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체구가 작고 약해 보이는 여자라도, 아무리 순하고 수줍은 많은 성격을 가진 여자라도, 한국에서 웬만큼 기가 세다고 하는 여자들 이상으로 세다.
그 기가 세다는 것이 특별한 게 아니라 모든 여자들에게 기본값으로 장착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여자들과 맞춰 살아야 하기 때문일까?
독일 남자들은 아무리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겼어도 실제 성격은 마초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자들이 남자의 몫까지 하는 나라이다 보니 아마 남자들이 여자의 역할을 넘겨받은 게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여자의 입장에서 독일 남자들과 데이트를 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이 한국 남자들에 비해 남녀관계에 있어서 상당히 여성적인 면이 강하고, 심성이 유약하다는 것이었다.
독일 여자들이 워낙 강단 있고 스스로를 알아서 책임지다 보니 그녀들의 짝이 되어야 하는 독일 남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그런 강한 여자들에게 전적으로 맞추고 기대어 살며, 살림과 외조를 잘하는 나긋나긋한 남자가 되거나, 그런 독립심 강한 여자들의 특성을 이용해 적당히 즐기며 재미나 보느라, 관계에 대한 책임감이나 강인한 성인 남자로서의 자세를 기르지 못하고 사내아이들의 유아적인 특성만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 가벼운 피터팬들….
그리고 그런 독일인들의 내면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독일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과 그로 인한 병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 테면 동양 문화에 비해 가정의 기능이 미약해 어린 시절 가정의 붕괴나 해체를 겪은 사람들이 많고, 서구 사회 특유의 개인주의적 문화로 인해 부모나 가족과 깊은 정서적 유대관계를 쌓지 못한 채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채로 자라나는 사람들….
거기다 ‘나’와 ‘나의 욕구’라는 가치가 가장 중심이 되는 교육을 받고 자라다 보니, 자존감이 낮고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와 비교해 이 독일 사회는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들이 가득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른 식의 약육강식인 이런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욕구를 내려놓을 줄 아는 천성이 ‘착한’ 사람들은 그런 악독한 나르시시스트들의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
착한 것은 미덕이 아니라 어리석고 약해 빠진 패배자의 특성이었으며, 성인이 되고도 그렇게 순진했다가는 말 그대로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인정사정없이 짓밟히고, 멘탈이 탈탈 털리기 십상이었다.
비늘 사이로 난 상처를 통해 피 냄새를 흘리고 다니는 그런 가엾은 물고기들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들에 둘러싸여 살점을 물어뜯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독일은 그런 사회였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한 여자가 일을 하려면 남편의 서명이 필요했던 독일 사회에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투쟁했고, 덕분에 근 반세기 만에 여권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독일 아이들은 더 이상 남자라고 해서 남성성을 갖추거나 여자라고 해서 여성성을 갖추도록 교육받지 않았으며, 그렇게 성적으로 평등하게 자란 그들은 곧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크게 없는 중성적인 사회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강력한 교육의 힘으로도 타고난 남성성과 여성성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중성화된 독일 사회에서 맞는 짝을 찾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여성성이 강한 독일 여자들은 남성 중심 문화가 발달한 동양이나 중동 지역의 마초적인 남자들에게 끌려했고, 비교적 남성성이 강한 독일 남자들은 동양 여자들을 선호했다.
그녀들이 암만 강하고 기가 세다고 해봤자 전투기 같은 독일 여자들에 비하면 나긋나긋하고 귀여울 수밖에 없었으니.
독일 사람들은 절대 쉽게 마음을 여는 법이 없었다. 사랑에 관해서는 특히 더 그랬다. 부모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내면이 피폐하고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마음을 열고 힘껏 사랑했다가 상처 받으면 너덜너덜 피투성이가 되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그런 사람들.
그런 나약함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약해빠진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겉으로는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벼운 척 살았지만 안으로는 끓어오르는 불안과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회피했다.
연인과 문제가 생기면 대면하기보다 모르는 척 회피했고, 맞서 싸우기보다는 조용히 돌아섰다.
세상에 널린 게 남자고 여자니 나는 아쉬울 것 없고, 믿고 살다가 뒤통수 맞는 등신이 되느니 상황 보다가 언제든 돌아서서 갈 길 가겠다는 그들의 관조적인 태도는 쿨하다기보다는 안쓰러웠다.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나 다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랑하고 싶었던 나는, 늘 주변 독일인들의 사랑과 인생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을 관찰했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실망과 회의만 남아 쌓여갔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게 독일인들의 사랑이라면, 나는 평생 독일 사회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기는 그른 것 같다….
그는 여러모로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예외’는 일단 조심해야 한다. 그 사회가 유도하는, 내지는 선호하는 전형적인 인간상에서 벗어난 캐릭터들은 뭔가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차갑고 건조한 독일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 독일 사람은, 겪어보면 모 아니면 도일 확률이 높았다. 아주 괜찮거나, 아주 이상하거나.
하지만 벗어났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나 역시 전형적인 독일 사람들의 궤도에서 한참 벗어난,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외국인이니까.
내가 중심이 잘 서 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나와 맞는 사람을 잘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나는 그렇게 독일 사람들에 맞춰 나를 깎아 나가기보다는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아내는데 집중했고,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았더니 내 주변에는 어떤 식으로든 나와 비슷한 면을 가진, 독일 사람 치고는 좀 특이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처럼 기질이 뜨겁고, 감정에 솔직하고, 진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내 독일인 친구들과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며 행복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다.
그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며, 심지가 굳었다. 무엇보다 남자다운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답이 몇 초만 늦었더라도 ‘머리를 좀 굴렸구나’ 했을 텐데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내뱉은 대답인 걸로 보아 그는 보기보다 녹록하지 않은, 반골기질이 다분한 사내인 게 틀림없었다.
늘 단정하고 매너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 반항적인 면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도 나름 세상을 겪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지라 어지간해서는 남자한테 휘둘리지 않고 내 페이스를 잘 조절하는 편인데 그의 상남자같이 저돌적인 모습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하긴, 나도 여간 만만한 여자는 아닐진대 그 정도 강단은 있어야 나한테 명함이라도 내밀지.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나고, 쉽게 사랑에 빠지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때가 되면 인연을 끝낸다. 주변을 보면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 천지고, 나를 낳아준 부모부터도 사랑해서 결혼을 했을 테니 그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정말 그럴까?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람이 나와 성격도 잘 맞아서 내가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만한 그런 사람일 확률이 과연 그렇게 간단할까?
일단 이 세상 어딘 가에 나랑 꼭 맞는 짝이, 나와 맺어질 가능성이 있는 비슷한 시간대에 태어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쳐 인연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그 사람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 사람 역시 나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성사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그런 일이 살면서 과연 한 사람에게 몇 번이나 일어날 수 있을까?
이것은 불가능한 기적과도 같다. 내가 노력을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런 사람이 과연 나타날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살면서 한 번이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하늘이 주신 기회로 알고 그 사람을 반드시 꼭 붙잡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반쪽이 나의 곁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나 역시 그에게 최선을 다해 좋은 여자가 되어줄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그런 남자일 확률이 매우 높은 한 남자가 있다.
그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정말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문제다. 이혼의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랑이 마냥 설레기보다 두렵고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아이도 있다.
하지만 나는 또한, 바보가 아니다. 이렇게 멋진 남자를 만나는 일도, 그런 남자와 마음이 통하는 일도, 그리고 서로 호감을 갖고 인연을 맺고자 하는 일도 한 번뿐인 인생에서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답은 나와 있었다.
이틀간 심사숙고 끝에 그에게 연락했고, 늦은 저녁 그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너에게 있어서 언제나 아이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 잘 알고 있어. 너는 엄마니까 당연한 거고, 그거에 대해서 어떤 불만도 갖지 않을 거야.”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사귀게 된다면, 나 역시 여자 친구로서 너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 너한테 받고 싶은 게 많아서 너를 만나려는 게 아니니까.”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나 챙기느라 에너지 쏟을 필요도 없어. 스무 살 때부터 혼자 살았고, 청소, 빨래, 밥 하는 거 못하는 집안일 없으니까 나는 내가 알아서 챙길 수 있어. 사귄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부담 갖지 마.”
“노력은 하겠지만, 그래도 아마 네가 만났던 다른 여자 친구들과는 많이 다를 거야. 나는 저녁이나 주말에 아무 때나 자유롭게 나가서 너랑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아이 키우면서 공부도 하고 살림도 해야 해서 바쁘고 피곤한 날이 더 많으니까. 너랑 얼마나 많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도 밖에 나가서 파티하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는 나이는 지났어. 나 역시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충분히 바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쯤은 어렵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대신 너는 요리도 잘하고, 이해심이 많잖아. 나를 언제나 편안하게 해 주고.”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힘들게 이혼했잖아.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냐. 가끔 생각을 깊게 하다 보면 여전히 아파올 때가 있어. 그럴 때는 나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그래.”
“그건 나도 그래. 나도 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에 잘 알아. 그럴 땐 얘기해. 그럼 귀찮게 굴지 않을게.”
“가끔 울어야 할 때도 있어. 내가 울보라거나 우울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이 웃는 만큼 많이 우는 것도 사실이야. 실컷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면서 다시 살아갈 힘이 나거든.”
“네가 울고 싶다면 언제든지 울어도 괜찮아. 나 때문에 우는 것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상관없어. 네가 울면, 내가 옆에서 같이 울어줄게.”
그는 그렇게 내 손을 잡고 나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언제나 아이를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엄마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과 내가 울 때 곁에서 같이 울어주겠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는 나와 아이 곁에서 여전히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고 있으며 그와 나 그리고 아이, 우리 셋은 매일 조금씩 서로에게 더 익숙해지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일상 속에서 새록새록, 그와 함께 하는 삶의 곳곳에서 그때 나의 결정이 옳았음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