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목 짓는 게 글 쓰는 일보다 어렵다

by 뿌리와 날개

블로그에서 브런치로 옮겨오며 몇 가지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하나가 제목을 짓는 일이었다.


블로그에서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정보를 전달하면 그뿐이라 제목도 그냥 막 갖다 붙였다. 제목은 글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보여주는 것, 그뿐이었다.


블로그에서는 한 번도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던 제목 붙이기가 왜 브런치에서는 부담이 되었을까?








첫 브런치 북을 출간하면서 약간의 고민 끝에 어렵지 않게 제목은 <독일 남자와 이혼하기>로 정해졌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rechdachs10



브런치 사용 방법에 익숙해질수록 나의 직설적이며 직관적인 제목 짓기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브런치 북을 만드는 전 단계인 매거진의 제목을 짓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머릿속에 가득한 글감을 마구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주제로 미리 분류해 차곡차곡 모을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아이디어이지만, 나의 성격이나 글 쓰는 스타일에는 맞지 않았다. 모두에게 훌륭한 것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나는 불편하다.


독일에서 느꼈던 불편함이나 차이점, 이질감 같은 문화 차이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어 매거진의 제목을 “나의 작은 독일”이라 붙였지만 영 쓰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다.


<독일 남자와 이혼하기> 같은 직설적이고, 일차원적인 것 말고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되고 싶은데 나의 시각을 통해 재해석된 독일 사회를 담아내고 싶어 붙인 “나의”, “작은”, “독일”이라는 말은 영 느낌이 안 왔다.


결국 나는 그 매거진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글들을 분류하기가 어려워 결국 “싱글맘 일기”에 옮겨버렸다.








제목만큼 작가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게 또 있을까? 이번 브런치 북 응모전의 출품작 제목을 훑어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로맨틱하고 감성적인 많은 제목들을 보면서 내 제목은 정말 단순하고 직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땀 한 땀 아름답게 수놓은 듯한 섬세한 제목들 사이에서 목에 걸린 가래침을 카악- 하고 시원하게 뱉어놓은 것 같은 내 제목은 흠….


나였다.

완전히 나를 발가벗겨 놓은 것 같았다.


아….

이게 나인가 보다.








<독일 남자와 이혼하기 시리즈> 이후 첫 작품인 <룰 브레이커 in 독일>의 제목을 지을 때 정말 골 때렸다.


글은 이미 다 나왔는데 제목을 정하지 못해 책을 못 내고 있다니…. 책을 만든다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인가? 다양한 제목들을 두고 여러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었다.


남자 친구의 엄마는 ‘싱글맘’이라는 단어를 빼는 게 좋겠다고 했다. 독일어로 들었을 때 어감이 너무 강해서, 뭔가 영역을 제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느낌이 든단다.


나는 첫 책이 <독일 남자와 이혼하기> 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로맨틱하고 덜 직설적이며 부드럽길 원했다. 하지만 싱글맘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빼고 싶지도 않았다. 싱글맘의 사랑 이야기에 싱글맘이 빠지면 이 얼마나 맹숭맹숭한 맛인가.


내 사랑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내가 5년 간 많은 고생을 하고 비로소 찾은 ‘싱글맘의 사랑’이기 때문이지 않나.








xxx 뒤에 오는 것들, xx 하고 나면 보이는 것들, xx 하면 xx 하다 너도 그렇다, 어서 와 xx는 처음이지 같이 기존의 제목들을 조금만 비튼 식상한 제목들.

도화지에 아름답게 그린 그림마냥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들.

평이하고 심심한 제목들.


수많은 제목들을 읽으며 내가 원하는 제목에 대해 생각했다.


뻔하지 않으면서도 신선한 것.

너무 직설적인 것도 싫지만 그렇다고 너무 뜬구름 잡는 것도 아닌 것.

내용을 짧게 함축하고 있지만, 아주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

독자의 욕구도 반영해야 하니, 독자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재미있고 기발하며 통통 튀는 것.


오예….


그나마 책을 덮었을 때 반전과 더불어, 독자들이 ‘아- 이래서 책 제목이 이거였구나’ 싶은 것은 “Regelverstoßer”였다.


독일어로는 느낌이 마구마구 오는 이 단어를, 그런데 어떤 독자가 이 단어의 뜻을 한 번에 알아보고 클릭을 할 수 있을까? 누가 난데없이 스페인어로 제목을 썼다면 나는 참 당황스러울 것 같다.


한국어로 바꾸자니 “규칙을 부수는 자”. 무슨 토르의 망치도 아니고 참 뜬금없다.








결국 이번에는 그놈의 ‘싱글맘’ 소리 좀 빼 버리고 색다르게 가보자고 독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룰 브레이커로 정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적어도 싱글맘, 독일, 사랑 중에 하나는 기어코 제목에 넣어야 내가 만족스럽겠기에 독일을 넣기로 했다.


그리고 싱글맘은 과감하게 빼버리고, 사랑은 책 표지로 대신했다. 그게 없으면 <룰 브레이커>는 무슨 경제 실용도서 내지는 자기 계발서 같으니까.


굳이 제목으로 갖다 박지 않아도 표지를 이용해 직관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흐뭇했다. 그래서 "책 표지"라는 것이 있었나 보다.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그래서 탄생한 내 네 번째 책의 제목이 <룰 브레이커 in 독일>이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rechdachs40








독자들은 알까? 룰 브레이커의 의미가 중의적이라는 것을. 표면적으로 룰 브레이커는 그다. 내가 정해놓은 그간 내 삶의 룰을 최초로 부순 것은 그니까.


하지만 내가 붙인 제목에는 한국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듯 보이는 룰,

엄마 = 성적인 욕구를 거세한/ 거세당한 성스러운 여자를 깨버리고 싶은 나의 욕망이 투영되어있다.


결국 그와 나는 저마다 룰 브레이커이며,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책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주제라고 생각한다.





생각났다. 왜 브런치에서의 제목 짓기가 블로그에서보다 어려웠는지.


제목이면 제목이지, 소제목이 따라오니까 한번 더 생각하게 되면서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제목과 소제목이라니.


훗.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제목을 지을까?





<이미지 출처>

https://lemondays.de/allgemein/ein-eigenes-buch-schrei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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