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가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자기 성찰

by 뿌리와 날개

자기 비하와 자기 성찰의 차이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상담할 때 발견하게 되는 공통점 중에 하나는, 그들이 결혼 생활의 문제를 과도하게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우선순위를 매겨준다. 일단 무사히 이혼소송을 끝내고, 본인에 대한 성찰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는다고. 그도 그럴 것이, 외국에서 외국어로 이혼소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기에 소송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전력을 다해도 힘겨운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파죽지세처럼 일방적으로 밀리는 형국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은 중립적이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가진 힘을 분산시키는 것도 모자라 은연중에 자기 연민, 내지는 자기 비하로 빠지기 쉽다.


어지간히 어리석고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고서야 왜 모르겠나, 이혼으로 치닫기까지 나 역시 잘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다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을 뿐이다. 일단은 내 신변의 안전과 심신의 안정을 무사히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차차 화도 내고, 욕도 하고, 슬퍼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후회도 하며 단계별로 나 자신이 여러 가지 감정을 자연스럽게 겪도록 두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내면의 힘이 다시 차오르고, 그렇게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능력도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이혼 초반에 나의 부족함을 많이 탓했지만, 이 모든 일을 겪어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결혼 생활에 있어서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한들, 그것이 그 사람이 처자식을 이토록 잔인하게 외면하고 아내였던 나를 무참히 짓밟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마다 언제나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와의 결혼 생활에서 내가 부족했던 것은 부족했던 것이고, 이혼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그가 의리와 도리를 저버린 것은 저버린 것이다.








결혼 생활의 반추


마음에 여유가 어느 정도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나의 결혼 생활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나를 위해 포르셰 인턴쉽도 마다하고 주저 없이 한국행을 택했던 그 남자, 3년 간 직장생활로 모은 돈을 전부 티켓 값으로 하늘에 뿌리면서도 나를 만나러 오면 눈에서 꿀이 떨어지던 그 남자는 어쩌다 나와 우리 사이의 아기에게 치를 떨게 되었을까? 독신 의사도 철회하고 내게 청혼했던 그 남자, 출산 후 세 달 간 내 몸조리를 위해 혼자서 아기를 돌보면서도 행복해 마지않던 그 남자는 왜 법정에서 원치 않던 결혼과 원치 않던 아기였다고 했을까? 그를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랬다, 정답은 나에게 있었으니까.


삶을 굴려나가는 것은 정말 녹록지 않았다. 달마다 수많은 고지서를 챙겨야 했고, 1년에 한 번씩 중요한 서류들을 한 뭉치씩 갱신해야 했으며, 비자와 의료보험 관련 서류도 실수 없도록 세심하게 체크해야 했다. 난방비와 수도세도 꼼꼼하게 체크해야 했다. 여행을 갈 때면 가방마저도 꼼꼼한 남편이 대신 챙겼으나, 이제는 경비 조달부터 여행지 선정, 교통편과 숙소, 여행 계획까지 어설픈 독일어로 모두 나 혼자서 해야만 했다. 아기는 절로 크나. 수시로 소아과에 전화해 예약하고 들락날락해야 했으며, 각종 유치원 행사 및 상담도 모두 내가 챙겨야 했다.


집에 서류를 모아둔 두꺼운 바인더가 주제 별로 쌓이기 시작했다. 독일은 말 그대로 서류의 나라였다. 심지어 막힌 하수구 좀 뚫어달라고 집주인에게 연락해도 서류를 보내줬으니까. 그제야 알았다. 왜 남편의 책장 한 면이 바인더로 가득했고, 수시로 서류더미에 묻혀 골치 아파했는지. 모든 것이 정확한 일정, 예약에 따라 경직되어 돌아가는 독일 사회에서는 다이어리나 달력 없이 일상생활이 유지되기 힘들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내 이름으로 된 우편물이 도착했다. 남편과 살 때는 이케아 광고 카드가 내가 받던 우편물의 전부였다. 유럽에 3년 넘게 살도록 내가 관리하는 바인더도 없고, 최소 3개월 치 일정이 담긴 다이어리도 없고, 내 이름으로 된 공문서도 받아본 적 없이 살았다는 것은 내가 나의 인생을 손톱만큼도 건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스스로 하나씩 헤쳐 나가면서 나는, 그동안 남편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혼자서 처리해왔는지 깨달았다. 나는 결혼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몸만 컸지, 마음과 정신은 어린아이와 같았던 내가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나는 남편이나 아기라는 타인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맡기 이전에 일단 내 인생에 할당된 역할부터 충실히 배워나가야 했던 것이다. 남편이 미운 부분은 미운 부분이었고, 고마운 부분은 고마운 부분이었다. 결혼이 아니라 큰 아이를 입양한 것과 다를 바 없었을 지난날 남편의 노고가 새삼 고마웠다.


그래, 너도 나름 할 만큼 했었겠구나! 그동안 철없는 와이프 키우느라 수고했다!








지난 사랑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결혼 생활에 대한 반추가 끝나자 틈틈이 지나온 연애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연애를 해봤지만, 끝나고 나서 그 연애를 깊게 돌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헤어지면 슬펐고, 상실감에 허덕이기 바빴다. 그러다 금세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고,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첫사랑부터 남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간간히 데이트했던 남자들까지 빠짐없이 돌아봤다. 내가 만나는 남자 스타일이나 연애 스타일에 어떤 패턴이 있을까? 왜 내 모든 사랑은 결국 이별로 끝나게 된 걸까? 우리가 나눴던 그 많은 사랑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뭘까? 한 번도 궁금해본 적 없던 것들이었지만, 한번 궁금증이 시작되자 끝없이 이어졌다.


내가 만나거나 좋아했던 남자들은 외모를 비롯해 수많은 외적인 조건에서 스펙트럼이 다양했지만, 빠지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 부모님의 부부 관계, 나와 부모님의 관계 및 나의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내면의 결핍이 아닐까 생각했다. 결핍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그 결핍을 인정해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결핍이 있으면 반드시 그로 인해 충분히 얻은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긍정적일 필요는 없으나 어찌 되었건 뭔가가 넘친다는 것은 현명하게 잘만 다루면 일종의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나의 결핍을 인정하고, 그 결핍으로 인해 나에게 넘치게 된 것도 찾아냈다. 찾아내기 전까지 까맣게 모르고 살았던 그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 생각보다 훌륭한 자산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고, 사색을 즐기는 아이였다. 20여 년의 성장과정을 거쳐 나의 어린 시절,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 그리고 부모님의 부부 관계에 관한 분석은 이미 끝났다는 뜻이다. 이제 그 분석을 바탕으로 성인이 된 내 인생에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파악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일만 남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독였고, 부모님에게서 정서적으로 독립했으며, 부모님의 부부 관계와도 역시 이별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나는 나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들 역시, 언젠가 그 만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때로는 사랑에 관해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냉소적이거나 조소하기도 했으며, 다시는 어릴 때 같이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고 슬퍼지기도 했다. 때로는 불같은 사랑을 동경하거나 책임 없이 쾌락만 있는 사랑이 차라리 현명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능력만 되면 영원히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나의 지난 관계들을 돌아보고, 또 주변의 친구들과 사랑과 이별, 연애와 결혼에 대한 무수히 많은 대화들을 나누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부터 내가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때부터 나의 다음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면 나는 그에게 어떤 연인이 되고 싶은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


나는 그가 없이도 스스로 잘 살아가는 씩씩한 연인이 되고 싶었다. 혼자 있을 때도 행복하지만, 그와 함께하면 더 행복한 연인이 되고 싶었다. 언제든 찾아오고 싶은 사람, 언제 찾아오더라도 늘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힘들면 기대어 쉴 수 있는 사람, 그가 눈물을 보일 때면 꼭 끌어안고 괜찮다고 쓰다듬어주는 연인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의 외면보다 그의 내면과 가능성을 볼 줄 아는 연인, 그의 꿈과 포부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연인이 되고 싶었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연인, 신뢰할 수 있고 의리 있는 연인이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다시는 나의 연인을, 힘겨운 상황에 철없이 혼자 내버려 두고 혼자 감당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나만이 가진 여성적인 에너지로 든든한 연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은 단 한 가지였다. 동고동락을 함께 하며 더욱 견고 해지는 사랑. 이 세상은 너무나 거칠고 험난하며, 인생길은 외롭고 고달프다. 어차피 혼자 태어나 혼자 가는 인생,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독한 길이지만 적어도 함께 손 붙잡고 걷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는가.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고, 의심하고, 상처 주기에 우리 인생은 한편으로 너무 짧고 그래서 눈물 나도록 소중하다. 그런 인생길을 다시 한번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이 허락된다면, 이번에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도란도란 의좋게 걷고 싶었다. 비록 그것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런 기회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런 행운이 다시 한번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정말 놓치지 않고 잘 가꾸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훌륭한 남자가 나타나기를 소원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oodtherapy.org/blog/its-for-you-not-them-forgive-to-help-yourself-heal-071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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