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진화한다. 이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확실히 느끼게 된 점이다. 물론 그 진화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듯이 어떤 단계를 명확히 밟는 것은 아니고 때론 퇴화하는 것도 아닌가 싶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성장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그 삶을 현재 살아내고 있는 내게는 어쩔 땐 이보 후퇴처럼 보일 뿐이다.
아이를 키워 보니 예부터 내려온 (한국 나이로) 미운 네 살, 미운 다섯 살 말은 나름 신빙성이 있는 것이란 걸 요즘 들어 다시 느낀다. 미운 네다섯 살은 만 나이로 36개월 전후. 어느 장소에 가도 유료 요금의 기준은 거의 36개월로 따질 만큼 36개월이란 숫자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아이를 키우는 나 자신도 이게 뭐 그리 차이가 있을까 싶었지만 정말 다르다는 느낌이 확연히 느껴진다. 이제 정말 ‘아기 시절은’ 졸업하고, 완전한 ‘어린이’의 세계로 진입한 느낌이다.
일단 훈육에서도 돌아오는 반응이 다르다. 옹알거리던 시기의 아이도 그 나름대로 인간이라고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있었다. 눈치를 한 번 보더니 ‘오? 안 되는구나~ 그럼 안 되는 거지~’라고 지나가던 아이는 서서히 ‘오? 왜 안되지?”를 거쳐 “안돼? 왜 안 돼? 뿌앵~~”의 단계에 이르렀다.
아이를 36개월이란 시간 동안 키워본 결과, 아이는 어른과 같이 대하는 마음을 가지되 절대 어른의 말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그건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지만 이것처럼 미숙함을 드러내면서 아이에게 공격의 빈틈을 주는 일도 없다.
이 시기의 아이는 어느 정도 말도 잘 알아듣고 자기 할 일도 어느 정도 해내서 부모는 은연중에 자꾸 어른에게 말하듯이 말을 하게 되는데, 훈육을 할 때도 이렇게 말하게 되면 ‘무조건 싫어, 무조건 안돼, 무조건 나 하고 싶은 대로, 뿌앵~, 엄빠 미워~~’ 등의 말이 돌아오게 된다. 하다 하다 아이는 부모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그걸 이용하기도 한다. ‘빨간 불에 건널 거야. 시끄럽게 할 거야. 쿵쿵거릴 거야. 깨물 거야, 이 안 닦을 거야’ 등등
이럴 때일수록 이성의 끈을 붙잡고 한 번 더 참고 얘기를 해야 한다. 아이한테 말을 한다는 마음을 버리고 벽에다 얘기한다는 심정으로. 아이에게 응수한다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자기감정을 이길 수 없고 결국 화를 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응. 쑥쑥이가 이를 닦기 싫어하는 건 알겠어(감정 수긍).
그런데 쑥쑥이가 단 걸 잔뜩 먹고 이를 안 닦잖아? 그럼 입에서 개미가 나와서 쑥쑥이 이를 다 먹어버려(애매한 ‘벌레’보다는 아이가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개미, 거미’ 등을 소환하는 게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었다).
그럼 쑥쑥이 이가 다 사라지면 맛있는 거 못 먹을 텐데… 어쩌지?”
그럼 아이는 “안 돼~ 맛있는 건 내 거야. 개미 꺼 아냐~”하고 이를 닦으러 화장실로 뛰어 들어온다.
또 밤이 되어 “오 깜깜해졌어. 무서워~”라는 아이에게 무턱대고 “밤이니까 자야지. 밤에는 자야 돼~”라고 말한다면 잠들 때까지의 눈물 바람은 멈출 수 없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엇! 이제 밤이 됐네. 엄마 해님이 집에 가고 다른 엄마 달님이 왔어. 엄마 해님은 이제 집에 가서 아기 해님을 만나러 가는 거야. 그리고 아침이 되면 엄마 달님이 아기 달님한테 가는 거지. 해님과 달님이 우리를 지켜주지만 시간이 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아기랑 만나는 거야”
하루 종일 엄빠를 기다렸을 아이에게 과학적 사실과는 쬐금 다르지만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것으로 접근해 말해주니 아이가 밤이 오는 걸 덜 무서워 하기 시작했다.
사실 순간순간 이렇게 말하는 게 나도 몹시 귀찮다. 이제 애도 말을 알아 들는 것 같은데 그냥 자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꾹 참아가며 말한다. 매번 할 말을 생각해 내는 것도 난감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러는 애 속은 어떨까 싶어서 꾸욱 참는다. 아이가 말을 조잘조잘 잘할 수는 있어도 그걸 이해를 잘하거나 표현 및 소통이 잘 되는 것은 별개라고. 말 한마디 할 때도 신경이 쓰이지만 언젠간 아이도 이 노력을 알아주리라 믿으며 오늘도 입 안에서 할 말을 하나씩 골라 조심스레 내놓는다.
덧.
어느 비 오던 장맛날. 태어나서 그런 비는 처음 봤을 것 같은 아이가 아빠와 함께 역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말은 안 했지만 아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왠지 그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쑥쑥아,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아빠랑 이렇게 엄마를 구하러 와줘서 고마워.”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는 게 보였다. 안심의 표정이었다. 그렇구나. 나름 아이도 긴장하고 있었다는 게 그 표정의 변화로 비로소 느껴졌다.
“쑥쑥이가 엄마를 구한 거야? >.<“
한동안 아이는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의 말 한마디에 아이의 자신의 대한 효능감이랄까. 신뢰감이랄까 아니면 자신감이랄까 그런 것이 조금은 성장했을 것 같아서 말을 좀 더 가려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조급하고 미성숙하고 급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우리 아이를 위해서는 일단정지, 한 박자 쉬고 말하는 것. 그것이 결국은 아이도 나도 성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