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아프게 해 줘”

by 김경민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코로나도 아니고 너무나 흔하디 흔한 감기. 그렇게 아이가 감기에 걸린 지 3주 정도가 됐다. 하나가 다 나았다 싶으면 또 다른 감기가 오고 또 다른 감기가 왔다. 막 36개월 동안 무탈하던 아이는 코감기와 가래라는 낯선 것의 공격에 심하게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 밤을 울다 지쳐 잠이 든다. 그 좋아하는 주스, 사탕도 필요 없고 아이가 원하는 건 딱 하나.

“안 아프게 해 줘”


엄마가 신이라면 우리 쑥쑥이를 안 아프게 해 줄 텐데, 안타깝게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안 아프겠거니 쓰담쓰담 그리고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것뿐이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그리고 지금의 경험이 지금 당장은 아프고 쓰라리더라도 이후의 삶을 사는 데 좋은 토양이 되길, 그저 기도하고 기도할 뿐이다.


이와이 슌지의 1996년 작 <picnic>에서는 대략 이런 내용의 대사가 나온다.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녀 주인공이 있고, 여자가 말한다. 내용은 정확치는 않지만 대략 이렇다.

“나의 신은 우리 부모님이야. 나를 만들고 낳았지. 그분들로부터 나의 세상이 시작됐어”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는 남자 주인공이 무어라 대꾸를 했었던 기억이 나지만 그 내용까진 기억이 안 난다.

저 말이 내겐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자랐던 내게 ‘신이 부모’라는 말은 너무 센세이션했다. 그동안의 가치관이 뿌리째 흔들렸다.

나의 세상은 그분들(부모님)로부터 나왔구나. 나와 함께 숨 쉬고 이야기하고 생활하는, 그래서 어쩔 땐 전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오히려 나약하게까지 보이는 그분들. 하지만 나의 세계의 시작은 그분들부터였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부모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던 부분이었었던 것 같다. 온전치 않은 내가 과연 부모 될 자격이 있을까. 아이에게 세상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아이를 그 세상 안으로 밖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까.


나의 해묵은 질문은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도전을 받고 있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이의 작은 고통도 덜어줄 수 없다. 고로 아이를 아프지 않게 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할 수는 있다. 아이가 아프고 힘들 때 기대고 싶을 때 부족하지만 함께.


쑥쑥아, 많이 아파서… 힘들지. 엄마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 게 너무 슬프구나.

엄마, 아빠는 신이 아니라서 쑥쑥이를 고쳐줄 수는 없지만, 우리 쑥쑥이나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그 어느 시기라도 엄마 아빠가 필요한 그때 옆에 있을게. 우리 이 아픈 시간이 빨리 지나갈 수 있게 서로 꼭 안아주고 기대고 있자. 사랑한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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