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삶의 우선순위와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삶의 가치, 그리고 나라는 사람

by 뿌리와 날개

선택을 하려면 우선순위가 먼저


제한된 시간 안에 제한된 돈과 에너지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일처리를 하려면 전제조건이 따른다. 바로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이다. 물론 나는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살면서 잘못된 선택과 그에 따른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어내며 이것을 거꾸로 배웠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어떤 것을 먼저 해결하고 어떤 것을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지 배우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치며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우선순위란,


평상시 : 시간 > 에너지 > 아이 > 나 > 돈

응급상황 : 나 = 아이 > 에너지 > 시간 > 돈


이었다. 돈도 물론 중요했지만 결정적일 때에 나에게는 언제나 돈보다 사람이, 아기와 나의 건강과 존엄이 우선이었다. 싱글맘으로서 아이와 살아가기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지만,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선에 이를 때면 가차 없이 나와 아이를 최우선으로 바꿨다. 그 어떤 중요한 일도 가족과 사랑이라는 가치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있어야 아이도 있고, 우리가 있어야 이 세상도 존재했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가치에 맞춰 삶의 균형을 유연하게 맞춰나갔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다


이혼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뒤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나와 마주쳤다. 남편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혼자였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을 접할 기회 역시 늘어났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춤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파티에 갔다가 초등학교 이후로 추지 않던 춤을 추기 시작했다던가, 우연히 선물 받은 퍼즐을 맞추다가 30년 만에 내가 퍼즐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던가 하는 일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깨달은 또 다른 삶의 진실은,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기타 치는 사람을 동경하기만 했다. 어느 날 악기점 앞을 지나다가 무작정 들어가 기타를 구경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24,99유로짜리 작은 우쿨렐레를 하나 샀다. 그날부터 유튜브를 틀어놓고 우쿨렐레를 치기 시작했다. Oh, Tannenbaum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그 짧은 노래를 마스터하는데 8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한 곡을 마스터했더니 그다음 노래들은 1-2주면 마스터할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 한동안은 어딜 가든 우쿨렐레를 들고 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제 능숙해진 우쿨렐레를 넘어 기타도 조금씩 독학하고 있다. 이 나이에 내가 기타를 치게 될 줄이야!








My Favorite Things


무언가를 막연하게 긍정적으로 느끼는 것과 콕 집어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규정하는 순간 두리뭉실함은 사라지고 구체적인 삶의 방편으로 자리 잡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놓고, 기억했다가 심심하거나 우울할 때 평소 나를 기쁘게 만들었던 것들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 밤늦게까지 깨어있을 때면 창문을 열고 오래도록 별을 바라봤다.

-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 스트레스를 받으면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었다.

- 외롭고 쓸쓸할 때면 피아노를 치며,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그 촉감(타건감)과 내가 지금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행위 자체를 즐겼다.

- 때때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같이 밥을 해 먹었다.

-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대청소를 하거나 퍼즐을 했다.

- 돈이 없어도 마음이 답답할 때면 어디로든 여행을 떠났다. 오랜 세월 집순이인 줄 알고 살았건만, 사실 내게는 집시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찾을수록 삶은 즐거워져 갔다. 사는 게 지치고 힘들 때면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에너지를 충전했다. 어차피 그 리스트에는 내가 이미 해보고 좋았던 것들만 적혀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 뭘 골라 하든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점차 내 마음과 삶을 다스려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누구인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내가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직결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곧 나를 탐색하고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따라가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정확하게는,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이 과정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나는 나였으면서도 나를 잘 모르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가 자아 탐색기라더니 개뿔, 나는 서른이 넘어 이혼을 계기로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자아를 찾아가기 시작하니 자아를 찾는 일은 나이와 별 상관이 없으며, 인생이란 내가 자아를 찾게 되면 비로소 시작되는 여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아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 그냥 앉아있는 것과 같았다. 시동을 걸어야 배가 출발하는데 조타석에 가만히 앉아서 흔들리는 파도에 출렁거리는 것을 출발했다고 착각하는 상태. 내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결국 물결에 일렁이며 제자리만 빙빙 돌다가 재수 없으면 파도에 휩쓸려 암초에 부딪히고 배는 산산조각 나고 마는 것이다.

자아를 찾는 것은 배에 시동을 거는 것과 같았다. 방향을 정하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항해를 하며 바다 위해서 수많은 배들을 만나고, 궂은 날씨와 높은 파도를 헤쳐나가며 점점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항해기술이 늘어가는 것.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바다 위에서 내가 탄 배의 키를 잡고 항해하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든 고민의 상위 카테고리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결국 대부분은, 바로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인생의 고통과 번뇌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oodtherapy.org/blog/its-for-you-not-them-forgive-to-help-yourself-heal-0710184

keyword
이전 05화#5 성공과 실패의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