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전 글들을 정리하며

by 뿌리와 날개

그동안 미뤄왔던 “예전 글 정리“를 이틀에 걸쳐 드디어 끝냈다. 블로그에서 지난 6년 간 써왔던 글들을 브런치로 옮겨오는 단순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고 보니 그 자체로 새로운 글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몇 자 적어본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블로그에 올렸던 과거의 글들을 브런치로 옮기는 작업의 필요성을 느꼈다. 브런치에 내놓을 만큼 다듬어진 글들이 아니라 망설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글 속에 맥락이 있듯 글과 글 사이에도 맥락이 있기에 내가 싱글맘이라는 주제로 글을 이어 쓰기로 한 이상 빠뜨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로 치자면 프리퀄과 같은 셈이다.








불과 3-6년 전에 쓴 글들 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옮기며 다시 읽노라니 꼭 내가 아닌 제삼자의 글을 읽는 것 같았다. 특히 6년 전 초창기 글들은 정말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 자체였다.


간간히 걸어 놓은 “전남편 개새끼“ 같은 연관 검색어를 보니 발칙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괜찮은 척, 강한 척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나 욕심과 의욕이 넘치는 모습은 적잖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무엇보다 독일 사회를 대하는 초창기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불과 몇 주 전에도 ‘역시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구나 ‘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그 당시 글 속의 내 사고방식이나 대응방식을 보니 몇 년 사이 나도 시나브로 독일 사회에 꽤나 많이 적응했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천둥벌거숭이 같은 내 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는 건 왜일까? 아마도 살아서 팔딱거리는 생동감 있는 이야기와,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속에 담긴 내 진솔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6년간 내 블로그를 방문해준 나의 독자들도 이런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반항 + 구조요청"의 의미가 강했다.


지금이야 유튜브에서도 간간히 싱글맘과 국제이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2015년 그 당시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온 인터넷을 다 뒤졌지만 도움 될 만한 정보는커녕 나 빼고 다 행복한 수많은 국제커플들을 보며 배알이 꼴렸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이혼을 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발자취를 남겼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텐데 어쩜 한 명도 없을까 싶어 원망스럽기도 했다.


어차피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거라면,
까짓 거
내가 가는 모든 개고생의 길들을
오픈하겠어!



나도 못할 일을 누군가에게 바라며 원망하고 있는 건 너무 어리석고 뻔뻔하지 않은가. 시작은 그렇게 원망 섞인 반항심이었다.


또 워낙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그 어떤 도움이라도 받아야만 했다. 내가 찾아가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그들이 스스로 찾아오도록 해야 했다.


세 치 혀 끝이, 아니 두 손 끝이 사람을 죽고 살리는 요즘 세상에 처절한 개인사를 공개하며 왜 악플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정말 큰 고민을 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아무리 야박한 세상이라도 돌쟁이 아기와 살아보겠다고 도와달라는 나를 모두가 다 외면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백 마디 모진 말 중에 한 마디라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는다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세상은 보기보다 아름다웠으며,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했고, 진지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하나, 둘씩 물어다 주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또 너무 많아 일일이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진심 어린 댓글을 남겨주었고, 그 한 줄 한 줄이 내 손을 잡아주고, 내 눈물을 닦아주고, 또 지친 나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와 아이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 6년간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전해진 그 사람들의 에너지는 놀랍게도 현실 속 방전된 나를 계속해서 충전해주었다.








어느 정도 지난 뒤에는 "배설"의 창구였다.

내 안에 쌓인 강한 미움, 분노, 좌절, 고통, 슬픔…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매일매일 뱃속에서 울부짖는데 도무지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글을 써서라도 풀어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썼다.

살기 위해서.


그렇게 울부짖으며 살다 보니 조금씩 살만 해지는 날이 잦아지고, 어느덧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내 글이 끊기기 시작한 2019년부터 사람들은 나를 걱정했지만, 실제로 나는 그때부터 더 이상 글로 더럽고 아픈 감정을 배설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삶을 갖게 되었다.


글쓰기가 좋았고 도움도 많이 되었지만, 굉장히 피곤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수다를 떨 때에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침묵이, 정적이, 고요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글쓰기를 멈추고, 대신 내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내 블로그와 내 글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짚어보기 시작했다.


내 글에 울고 웃는다는 사람들,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는 사람들, 이렇게 용기 내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사하면서도 묘한 기분이다.


비록 내가 의도한 바도 아니고, 이렇게 되고 싶었던 적도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 자리에 나를 드러내고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용기와 힘을 얻는다고 하니 뭔가 숙명적인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전문 상담가도 아니고, 큰 도움은 되지 못하더라도 그 캄캄한 어둠 속에 잠시나마 함께 서 있어 줄 수는 있으니까.


산다는 것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결국은 묵묵히 각자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만 하는 것. 그리고 다행인 것은 이렇게 때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일정구간 동행이 가능하다는 것.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잠시나마 내 곁에서 힘을 얻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정리하다 보니 글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스스로 차곡차곡 쌓인 글이 150편이 넘었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해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나 보다.


내 거친 글들을 읽고 처음 가치를 알아주셨던 블로그 초기 방문자님들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나에게 6년에 걸쳐 꾸준히 글을 써보라고 권해주시고, 정신없이 사는 나를 대신해 다양한 글쓰기 경로를 모색해주셨던 수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덕분에 먹고 살 일이 구만리인 주제에 글쓰기는 사치 중의 사치라고 여겼던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나의 새로운 브런치 독자들이 매거진으로 옮겨진 과거의 글들을 통해,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갈 글들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브런치 글쓰기가 내 삶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머릿속에 글감이 꽉 차서 써 내려갈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한다는 것, 그리고 글 쓰는 작업이 즐겁다는 것이다.


그래, 즐겁다!





<이미지 출처>

https://lemondays.de/allgemein/ein-eigenes-buch-schrei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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