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처음으로 연재라는 것을 해보았다.
시작은 단순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생각했던 것보다 호응이 뜨뜻미지근해 약간 실망하던 차에 마침 날씨도 좋고, 시간도 있어 발코니에 앉아 30분 만에 몇 글자 끄적여보았다.
그런데 1시간 만에 조회수가 100을 넘어갔다. 그렇게 단시간 내에 빠르게 올라간 조회수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깊은 사유를 거친 글도 아니었다. 그냥 마트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고, 그게 누구였는지 궁금하다는 짧은 에피소드였는데 왜 사람들이 그렇게 읽어대는지 사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뭔가 재미있게 풀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 숫자를 붙여 본의 아니게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2주 동안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엉뚱하게도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엮은 이야기로 네 번째 브런치 북 <룰 브레이커 in 독일>을 발간하게 되었고, 내친김에 응모전에도 출품하게 되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사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rechdachs40
6년 간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나의 글쓰기 목적은 변천사를 겪는다.
처음 목적은 내가 가진 정보의 전달이었다. 내가 몸소 겪은 일들을 가감 없이 전달함으로써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또한 취재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블로그는 나의 감정을 분출하는 사적인 창구로 쓰이기도 했다. 독일에서 홀로 살아가는 한국인 싱글맘의 애환을 글에 녹여내며 나는 스스로 많은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으며 내 글에서 정보가 아닌 나만의 성찰과 사유에 깊은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의 글쓰기는 철저하게 “나”가 중심이 되어 “나의 욕구”에 집중된 작업이었다.
우연으로 시작된 나의 바로 이전 글쓰기는 여러 면에서 정말 새로운 경험이자 공부였다.
첫 번째로 “연재”라는 개념을 배운 것이다.
내 과거의 글들은 대부분 시간의 순서에 따른 기록에 가까웠다. 그리고 사건의 점철에 국한된 것이라 연재라고 할 것이 없었다. 가끔 글이 길어지면 필요에 의해 글을 두, 세편으로 나눠 올렸을 뿐 연재를 해 본 적은 없다.
또한 내 인생에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를 중심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사건이 없으면 반년 넘도록 글을 쓰지 않을 때도 있었고, 내가 피곤하거나 시간이 없으면 글 쓰는 일을 접어두기도 했다.
글을 쓸 일이 없다는 것은 곧, 내 삶이 평안하다는 뜻이었으므로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쓸 필요가 없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연재는 일종의 독자와의 약속이었다. 어느새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암묵의 책임감도 있었다.
마지막 화를 올리고 난 뒤 밀려온 탈고의 쾌감도 잊을 수 없다. 영속적인 작업이라 느꼈던 글쓰기에도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최초의 경험이었다.
두 번째는 연재를 통한 글쓰기의 즐거움이었다.
연재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글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궁금해 견딜 수 없다며 귀엽게 나를 채근하는 독자들이 생겨났다.
단편적인 글을 올리고 시간에 관계없이 느긋한 댓글만 읽다가 실시간으로 달리는 빠른 피드백과 열광적인 반응이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쓴 글이 반응이 좋으니 글 쓰는데 신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이미 시작부터 끝까지 머릿속에 있는 줄거리를 타이핑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압박감이나 창작의 고통 따위는 없었고, 오로지 그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복선을 알아차리거나 결말을 이미 예측하기도 했다. 마치 그들과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짜릿했다.
세 번째는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독일 사는 한국인 싱글맘”으로서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주로 독일 이민자, 독일 유학생, 한독 커플, 싱글맘들이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려서일까. 이번 글들을 연재하면서 나의 독자층이 상당히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싱글맘의 고군분투뿐이었다면 눌러보지 않았을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 시작했다.
네 번째는 그로 인해 지난 글이 재조명되는 것이었다.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니 과거에 썼던 나의 글들이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나의 현재 글에 관심을 갖고 들어왔다가 나의 과거 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먹고 글을 쓰기로 한 이상 내 글이 사랑받을 수 있는 통로가 넓어졌다는 사실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에 쓴 글에 끊임없이 좋아요가 달리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했다.
다섯 번째는 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두각을 나타낸 글쓰기 부문은 산문 내지는 수필이었다. 논술을 써도 문학적이라 수정이 필요했고, 시를 써도 산문시가 되었으며, 기사를 써도 문학적인 수사와 비유가 자주 등장했다.
대학교 학보사에서 일도 하고, 성인이 되어 현실 감각이 늘어나며 어느 정도 글을 이성적으로 다듬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결실이 큰 부문은 에세이였다.
남보다 적게 공 들이고도 수확이 큰 것을 우리는 “재능”이라 부르기로 했으니까, 나는 내가 수필에만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연재를 통해 독자들의 피드백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수필 말고 다른 글도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소설가 내지는 웹소설 작가로서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이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도 느꼈다.
그래, 글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주어진 창작의 도구니까. 안될 게 뭐가 있을까! 어차피 돈 버는 글쟁이도 아닌데, 이 참에 두려워하지 말고 이것저것 써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섯 번째는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이 갖는 힘이다.
지금껏 나는 내가 원하는 글을 써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름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생각만큼 관심받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아픈 자식 보는 것 마냥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원하던 글은 아니었지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2주간 연재까지 하게 되고, 또 마지막에 브런치 북으로까지 발간되는 것을 보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은, 내 머릿속에서 처음 시작되기는 하지만 세상에 내보이는 순간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알아서 살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자생력은 작가인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글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흥미롭다. 내가 쓴 글의 주인이 결국은 내가 아니라 독자들이라는 것이.
그리고 이 경험은 결국 마지막 깨달음까지 이어진다. 바로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독자들이 읽기를 원하는 글”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몰랐을 때에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살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독자들이 원하는 글 사이의 괴리를 깨달은 이상 그냥 살아갈 수는 없다. 이 괴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많은 분들의 진심과 정성 어린 댓글들을 통해 그 괴리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형체는 어림짐작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정확하게 실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고민한다.
다만, 이것이 나 혼자만의 딜레마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창작의 영역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음직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인기를 좇아 시류에 부응하는 창작을 할 것이냐,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이냐.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책은 사장되는 것이고,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혼자 쓰고 만족하는 글이라면 일기장에 쓰고 혼자 읽는 것으로 족한다. 우리가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는 일기, 그 이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개성과 욕구를 무시한 채 독자의 호응에 따라 쓰이는 글도 생명력이 길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그들이 “나의 글”을 찾아 읽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나라는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므로.
결국은 이 영원한 딜레마 속에서 영리하게 중심을 잘 잡고 가는 것이 작가의 내공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마치 싱글맘인 내가 학업과 육아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삶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이것은 또 남자 친구와 현재를 행복하게 보내면서도 언젠가 가정을 꾸리기 원하는 남자 친구의 바람과, 돌싱의 입장에서 그것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은 나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조율해나가는 것과도 닮아있다.
삶의 모습은 발현되는 형태만 다를 뿐 그 본질은 결국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난 2주간의 연재 글쓰기는 작가로서의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준 훌륭한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다른 작가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오늘도 글을 쓰는 것일까?
<이미지 출처>
https://lemondays.de/allgemein/ein-eigenes-buch-schreib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