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렇게 예쁘게 칠했어?”

by 김경민

나에게는 세 살 터울의 오빠가 있다. 모두가 예상하듯 어린 시절의 오빠와 나는 부모의 사랑을 둘러싸고 앙숙 비슷한 사이를 형성했다. 하지만 앙숙이라도 무려 세 살이나 많은 오빠에게 쨉이 되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랬다.


어려서부터 내성적이었던 오빠와 달리 왈가닥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소 전형적인 아이들의 성격을 가졌던 나는 오빠가 싫어하는 행동을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하지 마라~~”라고 자주 경고를 주었지만 어린 나는 당연히 그 말을 무시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무시한 꼴을 많이 보여 오빠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그중에 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오빠는 어느 날 자신이 보아도 정말 잘 나온 인생 샷 하나를 건졌다.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이었다.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일반 사진보다도 조금 더 크게 해 오빠의 방에 장식해 놓았다.

오빠는 볼 때마다 흐뭇한 그 사진을 온전하게 보관하고 싶었지만 나는 자꾸만 그 사진을 더 완벽하게(?) 꾸며주고 싶었다. 당시 내 생각엔 ‘나한테 맡겨 주면 정말 완벽할 텐데….’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오빠에게 다가가 설득을 시작했다. “오빠, 내가 저 사진 정말 예쁘게 해 줄게”

오빠의 대답은 당연히 No. 견제가 들어갔다. 오빠의 입장에서는 분명 사고를 칠게 뻔한. 그것도 자신의 맘에 안 들게. 그런 행태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언제나 집에 오면 사진을 사수했고 나의 접근을 막았다. 그런데 그런 오빠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었으니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이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오빠가 유치원에 간 사이에 나는 정말 정성스럽게 오빠의 사진을 꾸며주었다. 그때도 차마 양심은 있었는지 다행으로 얼굴을 손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오빠는 사진을 보자마자 극대노. 앙앙앙 드러눕기 시작했고 난 좀 머쓱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사진이 정말 화룡점정, 너무 멋져진 것 같은데 오빠가 보기엔 그냥 매직 떡칠을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오빠의 그런 성난 아우성은 엄마의 등짝 스매싱으로 끝이 났지만 오빠의 방에서 예쁘게 장식됐던 그 사진은 곧바로 앨범행을 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사진을 보니… 음… 오빠는 그럴 만했다. 이건 꾸몄다기보다 앙심을 갖고 그었댔다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 변명을 해보자면 그래도 그 사진에 재밌는 추억이 하나 더해졌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 오빠에게 구구절절 변명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얼마 전 일어났다. 아이와 함께 아이 물건에 이름을 써 붙이다가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에 아이가 내가 들고 있던 유성 매직 네임펜을 들고 탈주를 했다. 그리곤 자주 신는 노란색 슬리퍼에 색칠(?)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남편은 “음, 이건 이제 못 쓰는 거야”라고 할 정도로.


겸사겸사 아이의 신발을 빨았지만 ‘유성’ 매직펜의 힘은 강력했다. 지저분한 다른 것은 깨끗하게 지워졌지만 아이가 색칠했다는 그 그림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마침 다 마른 신발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오자 아이가 한 마디를 한다.


“오아~ 누가 이렇게 예쁘게 칠했어? @.@“


이건 뭐지. 데자뷔인가. 아이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 말 한마디와 아이의 표정에 지난 기억이 새로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즐거운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늘 손가락 힘이 약해 무언가를 그리는 데 주저하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 있게 탈주해 자신의 신발을 예쁘게 칠할 만큼 아이는 자랐다. 그리고 정말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곳에 얼마나 예쁘게 칠할지 약간 머리가 아파오지만 그림 하나에 추억 하나를 더한다는 심정으로 예쁘게 많이 많이 그려 주었으면. 그럼 엄빠는 갤러리가 되어 하나씩 아이의 그림을 수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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