속상했을 줄 몰랐다며….
올 초에 그와 그의 지인들 도움으로 드디어 소원하던 주방을 바꿨다. 주방을 끝으로 이제 내 집에, 보호소에서 이사 올 때 여기저기서 주워온 살림살이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은 내가 요리를 하면 언제나 그가 옆에 함께 서서 주방을 바로바로 치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불평하기보다는 각자 잘하는 것을 찾아 자연스럽게 나눠한다.
왼쪽이 내가 5년 넘게 써온 주방. 오른쪽은 새로 장만한 주방.
#9 남자의 특성과 싱글맘이 원하는 것
네 번의 만남이 있고서 그는 내가 자신이 찾던 여자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적극적이면 내가 놀라서 도망갈까 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고도 했다.
그는 내가 여느 여자들처럼 연락에 목을 매거나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만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점과 불필요한 오해 없이 남자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점이 좋았다고 한다.
#10 간접적이면서도 분명하게 여자를 꼬시는 법
그날 내가 어렴풋이 들은 것 같다던 그 목소리는 실제였다. 그는 실제로 눈빛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 그 전부터도 눈빛으로 나에게 끊임없이 유혹의 신호를 보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고 판단했단다.
그랬다. 나는 그의 눈빛을 서양인들의 대화매너인 아이컨택으로 이해했고, 그가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 맞춤을 중요하게 여기는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이야기할 때 나도 예의상 시선을 회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좀 피곤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유혹의 눈빛이었다니.... 독일에서는 그렇게 눈빛으로 남녀 사이에 썸이 오고 간다고 한다. 몰랐다.
나는 그 사실을 연애하고 1년이 지난 뒤에야 이 글을 연재하면서 처음 듣는다. 연인 사이에 대화는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나 보다.
#11 밥 잘해주는 누나
그는 내가 맨 처음 코로나로 집에만 갇혀있다고 했을 때 이미 우리를 데리고 드라이브 갈 생각을 했다고 한다. 또 내가 요리를 잘하는 걸 보고 당연히 플러스 점수를 줬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못 먹는 음식이 없었다. 독일인들이 힘들어하는 날생선까지 먹을 줄 안다. 우리는 식성이 비슷한 편이며, 내가 해주는 음식은 다 잘 먹는다. 마늘을 좋아하는 게 정말 마음에 든다.
담요를 덮고 팔 벌린 나를 보고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를 끌어안은 뒤 뒤도 안 돌아보고 간 이유는, 아직 키스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가 키스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담요 때문에 울고 싶었던 나와는 달리 그는 나를 끌어안았을 때 내 향기가 너무 좋아서 아찔했다고 한다. 나는 그날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끌리는 사이에서 서로의 체취는 정말 중요한 것 같다.
#12 코로나로 망가진 삶과 싱글맘의 비애
나의 심상치 않은 메시지와 그 후 답장이 끊어진 걸 보고 그 역시 내가 힘들다는 것을 대충 예상은 했다고 했다.
특히 너를 안아주겠다는 메시지는 썸 타는 사이에서 절대 씹힐 수 없는 내용인데 답장이 안 오는 걸 보고, 내가 독일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주 힘든 상황에 처한 걸 거라고 짐작했단다.
그래서 다음날 내가 와달라고 연락을 했을 때 기뻤다고 한다. 나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고....
실제로 그는 아이와 친해지자마자 제일 먼저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아이를 데려가 자기 방에서 재우고, 나 대신 아침에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보내주었다.
그로 인해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아이 없이 푹 쉴 수 있는 밤을 보냈다. 정말 살 것 같았다.
#13 사랑이 끝나고 난 뒤 그와 내가 배운 것들
그날 잔디밭에서 나와 노닥거리며 그는 간간히 내 눈빛에서 경계가 풀어진 것을 느꼈으며, 아닌 척하면서 플러팅을 즐기는 내 표정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아주 지조 있는 남자였다. 그와 함께 다니면 뭇 여자들의 눈길을 많이 받아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는 내가 만나본 남자 중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이면서도 나를 가장 불안하지 않게 한 남자이다.
그와 나는 사실 서로의 외모가 이상형은 아니었다. 그는 주로 금발머리를 만났으며, 동양 여자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외모만 보고 나와 이렇게까지 잘 맞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나는 키가 큰 남자보다 체격이 좋은 남자를 선호하는 편이며, 잘 생기고 못생긴 걸 떠나 착하고, 순하게 생긴 동안형의 수염 없는 얼굴을 좋아한다.
그는 키가 무척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에 얼굴이 상당히 갸름하다. 무엇보다 내가 처음 만나는 수염 있는 남자였다.
코로나로 인해 난생처음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잘 어울린다. 수염이 없으면 깔끔하고 댄디한 매력이, 수염이 있으면 뭔가 그윽하고 섹시한 매력이 있다.
#14 마음에 걸리는 세 가지
언제나 화장기 없는 내 맨얼굴이 예뻐서 그게 무척 마음에 들었으며,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과 가감 없이 감정에 솔직한 성격이 믿음직스럽고, 좋았다고 한다.
부모님의 재혼으로 맺어진 그의 막냇동생도 만나보았는데 아주 예쁘고, 얌전한 아가씨였다.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그의 모습과 오빠를 무척 따르고 좋아하는 동생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때 싱글맘과 만나던 그의 절친도 여전히 잘 만나고 있는 중인데 딸아이가 엄마를 사이에 두고 그의 절친과 자주 경쟁구도를 만들어 그게 조금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아들은, 9개월 정도 넘어가니 그제야 슬슬 감이 오는 듯했다. 그전까지는 드디어 레슬링하고 놀 호적수를 만난 듯 신이 났었는데 9개월에서 1년까지 한 세 달간 질투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신이 났다. 그가 바빠서 못 오면 서운해하고, 늦는 날이면 직접 전화를 걸어 얼마나 왔는지를 체크한다.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은 나와 아이를 환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줏대 있는 아들이 5년 간 솔로였다가 데리고 온 여자이다 보니 다들 내가 어떤 여자인지 무척 궁금해했다.
그의 근면 성실하고, 지고지순한 면은 아버지를 닮았으며, 유연하며 끼가 넘치고 도발적인 면은 어머니를 닮은 것이었다.
그의 엄마와 나는 같이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잘 통했고, 성격도 잘 맞는다.
그녀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이지만 농염하고 섹시했다. 부드럽고 상냥한 성격, 그러면서도 현명하고 지적이었으며, 여자로서 보기 드문 유머러스함까지 무척 매력적인 여자이다.
#15 그가 내게 약속한 두 가지
그는 내 삶을 정말 훌륭하게 서포트해주고 있다. 내가 마음먹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다 그의 지원 덕분이다.
그는 정말로 내가 울 때 나와 함께 울어주었고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살면서 내가 힘들고 나약해질 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100%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는 내가 독일 사회에 지쳐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내 삶의 안전지대가 되어줬고, 나는 그의 삶에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그가 나의 짐을 나눠 짐으로써 나는 다시 엄마로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아이와 행복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내가 엄마 노릇을 편안히 할 수 있도록 우리 삶에 여유를 가져다준 그에게 고마워진다.
캠퍼스에서만 만나던 대학 동기와 연애를 하려니 첫 반년은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나와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느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를 실제로 알고 나서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 다닐 때에는 수염 없이 짧은 머리였던 그가 코로나로 수염과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 머릿속의 그 대학 동기와 내 남자 친구가 된 이 남자를 매치시키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
내 남자 친구는 지금 여기 있고, 내가 알던 그 대학 동기는 이 동네 어딘가에서 혼자 알아서 잘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달까....
시간이 남는 저녁에 나는 더 이상 혼자 퍼즐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는다거나,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꼭 끌어안은 채 침묵을 즐기기도 한다.
요즘은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가 한창이라 함께 축구를 본다.
그와 나는 날라리와 범생이처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끔 농담처럼 우리가 10대 때 만났더라면 서로를 싫어하다 못해 원수지간이었을 거라고 웃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잘 맞고 조화로운 걸 보면 신기하다.
아마도 인생의 가치관과 삶의 지향점,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비슷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는 점과 솔직한 성격이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생활 소음만이 가득하던 무미건조한 나의 일상에 그는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멋진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배경음악이 있으니 삶이 단조롭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나는 더 이상 탑에 갇힌 라푼젤이 아니다. 머리를 길러 창 밖으로 내던져볼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