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뿌리와 날개

국제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방적인 이혼을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주제 별로 나눠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외국인 남편이 얼마나 달콤하고, 국제결혼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것인지는 예나 지금이나 정보가 차고 넘친다. 나 역시 한 때는 그런 정보들을 접하며 그것이 대부분의 진실이라 믿었고, 나도 그렇게 행복할 수 있을 거라 꿈꿨다.








갑작스럽게 아이와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던 2015년 당시, 나는 제일 먼저 인터넷에 이혼, 별거, 비자, 국제이혼 양육권, 독일의 이혼법, 이혼소송, 독일인과 이혼, 독일에서 변호사 등의 키워드로 검색했지만, 나오는 것은 행복한 연애담, 신혼여행이나 휴가정보, 결혼과 출산의 기쁨과 같은 것들 뿐이었다.


어디 선가 누군가 태어나면 다른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죽는 게 인생일진대, 넘쳐나는 국제 연애담과 국제결혼 속에서 이별과 이혼 이야기는 없다라…. 이상했다.


인터넷에 쏟아지는 외국인 남편과의 여행 후기, 맛집 탐방, 요리 레시피, 신혼생활, 인테리어, 하나같이 인형처럼 예쁜 혼혈 아기들 사진, 심지어 외국인 남편과의 다툼이나 외국 생활의 불만이라고 올려놓은 것들조차 마치 아름다운 여자가 얼굴에 뾰루지가 나서 “나 오늘은 좀 못생겼네.” 하는 것처럼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독일어도, 돈도, 직업도,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시댁 식구들 조차 없는 이곳에서 당장 아기와 갈 곳이 없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존의 두려움을 느꼈다.


새까만 바다 한가운데에서 남편이 나와 아기를 차가운 바닷속으로 밀어버려 아기와 얼굴만 내놓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감정은 몸이 기억한다.


다정하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돌변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슬픔은커녕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런 나의 감정 따위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일말의 가치도 없었다. 나와 돌쟁이 아기는 당장 지금 갈 곳이 없었고, 도움을 청할 누군가도 없었다.


앞으로 내 비자는 어떻게 되고, 아기는 무슨 돈으로 키우고, 이혼 소송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분명 법적인 부부 사이인데 이렇게 나를 쫓아내는 게 당최 가당키나 한 것인지 모든 것이 꿈만 같은 그 상황에서 “국제 부부“를 키워드로 쏟아지는 그 따위 행복한 정보들은 나와 아기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들이 행복한 국제결혼을 영위하는 게 아닌 다음에야 정보가 편향된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내가 외국인과의 결혼이 아니라 외국인과의 별거와 이혼에 포커스를 맞추고 글을 쓰는 이유이다. 국제결혼의 장점은 나 아니어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알리고 있으므로, 나는 빛 대신 그림자를 택하기로 했다.


비록 행복한 국제연애 및 국제결혼으로 편안한 생활 중인 누군가에게는 이런 나의 글이 외면하고 싶은 그림자일지라도, 다른 시간대에서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어린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끔찍한 악몽, 처절한 고통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한줄기 빛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설픈 조언 따위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쓰는 글들이 누군가 실제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헤쳐 나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인터넷에 떠도는 편향된 정보를 바로잡고, 아직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미처 가늠할 수 없는 위험성을 알리는 일에 충실하고 싶다.


향기 그윽한 뜨거운 커피를 홀랑 마시다 입천장을 다 데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리 마셔본 누군가가 “김이 나지 않아도 뜨거우니 천천히 마시라”는 말을 해줬더라면 나는 참 고마웠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과장하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이뤄온 것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어쭙잖게 겸손을 떨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나는 실제로 엄청난 일을 경험했고, 나름 잘 극복해왔으며, 당시에는 “누구라도 나처럼 했을 것이다 “라고 당연하게 여겨 왔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배운 그 소중한 것들을 내 속에 가두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로 했다. 내가 경험한 이 불행이 나 하나로 끝난다면 개인의 불행에 불과하지만, 나눈다면 다수에게 지혜가 되지 않겠나.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전 세계에 흩어져 숨어있는 한부모 가정의 한국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언젠가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국제 이혼”은 특수할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이혼”이라는 핵심은 보편성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한국인인 이상 결국 우리의 경험들은 언젠가 다시 한국에 사는 한부모 가정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 바란다.









한부모 가정이 되고, 독일 사회에서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가정들을 만나면서 가족과 가정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혼도 개별적으로는 특수한 경험일 수 있지만, 결국 다양한 삶의 형태와 변해가는 삶의 과정 안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점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이 너무 과대 해석되어 삶의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지 않기 바란다.


내가 그림자 역할을 자처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부디 나를 국제결혼의 폐해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나, 익지도 않은 밥에 재를 뿌리려는 사람마냥 눈엣가시처럼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내가 “독일“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독일에 사는 “우월감”의 표시가 아니라, 서구권이나 유럽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각 나라마다 차이가 상당하고, 또한 나의 경험이 독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영역을 “제한”하고자 사용하는 것이므로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내 멋대로 작가가 되기로 결정하고, 나의 현재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나는 “독일“에 “사는” “싱글맘”이다. 그리고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은 독일, 삶, 싱글맘에 포커스가 맞춰질 것이다.


내가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던 별거와 이혼은 물론이고, 현재 살아가는 삶, 자라나는 아이, 그리고 새로운 사랑까지 흘러가는 내 삶의 모습과 나라는 사람이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담히 적고 싶다.


그리고 나의 글쓰기가,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나의 글을 읽으러 와주는 그대들에게 위로, 힘, 정보공유, 공감대 형성 그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리라.





<이미지 출처>

https://lemondays.de/allgemein/ein-eigenes-buch-schreib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