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가족의 기억-3

by 김경민

나의 외할머니는 현재 90살쯤 되셨다. 정확한 나이는 사실 잘 모르겠다. 일부러 모르려고 한 것은 아니고 40살인 내게도 할머니는 어려운 존재이기에 쉬이 물어볼 수가 없다.


할머니는 긴 시간을 혼자 사셨는데, 그건 저번에 말했던 할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환갑이 지나고 얼마 뒤). 자식, 손자한테는 한결같이 쏘스윗했던 할아버지였지만 할머니 말은 더럽게 안 듣는 장꾸 같은 남편이 우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약 20여 년이라는 시간을 할머니는 혼자 사셨다. 그 기간 동안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야속하게도 IMF라는 직격탄도 맞았다. 그래서 늘 복작복작대던 사진 속 가족의 시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때 멈췄다. 모두 제 살기 바빴던 탓이라고 변명을 해본다.


자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할 때 할머니는 늘 그곳에 계셨다. 혼자.

전화로는 차마 채울 수 없는 그리움, 외로움 같은 게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느 날, 큰 이모는 결단을 내린다. 자식들 모두 사실은 하고 싶었지만 상황상 차마 꺼낼 수 없었던 그 말. 이모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고 선포했다.


모두가 그 말을 반가워했지만 할머니는 그 반가움을 숨기실 수 없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마지막 짐을 챙길 겸 다니러 갔을 때, 할머니의 집에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쯤의 할머니는 눈이 많이 어두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는 있으셨다.


늘 엄근진하여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할머니는 아주 경쾌하고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어~. **이 어메가? 응. 나 이제 이사가. 이제 내가 혼자 못살아~. 자식들이랑 같이 살 거야. 이제 못 보겠지? 그래 잘살아. 난 갈게~”


그렇게 몇 통의 전화를 활기차게 받으시고 할머니는 평생 살던 터전을 떠나셨다.

그리고 아침 9시가 되면 통학버스를 타고 할머니집(어린이집 같은 시설)에 가셔서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시간을 보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시 버스를 타고 귀가하신다.


할머니의 시간이 어쩌면 거꾸로 흐른 듯. 아이가 된 것처럼 그렇게 생활을 하신다.

할머니는 늘 엄근진하셨던 데다가 말 한번 더럽게 안 듣는 손주들을 그렇게 좋아하시진 않았다. 정확히는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단 표현하는 데 서툴렀고, 무엇보다 내 새끼 괴롭히는 손주들을 야속해하셨다. 그런 엄근진하기만 했던 할머니가 아이와 같은 생활을 하신다니 좀 어색하기도 하고 또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다.


할머니는 늘 엄근진해야 되는데 그래야 할머니 같은데…

이제는 더 이상 할머니를 어려워해서도 그런 이유도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아직도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저 멀리서 메아리로 외치듯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사실은 사랑했었고 지금도 사랑해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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