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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Sep 18. 2023

남편 네가 안 해주면 나는 어디 가서 누구랑 하라고?

뿌리와 날개의 국제커플 연대기/ 국제이혼 상편

국제이혼 상편, 시작하겠습니다. 독일집은 이사를 가면 등도 없고, 주방도 없고, 심지어 바닥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이사를 가면 전에 살던 집 바닥재를 뜯어오던가, 새로 사서 자기가 직접 붙이던가 사람을 사서 해야 돼요. 어지간한 독일 사람들은 보통 친구들이랑 직접 하는데 인건비가 말도 못 하게 비싸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직접 한 건 바닥이고 주방이고, 이사 나갈 때 또 다 뜯어가지고 나가야 돼요. 그래서 보통 이사 나가고 들어올 때 기존 세입자랑 새로운 세입자끼리 서로 절충해서 이런 것들을 사고 팝니다. 이런 것들이 이미 딸려 있는 집은 월세가 당연히 비쌉니다.


저희는 잦은 이사 때문에 주방을 안 사서 Einbauküche(빌트인 주방)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주방에 식기 세척기도 없고, 냉장고에 냉동실도 없다고 했죠.


갓난쟁이 데리고 이유식에 어른들, 삼시세끼 해대면서 손설거지까지 하려니 주방에서 하루 종일 사는데 그 추운 날 난방도 없이 차가운 타일바닥에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움켜쥐고 서서 걸어 다니는 아기를 몇 시간이고 바닥에 내려놓는 게 안쓰럽잖아요.


집구석은 이렇게 냉골인데 자기 쇼핑은 또 얼마나 해대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넥타이며, 양말이며, 구두며 택배가 두세 개씩 집으로 오는데, 돈이 다 어디서 나는 건지 물어보면 맨날 이거 팔아서 샀다, 저거 팔아서 샀다 그러는 것도 슬슬 걱정이 되고.


또 아침마다 멋지게 수트를 차려입고 출근 전에 인스타에 1일 1사진 올려요. 그럼 저한테 사진을 찍어달라 그러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제 밤중수유 하고 그러니까 후줄근해가지고 눈곱도 못 떼고 태어난 지 두 달 된 애를 등에 업고 내려가서 남편 사진을 막 각도 별로 수십 장씩 찍어줘요. 저는 2023년인 지금도 SNS를 안 하는 여잔데!


해달라니까 해주기는 하는데 매일같이 그게 얼마나 피곤한 지 아십니까? 그러다 가끔씩 저한테 H&M에서 5유로씩 하는 거 있잖아요. 색깔 별로 그런 라운드 티를 네다섯 장씩 사다가 갖다 줘요. 나는 그런 거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뭐 어떡합니까! 주니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고맙다고 받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헤어지고 나서 보니까 자기 수트, 구두 몇 백유로 짜리를 사잖아요. 저는 사실 가격도 몰라요. 제가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한 적도 없고, 꼬치꼬치 캐물은 적도 없고 하니까.


근데 비싸겠죠. 고급 아니면 취급을 안 하는데, 이 남자는. 막 이제 그런 거 사면서 미안하니까 그렇게 싸구려 티쪼가리 뭉태기를 사다가 던져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덩달아 남편의 검소함에도 슬슬 의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어, 이 사람이 정말 검소한 게 맞을까?’ 이러면서. 왜냐하면 집에 자꾸 택배상자가 쌓이니까.


그래서 나도 이제는 나 필요한 것 좀 요구해야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남편한테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식기세척기라도 한 대 사자고. 그런데 남편 왈, 식기세척기 없이 설계가 된 주방이라 수도관이 싱크대 용으로 하나만 있어서 들일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제가 싱크대를 열고 봤더니 정말로 수도관이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냉동실 없이는 이유식을 해대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가지고 냉장고는 제가 끝까지 우겨서 냉동고가 있는 걸로 새로 삽니다. 그런데 옛날 집 2층이라 계단에 왜 팔걸이가 있잖아요. 굽이굽이 휘어지기도 하고. 거기가 너무 좁아서 각이 안 나오니까 냉장고가 못 올라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그럴 때 냉장고 문을 떼서 들어오기도 하고, 각도를 맞춰서 심지어 가전에 흠 안 나게, 바닥재 안 상하게 기술적으로 하지 않습니까? 독일은 그런 거 없습니다. 독일말도 잘 못하는 이민자들이 와서 몸으로 때우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말을 해도 통하지도 않고 서비스 개념도 없는 것 같아요. 돈 낸다고 왕이 아니라 손해 보기 싫으면 집주인이 다 살펴야 돼요.


그래서 이 배달하는 애들이 가만히 서 있길래 제가 냉장고 문을 떼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층을 더 올라오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현관문이 작아서 못 들어오는 겁니다. 제가 주방 가로, 세로, 높이까지는 다 쟀는데, 설마 현관문이 작아서 못 들어올 줄은 몰랐던 거죠.


왜냐하면 이사 들어올 때 침대, 책상, 장롱, 소파 다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냉장고는 앞뒤로 폭이 있으니까 못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되돌려 보냅니다. 제가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고는 하는데 일이 자꾸 어그러지는 거죠.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거실에 등을 달려고 봤더니 아니, 남편이 등을 달 줄 모른다네요. 여기 10년 살아보니 독일 남자가 등을 못 단다는 것도 좀 특이한데, 그때는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독일 사람들이 사는 꼴을 몰랐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한국처럼 두꺼비집 내리고 형광등을 가는 수준이 아니라 전선 몇 가닥을 피복을 벗겨가지고 스스로 연결하고 드릴로 뚫어서 등을 천장에 고정시켜야 되거든요. 한국 사람 누가 이사 갈 때마다 피복 벗기고 드릴로 뚫어서 직접 등 달고 삽니까? 전 듣도, 보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아, 당연히 못하지! 그럴 수 있어.’ 했어요. 그런데 이 남자가 자기가 할 줄은 모르는데, 사람을 사는 건 또 돈 들어가서 싫으니까 이걸 차일피일 미루는 거예요.








여기서 잠깐! 이건 다 이혼하고 제가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니까 ‘아, 그때 그래서 그 사람이 그랬구나!’ 하고 깨달은 거지 그 당시에는 그 사람이 돈 때문에 차일피일 미룬다는 생각도 못했고, 그냥 무슨 말을 하면 그 핑계를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왜? 우리는 가족이니까!


저는 부모님이 제 청소년기에 한 10년 정도 지긋지긋하게 다투던 시절이 있어서 그랬지, 아빠가 상당히 가정적이십니다. 그리고 엄마나 아빠가 가정을 위해서 헌신을 하셨어요. 두 분이 싸울 때 싸우더라고 문제가 있으면 같이 해결을 하셨고, 결국 우리 가족 모두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결말을 맺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한 가정에서 남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귀찮고, 돈이 아깝기 때문에 처자식이 불편하고, 곤란한 상황인데도 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냥 산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저도 이 남자랑 한 2년 반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 남자가 실생활에서 불편을 개선하는 데에는 별 재주가 없다는 걸 슬슬 눈치채기 시작해요. 명문대 나왔어도 일머리 없는 사람들같이, 그냥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워낙에 그 사람이 융통성이 없기도 했고.


또 나가서 돈 벌어오느라 바쁜데 집안일에 관심도 없는 남자 붙들고 닦달하면 뭐 합니까? 그래서 제가 대수롭지 않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무나 할 줄 아는 사람, 더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하는 파트를 맡으면 되는 거죠.


또 저희 엄마가 이런 쪽으로 그 현실감각이나 문제해결능력이 어마어마한 분이세요. 그니까 우리 부모님은 엄마가 창의적이고 융통성 있게 해결방법을 찾아내면 아빠가 그걸 꼼꼼하게 실행으로 옮기는, 그런 파트너십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한 거고.


그래서 엄마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러는 거예요. 수도꼭지가 하나만 있어도 물길을 두 개로 나누는 장치 같은 게 한국에는 있다면서 독일에도 그런 게 있지 않겠냐고,  길가는 독일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보래요. 우리 엄마 멋있죠? 그런 스타일입니다, 우리 엄마는. 저랑 정말 달라요.


그래서 이제 미햐엘라랑 막 알고 지내게 된 때였거든요. 그래서 걔한테 가서 물어봤어요. ‘남편이 등을 못 단다, 난 어두워서 못 살겠다, 어떻게 하면 등을 달 수 있냐!’ 그랬더니, 자기네는 이번에 집 사면서 집 전체에 등을 달려고 사람을 썼대요. 그러면서 저렴한 Handwerker(기술자), 자기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줘요.


그런데 그동안은 남편만 보고 살다가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교류를 하기 시작하니까 저도 점점 시야가 트이게 됩니다.


어라?
인건비가 비싸다더니
독일에서도 사람을 쓰는 사람들은
쓰고 사네?

어?
근데 미햐 반응을 보니까
등을 못 다는 남편이
독일에서는 조금
이상한 건가 보네?



그러면서 그동안 남편이 제게 줬던 정보와 다른 독일 사람들을 통해 받는 정보 사이의 괴리감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때까지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내 남편의 말이 어쩌면 다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이때까지도 잘 몰랐어요. 남편이 진짜 몰라서, 자기도 저처럼 부모님 밑에서 받고만 살다가 결혼해서 못하는 줄 알았지, 알고도 안 해주는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제대로 된 정보를 물어오면 좋아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은 반가워하는 게 아니라 자꾸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왜 집안일을 나가서 떠벌리고 다니냐면서, 남편이 등 하나 못 다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니면 자기가 뭐가 되녜요. 그때까지는 제가 남편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 그런가 보다 하고 가만히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막 아기모임 나가서 다른 독일 여자들한테도 ‘내 남편이 이리 말하던데 진짜냐!’ 하고 물어서 아니라 하면 집에 와서 ‘네가 한 말이랑 다르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더라.’ 하니까 이 남자 입장에서는 제가 막 불편하고 싫은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식기세척기도 사내라, 냉장고도 사내라, 이렇게 이렇게 해서 사람 쓰면 된다니까 등도 달아줘라! 하니까 자꾸 돈이 들고 귀찮아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이 사람이 그럽니다. ‘이 집은 너무 낡고 오래된 집이라 전부 엉망이다. 냉장고 못 들어오는 거 봐라! 수도꼭지도 장치를 끼워도 배수시설이 안 돼 있기 때문에 구정물이 못 나가서 못 단다. 등 하나 달자고 사람 쓰는 거 너무 비싸니까 곧 이사 가서 한 번에 다 갖춰놓고 살자.’


그래서 제가 그럼 언제 이사 갈 거냐니까 또 기다려보래요.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남편 놈은 언 발에 오줌 누듯이 일단 그렇게 말해서 제가 설치고 다니는 꼴을 좀 잠잠하게 해 놓고 그냥 가만히 있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눈치도 없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이놈의 여편네는 그 말을 또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자꾸 부부사이가 틀어지는 게 빌어먹을 낡은 집이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독일어도 못하면서 사전이랑 노트 펼쳐놓고 바닥에 엎드려서 할 말을 적어가면서 읽어가며 부동산 중개업자랑 일정을 잡아 11월, 그 추운 겨울에 찬 바람을 맞으면서 8개월짜리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걸어서,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다니면서 근방 10킬로 이내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니까 이 남편은 이제 퇴근을 하고 와서도 쉬는 게 아니라 이 여자를 따라서 집을 또 보러 가야 되는 거예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원래 제가 알아서 하고 살던 사람입니다. 근데 저도 바쁘게, 피곤하게 살아봤기 때문에 쉴 때 그 좋은 마음을 알아요.


그래서 퇴근하고 와서 쉬는 남편, 주말에 자기 시간 즐기는 남편 귀찮게 하기 싫은 맘 플러스 돈 못 버니까 쪼그라드는 맘 반 해서 그동안 좀 제가 불편해도 굳이 내 주장 안 하고 내버려 둔 것뿐이죠.


그런데 이제는 아기가 태어났으니까 아기를 위해서 하나씩 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니, 그래서 결국 1월에 이 여편네가 집을 구해버리네? 심지어 남편이 혼자 구한 그 집보다 위치도 더 좋고, 집도 더 새집인 거죠.


막상 구해놓으니까 좋아는 하대요. 이 사람이 예전부터도 되게 낡고 오래된 집, 직접 할아버지가 지으신 집에서 살아가지고 신축 건물, 크고 시원스럽고 세련되고 이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참고로 바람난 여자 상사 집도 되게 비싸고 좋은 집이었어요. 그래서 그 집에 가 가지고 그 남자가 눈이 휘둥그레지고 그랬었는데.


 아무튼, 이때의 경험은 훗날 제가 길바닥에 버려져서 정말로 절실하게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진짜 큰 도움이 됩니다. 세상 일이 참 재미있어요.


그렇게 이사 갈 집을 구해놓고 저는 점점 독립적으로 변해가면서 아기 모임도 하나, 둘씩 늘려가고, 한국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들 집에 초대도 받고 하면서 다시 연애할 때의 저처럼 독립적이고, 사교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부 사이는 자꾸 틀어져요. 제가 결혼을 하고 사람을 점점 안 만나게 된 것도, 비엔나에서까지는 교류를 많이 했는데, 부부동반 모임을 가잖아요. 그럼 남편이 집에만 오면 이제 그 사람들 흉을 보는 겁니다.


나는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은 이래서 멍청하고, 저 사람은 저래서 멍청한 게 싫다고 하니까 뒤에서 듣는 험담인데도 그 사람들한테 미안한 겁니다. 같이 사는 3년 동안 좀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이거였거든요. 끝도 없이 남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어줘야 하는 거.


그래서 부부동반 모임을 다 줄이고 결국에는 저 혼자 만나러 다녔고, 독일로 넘어와서도 어차피 그 사람 성격을 알기 때문에 그냥 혼자 만나기 시작한 거예요. 연애할 때는 제가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여서 놀고 있으면 따라와서 제 비위를 맞췄기 때문에 몰랐는데 살아보니까 아주 개인적이고,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독일에 살면서도 옥토버페스트 같은 데도 한 번도 안 갔습니다. 페스티벌(사람 많이 모이는 곳) 혐오하는 사람이었어요. 어쩜 만나도 이렇게 정반대로 만나지는지!


그런데 어쩝니까? 이미 결혼을 했는데. 이 사람이라고 뭐 살아보니 제가 다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제가 이 사람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 딱 그 크기만큼 이 사람도 제가 불만이었겠죠. 인간관계란 게 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는 그 사람이 불편한데 그 사람은 내가 편안하고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 많이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입장차이에 대한 그 정도 개념은 있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잘하고, 열심히 사니까 저도 다 감래하고 살려고 한 거죠.


오히려 남편이 저렇게 완벽주의적인 성격에 혼자 있을 때 제일 행복한 사람인데 나 같은 덜렁이랑 살려니까 저는 오죽할까 싶어서 배려한답시고 그냥 불평 안 하고 저 혼자 아기모임 잘 다녔습니다.








5월에 독일로 이사 와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두 달을 쉬면서 아기를 다 돌봅니다. 그 두 달 동안 저는 젖만 먹였고, 그 외 나머지는 거의 다 남편이 했기 때문에 덕분에 제가 몸조리를 잘했어요. 그때 체력으로 돌 지나고부터는 10킬로 되는 아기 한 손에 안고 다른 손으로 장 본 짐이며, 지하실 빨래며 다 3층까지 들고 나르는 그 고된 싱글맘 생활을 버티는 거죠.


아무튼 아기 태어나고 백일 넘어서부터 남편이 새 직장에 출근을 하는데 그렇게 여자상사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까 제가 그랬죠.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하고, 특히 집에 오면 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험담을 한다고.


돌아보니 이 사람이 신혼 초에 로테이션을 그렇게 오래 돈 것도, 아마 성격이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걸 직장동료들은 알았으니까 평판도 안 좋고, 팀워크도 안 맞고 해서 안 뽑혔던 것 같아요. 이 사람 성격이 이런 걸 아니까 아내로서 상당히 염려스럽더라고요. 벌써 결혼하고 2년 반이 지났는데 직장생활을 만족스럽게 하는 걸 못 봤으니까.


그런데 집에만 오면 그렇게 여자상사 때문에 힘들어하던 사람이 두 달 정도 지나서부터는 그 여자 욕을 안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10월이 넘어가니까 그 여상사가 자기 능력을 알아주기 시작했다면서 막 그 사람 얘기를 좋게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여자랑 오늘은 뭐 했고, 뭐 했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기뻤습니다. 이 사람이 드디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구나! 그때까지 직장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좋아하고, 일이 재미있다고 하니까 아내 입장에서 기뻤습니다. 또 항상 사람들 욕을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누군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사람이 철이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곧 월급도 오를 거니까 이제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차도 사고 그러면서 편하게 살자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잘 되어간다고 하니까 제 사는 모습이 희생이라고, 아깝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어요. 이런 여타의 일들이 평행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또 하나는 잠자리 문제였습니다. 저는 모유수유를 돌 넘어서까지 했어요.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옥시토신 분비가 왕성해지기 때문에 뇌에서는 수유할 때마다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고 해요.


그래서 아기를 낳으면 여자들은 대부분 성욕이 확 줄어들게 되는 겁니다. 하루에 섹스를 7-8번씩 매일같이 하는 셈인데 밤에 왜 또 그게 하고 싶겠습니까. 제 남편은 아기 낳고 첫 두 달까지 제 몸이 회복되는 게 중요하다면서 잠자리를 미뤘어요. 좋은 남편이죠.


그런데 첫 두 달이야 회복기간이라 그렇다 쳐도, 저는 제왕절개를 한 데다 친정엄마가 꽤 유명한 산모마사지 전문가였기 때문에 아기 낳고 한 달 동안 전문 마사지를 받아서 임신 전 몸무게며 몸매가 바로 돌아왔거든요. 심지어 허리는 더 가늘어졌습니다. 아기 낳고 뼈가 말랑말랑할 때 만져놓으니까 체형도 아예 바뀌는 거예요.


그리고 독일 넘어와서 배랑 허리근육, 골반을 잡아주는 산모 운동수업도 나갔어요. 젊으니까 회복도 빠른 데다 아기가 순해서 저는 아기 키우는 게 그렇게 고되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잠자리가 일찍부터 가능한 컨디션이었는데, 남편도 요구를 안 하고 저도 성욕 자체가 사라지다 보니까 어영부영 넉 달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아기가 한 4개월이 넘어가고부터는 슬슬 부부 사이에 잠자리가 없는 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아기 낳고 여자들이 아기한테만 정신이 팔리면 섹스리스가 되기 쉽다 그래서 저는 아기도 처음부터 따로 재웠거든요.


아기가 또 백일부터는 밤중수유 없이도 7시간 통잠을 잤고,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우리 부부 사이에 섹스가 없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안 하는 거죠. 그래서 남편에게 다가갑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런저런 핑계로 피해요. 저라고 뭐 피하는 사람 붙잡고 억지로 하고 싶겠습니까?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안 내켜하면 마는 거죠. 이만하면 출산한 아내 입장에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원래도 기질적으로 예민한 사람인 데다, 새 직장 다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심각하게 문제 삼지는 않았어요. 또 그때는 정말 여자 상사 욕을 많이 할 때였어가지고. 그렇게 또 시간이 가고 6개월쯤 돼서 한번 시도를 했는데, 아기가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으니까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 평일 저녁에는 일하고 와서 피곤하니까 못 하겠고, 주말 낮에는 아기가 깨어있어서 못하겠다? 음.… 음…. 웃기지 않습니까?


잠자리에 관한 얘기는 아직 더 남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뒷 이야기는 국제이혼 하편에서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영상이 즐거우셨기를 바라고,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자유, 세상 모든 한부모 가정을 향한 자유입니다. 그럼 다음 영상에서 봬요. 안녕!




https://youtu.be/nyeb81X1C30?si=EG0OmX1Z_Ucgw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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