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섹스에 큰 불만은 없었다. 2년 간 장거리 연애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늘 금욕 상태였고, 만나면 좋았다. 남편은 20대 중반이었던 연애 초기에도 딱히 성욕이 강하지 않았다. 가끔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는 착했고, 자상했고, 친절했고, 똑똑했고, 멋있었고, 성실했고, 무엇보다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관계의 횟수가 비교적 적다는 이유 때문에 연애나 결혼을 고민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뜻이다. 그는 섹스를 자주 원하지는 않았지만, 함께하는 5년 간 언제나 나를 안고 수시로 쓰다듬어주었으며, 내가 딴 짓을 하고 있을 때에도 내 머리에 뽀뽀를 해줬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나는 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문제는 출산 이후부터였다. 안 그래도 적었던 관계가 출산 이후로 뚝 끊긴 것이다. 처음 두 달은 몸의 회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아기를 낳고 나니 나 역시 내 몸이 내 몸같이 느껴지지 않아 불편하고 어색했다. 출산이라는 큰 변화를 거치며 매끈하던 몸매도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별로 벗은 몸을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하고도 계속해서 모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성욕이 정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남편이 전혀 다가오지를 않으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성적인 욕구가 쌓여 섹스를 원한다기보다는 섹스를 통해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남편에게 잠자리를 원한다는 표현을 간접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할 때 섹스를 할 수 없다는 것
내가 원할 때 남편과 섹스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서로 좋아서 결혼했는데 왜 내가 남편에게 섹스를 구걸해야 하지? 하는 의문도 들기 시작했다. 아기가 9개월이 되어 갈 무렵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아직 서른도 안됐는데 남편이 이런 식으로 잠자리를 계속해서 거부한다면, 나는 남은 인생을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난감했다. 하지만 내가 뭘 어찌할 수 있을까. 남편이 사내구실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성욕이 적을 뿐인데, 그까짓 이유로 이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편이 아니면 섹스를 할 수 없는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사랑하는 남자가 곁에 있는데 섹스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니,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이런 게 결혼인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기를 낳고 헤어질 때까지 약 1년 동안 세 번의 섹스를 했다. 그것도 내가 열 번 정도 에둘러 요구하면 그가 한번 정도 허락하는 식으로. 거절도 한두 번이지, 그런 일이 반복되자 점점 자존심이 상했다. 남편이 바람났다는 의심을 하지 않은 이유 중에는 남편의 강박에 가까운 깔끔한 성격과 적은 성욕도 크게 한몫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정말 황당했다.
남편이 나에게 홀딱 반해 내 이름을 팔뚝에 새겨 넣던 때조차 우리는 섹스 빈도수가 적었다. 그리고 남편은 아기가 4개월 무렵 이직한 직장에서 만난 상사와 바람이 났다. 아기가 6개월 무렵까지는 그 상사와의 트러블 때문에 집에서 상당히 힘들어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보아, 남편과 나의 잠자리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 그의 외도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추측된다. 우리는 그냥 안 맞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다시 섹스를 한다면
배우자와의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배우자가 그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혼인 계약 안에서 정조의 의무는 이행되어야 했다. 알고 보니 결혼은 정말 무서운 제도였던 것이다. 이런 전사가 있었기 때문에 남편과 헤어질 때 나는 작심했다, 앞으로 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섹스를 구걸하는 여자가 되지 않기로. 내가 섹스에 미친 여자도 아닌데 남편에게 잠자리를 요구하고 거절당하는 일, 그래서 결국은 구걸의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거지 같았다.
섹스에 육체적 쾌감을 얻는 행위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이것은 다시 “나”라는 사람으로 이어졌고, 결국 내가 누구인가에 관한 물음으로 귀결되었다. 나에게 섹스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섹스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추상적인 질문에서부터,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과,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의 섹스를 원하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까지 생각할수록 방대하고 오묘했다. 알고 보니 섹스는 나의 정신적 욕구와 육체적 욕구가 절묘하게 결합된 종합 행위 예술이었던 것이다.
나의 섹스 인생 전반을 반추했다. 그동안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섹스를 했던 걸까. 왜 나는 내가 나의 성생활에 만족한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일까. 나에게 좋았던 섹스는 어떤 것이고, 별로였던 섹스는 무엇이었나. 이미 평생 섹스를 못하고 살 뻔했던 결혼생활에서 빠져나온 경험을 한 이상, 나 자신의 욕망과 독대하는데 부끄러울 이유는 없었다.
나의 욕구를 이해하고 욕망 앞에 솔직해지자 섹스 라이프의 질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살면서도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특히 내 남자 친구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나와 욕구의 정도 및 성적 취향도 비슷했으며, 외적으로나 성격적으로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미 정서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잘 맞았기 때문에 그런 견고한 정서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와 나의 섹스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해온 그 어떤 섹스보다도 황홀했다.
또한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했고, 모든 면에서 솔직했다. 서로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 편, 상대로부터 만족을 얻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 우리의 섹스가 좋지 않을 리 만무했다. 그와의 잠자리를 마치고 나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만족감이 올라오며 섹스를 나눈 시간의 몇 십배는 되는 시간 동안 행복이 지속되었다. 나와 이런 멋진 섹스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침대 밖에서도 나에게 사랑과 헌신, 존경을 표한다는 것은 삶의 질 자체를 뒤바꿔놓았다. 그것은 나의 남자 친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양질의 섹스를 언제든 내가 원할 때 하고 싶은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나는 더 이상 섹스를 구걸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기혼 및 이혼녀가 침대 위에서 적극적인 이유
한국사회에서는 기혼녀 내지는 이혼녀의 성욕에 대해 뻔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듯하다. 하긴, 여성의 성욕 자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당최 있기는 한가 싶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섹스 관련 부부의 이미지 역시 당당하게 섹스를 요구하는 아내와 기죽은 남편 쪽으로 기울어 있다. 아내의 성욕과 그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남편을 웃음 코드로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여기 독일에는, 남편이 잠자리의 기대에 부풀어 있으면 아내가 등을 돌리며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오늘도 또 두통이냐며 투덜거리는 남편이 나오는 두통약 광고가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커플들 말이나 유튜브 채널의 데이트 코칭을 들어봐도 독일 남성들은 섹스를 좋아하고 잠자리에서 적극적인 여성을 애인이나 배우자로 선호한다. 안정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대부분 남자가 섹스에 더 간절한 편이다. 독일 남자가 한국 남자보다 성욕이 월등히 강하기 때문일까?
나는 이런 현상을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문화적 맥락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고자 한다. 미혼여성이 본인의 섹스 라이프와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노출할 수 없는 한국문화에서는 여성들이 결혼 전까지 그 욕구를 억압했다가 공식적으로 섹스가 허락되는 결혼생활과 함께 그 타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혼녀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한국에서 젊은 미혼 여성은 되도록이면 섹스에 소극적이고, 미숙하고, 경험이 적은 것이 미덕이다. 많은 한국 남성들이 애인이나 배우자로 이러한 여성상을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애도 낳고, 아줌마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섹스하는 여자라는 세상의 공격적 시선에서 벗어나 법적으로 허락된 남성과의 잠자리에서 주도권도 잡아보고, 더 많은 섹스를 요구할 수도 있게 되며 심지어 남편과의 잠자리에 대한 만족도까지 대놓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입장에서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순진하고, 수줍은 처녀였던 아내가 결혼하고 애 낳고 나더니 뻔뻔하고 적극적으로 돌변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 거대한 갭 차이에서 충격을 받으며 위축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즐거운 섹스
성적인 에너지가 원활하게 돌아가면 남녀 불문하고 큰 틀에서 정서가 안정이 된다. 자존감이 올라가고, 어깨가 펴진다. 스트레스 지수도 내려가고 면역력도 올라간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그런 것이니까. 성적인 욕구를 잘 충족시켜주는 애인 역시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정서적인 유대, 배려, 상대에 대한 애정과 헌신, 존중과 관심이 없이는 행복하고 즐거운 섹스가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하나도 안 맞는데 속궁합 하나로 산다는 말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서로 안 맞는 와중에도 속궁합이 그렇게 좋을 정도면 서로 잘 맞는 사이에서의 섹스는 얼마나 더 황홀할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즐거운 밤은 행복한 낮으로 이어지고, 행복한 낮은 다시 즐거운 밤으로 이어진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도 거기서 나왔음이 분명하다. 원나잇 섹스가 아무리 좋아도 정서적 유대가 깊은 안정적 커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끈끈한 섹스의 퀄리티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래된 와인일수록 맛이 깊어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