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규격‘이 좋다. 여기서 말하는 규격이 뭐냐 하면 이런 거다. 동사무소에 갔을 때 샘플처럼 적혀 있는 문서 속 ‘홍. 길. 동’ 같은 것. 어떤 일의 표본 같고 샘플 같은 것 말이다. 이 규격이란 게 있으면 사람 간 소통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서로 엇나가는 것이 있어도 그 기준을 토대로 조금씩 바로 잡아 나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규격은 하나의 사회적 합의라고도 볼 수 있다.
또 규격은 경제적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규격은 A4, A3, B4와 같은 종이의 규격이었다. 보통 많이 쓰는 저 ‘규격 종이’들은 종이를 만들 때 구분하는 가장 크고 기본 단위인 A와 B형을 기준으로 몇 번을 접었는지에 따라 숫자가 뒤에 붙는다. 고로 접는 행위 만이 있을 뿐, 재단, 그러니까 의도에 의해 추가로 자르는 면이 없으므로 낭비가 없다. 기준도 되고 합의의 토대가 되며 경제적이기까지 하다니 ‘규격‘이라는 건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종이 외에도 여러 규격을 갖고 있다. 물론 그것이 종이와 같은 물건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 간에 암묵적 ‘규격의 삶’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선 만 6세, 한국 나이 여덟 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가고 그 이후에는 계속 학교를 다니다 스무 살 즈음에는 거의 대학이란 곳을 간다. 이후 남자들은 군대에 가고 여자들은 취업을 한다. 이십 대 초반 즈음부턴 그간 ’암묵적으로’ 금지됐던 연애 비슷한 것을 하고 이십 대 후반에는 조금씩 돈도 벌고, 그러다 태어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래서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집 나간 ‘자아‘도 한 번씩 찾으러 떠난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확장해 한 명씩 결혼을 하기 시작한다. 너나 할 것 없이 한 장소에서 30분 내지는 한 시간 단위로 결혼식을 하고 적당히 좋고 넓은 네모난 아파트에 그보다는 작은 네모난 많은 것을 넣어 두고 살다가 일이 년쯤 지나면 가족의 또는 국가의 새로운 구성원이 될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낳고 나선 또 아이를 케어하는데 온 가족이 힘을 모으고 그 아이가 크면 내가 자랐던 그대로 아이는 또 삶을 살아간다.
모두가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은 ‘이렇게‘ 산다. 그러다 ‘이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저 구석에서 살짝 올라오는 것 같아도 왠지 혼자 유난 떠는 것 같고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란 생각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 저 깊은 곳으로 이전보다 더 멀리멀리 ‘그런‘ 생각을 던져 버린 채 다시 그 ‘규격대로‘ 살아갔다. 어쩌면 이건 ‘기준’도 ‘규격’도 아닌 ‘평균‘의 삶이었을지도 몰랐으나 나는 그것들을 따로 나누지 않고 동일어라 생각하며 편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사실 나는 누구보다 ‘기준‘이 좋고 편했다. 성실히 내 안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고 한 직장에서도 약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것을 눈에 띄게 증명하고 싶어 지각 한 번을 하지도 않았다. 아이에게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었고 좋은 자식도 되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이 ’기준‘이란 것만 지키면 뭐든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마흔 즈음의 나이에 내 생각과 계획 그리고 기준보다 훨씬 빨리 그 삶에서 타의로 튕겨져 나갔다. ‘세상 일이 그렇더라…’라고 다들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그 위로의 말에 기대어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 규격의 흐름에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난 패배자가 된 것만 같았다. 고작 나 자신이 세운, 아니 세웠다고 생각한 ’기준’을 채우지 못해서.
그렇게 어쩌다 눈뜨고 일어나 보니 ‘기준밖‘의 생활이 벌써 시작되었다. 처음엔 무엇을 할지 몰라 이전과 똑같이 새벽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열심히 운동도 하고 책도 읽었는데 아침 7시… 아이도 등원시키고 낮잠도 잘 잤는데 오후 12시 반…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며칠 전까지의 ’기준의 삶’처럼 시간이 쉬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어떻게든 하루의 시간을 억지로 채워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전의 삶과 무엇이 달라졌길래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기 힘들었던 걸까 생각이 들었던 나는 기존에 내가 세웠던 ‘하루의 기준’ 이른바 ‘루틴’이라 불리는 것들을 하나씩 체크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루틴들은 더 이상 실천할 수 없다. 그것들은 나의 지난 생활에서 연결된 사람과 환경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나의 기반이 바뀌었다면 조금이라도 지금의 환경에 맞춰 나가야만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강제로 주어진 휴식이라 해도 빈둥빈둥 보내기는 싫었다. 그렇게 나는 적당한 선에서 나의 루틴을 하나씩 다시 채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전에 쓸 수 없던 오전 시간을 활용하는 건 어쩐지 재미가 있어지기 시작했다.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도서관 봉사를 찾아 바로 봉사원으로 등록했다. 전에 하던 일과 비슷한 듯 다른 도서관 업무는 내 예상대로 재미있었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나에게 안전하게 안착할 수 있게 나름의 기준을 제공해 준 것이다. 잡생각이 들면 서가를 정리하며 더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조건 걸었다. 걸으면서 음악은 듣지 않고 주변의 소리에 더 집중했다. 그러니 새롭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내가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주의 깊게 듣지는 않았던 소리. 매일 아침 등교하느라 바쁜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화하듯 지저귀는 새소리, 어느 날은 다정하게, 어느 날은 성난 듯 불어대는 바람 소리.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히 깊이 집중해서 들어보니 새롭게 들리기도 했다. 알던 것이 새롭게 들리고 보이니 나의 ‘기준‘이란 것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글동글 어딘가 울퉁불퉁해도 나만의 규칙, 또는 기준 또는 평균. 그렇게 별 것 아니지만 나만이 알고 있는 기준을 세워갔다. 그러면서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게 되었다. ’나‘란 사람은 크게 변하지도 안 변하지도 않았다. 다만 서 있는 자리가 네모 반듯한 규격 안의 그것이 아닌 그 외에 동글동글해서 울퉁불퉁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굽어지고 기울어진 길에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그런 삶의 나만의 규격, 모나기도 했지만 그래서 어딘가 개성 있는 그 길을 나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변하면 무슨 큰 일 날 줄 알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이런 ‘규격 외의 삶’도 나쁘지 않다는 걸. 내가 흘렸던 많은 눈물이 머쓱하게도 하루하루 힘차고 알차고 재밌게 잘 굴리면서 보내고 있다. 삶에서 이런 시간도 사실 필요했다는 것도 깨달으면서. 진부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길 저런 길, 이런 삶 저런 삶이 있다는 것도. 그래서 더 재밌기도, 아름답기도 한 나의 삶. 규격 외의 ’나’를 살아내면서 이런저런 나도 다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쩌면 규격도 기준도 평균도 아닌 그냥 삶을 살고 나서야 내가 이런 삶을 꿈꾼 적이 없어서, 그래서 상상조차 못 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꼭 경험해야만 꿈꿀 수 있는 건 라닌데 너무 세상을 좁게 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난 더 이상 ’내‘가 싫지 않고 좋다. 이런 나도, 내 삶, 내 모든 규격도 기준 평균도 꿈꿔보지 않았지만 결국 지금 이 자리에 두 발로 힘차게 서 있는 그 모든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