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공과 실패의 경험

책임과 자기 확신

by 뿌리와 날개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몰라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까지 나의 삶을 직접 책임진다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임을 지고 자유를 누리는 대신, 면책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반납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렇게 남일 대하듯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날을 살아오며 매 선택의 원인이 되었을 그 사고의 과정을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 남자를 고른 것도 나였고 그런 결혼을 한 것도 나였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는 뜻이다. 이제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뿐. 그 당시에는 그를 사랑하니까, 그와 함께 하면 행복하니까, 남들도 때 되면 다 하는 결혼이니까 나도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아직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생겨난 욕망이 내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 뒤엉켜 곪아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자석에 이끌리듯 그런 선택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선택에 따른 성공과 실패의 경험


어떤 선택과 결정이든 결국 성패로 이어졌다. 초반에는 열 가지 선택을 하면 그중 일곱 가지는 틀린 선택이었다. 틀린 일곱 가지 선택의 여파는 언어 장벽이 있는 싱글맘에게 참으로 가혹했다. 잘못 신청한 서류를 취소하러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땡볕에 밀고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실수 하나를 바로 잡으려고 하루를 꼬박 쓰는 것은 예사였다. 잘못된 선택이나, 서류를 제대로 읽지 못해 쓸데없는 돈을 물어내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에도 모자란 와중에 내가 친 사고까지 스스로 수습해야 하니 진이 빠졌다.


우편함으로 편지가 날아올 때면 뜯어보기도 전에 심장부터 쿵쾅거렸다. 또 어떤 책임을 지라고 닦달일까. 그 많은 우편물 중에 나에게 공돈을 준다는 편지는 한 장도 없었다. 당장 돈을 내라거나, 머지않아 돈을 내야 한다거나, 돈을 안 주겠다거나, 받은 돈을 토해내라는 말들 뿐이었다. 돈으로 해결되는 것은 그나마 나았다. 주기적으로 법적인 문제가 터지거나 돈으로도 해결이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쏟아질 때면 혀라도 콱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저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나 홀로 인생을 책임지고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리바리한 와중에도 언제나 두세 가지 정도는 내 판단이 맞았다. 나는 완전한 머저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한 옳은 결정들로 문제가 잘 해결되고, 순조롭게 진행이 되거나 돌파구를 찾을 때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끊임없는 뒷감당들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한두 가지 정도만 순조롭게 해결되어도 나는 원 없이 기뻐했다. 그 호사를 마음껏 누렸다. 그대로 두면 된다, 아무 문제없다! 그거면 되었다.








실생활 속 레벨업


처음에는 물건을 사면 필요 없거나, 질이 떨어지거나, 어울리지 않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집에 와 못 쓰는 것이 태반이었다. 옷을 여러 벌 입어보고 그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옷 한두 가지만 사기 시작했다. 1-2년 정도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기는 했지만 지금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무난하게 잘 고른다. 한 입 먹고 버릴지언정 다양한 먹거리도 꾸준히 시도해봤다. 언젠가부터 맛있는 것도 걸리기 시작했다. 마트 매대에 깔린 수십 가지 선택지가 더 이상 곤욕스럽지 않았다.


이러한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었다. 남편과 있을 때는 내가 실수를 하면 남편이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늘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고, 번거롭기는 해도 스스로 책임을 지면 그만이니 잦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일이 늘어갔다. 내가 한 선택이 맞으면 그냥 두면 되고, 틀렸으면 보완하거나 수정하면 되었다.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고른 치약이 써보니 좋고, 생전 처음 입어보는 스타일의 옷인데 사람들이 예쁘다며 어디서 샀냐고 묻는 등 일상에서의 사소한 성공의 경험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나는 조금씩 더 큰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보험사를 통한 여행을 계획하고, 그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그보다 더 복잡한 기차여행을 시도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어려운 도전일수록 성공한 뒤 오는 기쁨도 컸다. 아직 삶이 완전히 안정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사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마치 스테이지를 깨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을 하듯이, 하나씩 해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갈수록 옳은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이렇게 모인 자신감은 점차 자기 확신으로 이어졌고, 내면의 자존감 역시 함께 상승했다. 나는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을 뿐, 사실 혼자서도 잘하는 게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썩 괜찮게 살아내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oodtherapy.org/blog/its-for-you-not-them-forgive-to-help-yourself-heal-071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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