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릴 때야?”

by 김경민

아이는 순수한 존재이긴 하지만 솔직한 존재는 아니다. 아니 솔직하려야 솔직할 수 없는 존재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처음에는 이걸 모르고 아이의 존재를, 의향을 오해한 적이 많았다.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들어주다가 결국 ‘이거 아니잖아’와 비슷한 항변을 받은 적도 있었고(물론 그것도 말이 아닌 몸짓 언어였지만), 그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닌 불안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를 자꾸 어른처럼 생각하면 안 되는데,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한다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대하는 것이 문제였다.


아이는 일상 속에서 흐르듯 스쳐가는 말들을 대부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를 지켜보니 아이의 말에는 몇 가지 패턴이 보였는데, 하나, 내가 확실히 의미를 알고 자신 있게 쓰는 말, 둘,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기억해 뒀다가 입력, 출력을 반복하며 그 의미를 찾아내는 말, 셋, 내 혀가 굴러가는 대로 소리를 그대로 아무 의미 없이 뱉어내는 말 이 세 가지 정도가 일단 보였다.


비슷한 말 같아도 (크기가) ‘크다’, ‘작다’는 알아도 ‘컸다(성장했다)’, ‘어리다(미성숙하다)’는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서 저어기~~ 티브이 안 흐릿한 화면 너머 어린 사람이 커서 자신의 엄마가 됐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한 듯하다. 아이가 언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단지 그 말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삶이 담겨야 진정한 이해가 있을 수 있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된 한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우연히 본가에서 발견한 홈비디오 때문이었다.


집집마다 전화기도 제대로 없던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가 되자, 우리 집에는 홈비디오카메라가 생겼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게 크고 무거운 데다 찍히는 화질도 시간도 별로였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그조차도 엄청난 것이었다. 그 홈비디오로 참 많은 것을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복구해보니 네 개의 정도의 비디오테이프만 쓸만했고, 그나마도 한 개의 usb 안에 들어간 몇 시간 남짓한 동영상이 되어 돌아왔다.


복구한 영상 속에서의 나는 오빠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따라가는 아기에 가까운 어린이였는데, 이 어린이는 초면인 산타할배에게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 애교를 힘껏 쥐어짜 선물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시간을 점프하여 파워 아싸 중딩이 되었다가 때마침 군에서 휴가 나온 오빠와 피자 먹방을 하는 고딩이 되어 영상은 완전히 끝이 났다.


마침 복구한 영상 받고 쑥쑥이 할배가 확인해 보고 있었는데 마침 쑥쑥이가 물었다.


쑥쑥이: 이 언니 누구야?

쑥쑥이 할배: 쑥쑥이 엄마야. 엄마. 엄마 어릴 때야


어릴 때는 뭐고 엄마가 어딨다는 건지. 쑥쑥이는 알 턱이 없다.


쑥쑥이: 아니 이 언니 누구냐고

쑥쑥이 할배: 엄마 어릴 때야


무뚝뚝한 할배는 설명이 없다.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다.

뭐지. 아이의 의문은 커져가지만 일단 외우기로 한다. 엄마 어릴 때.


며칠 뒤 나는 쑥쑥이 할배로 부터 전달받은 usb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쑥쑥이가 새롭게 말을 한다.


쑥쑥이: 엄마 어릴 때야?

나: 응. 엄마 어릴 때야

쑥쑥이: 응. 근데 엄마 왜 아기야?

나: 응. 엄마도 아기였다가 어린이였다가 어른이 됐어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다. 다시 물음이 시작된다.


쑥쑥이: 엄마 어릴 때야?

나: 응. 쑥쑥이도 엄마처럼 아기였다가 어린이가 됐다가 어른이 될 거야

쑥쑥이: 그런데… 그런데… 엄마 어릴 때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저기 저 사람이 엄마라는데 엄마는 여기 있고 생긴 것도 많이 다르다. 나도 저렇게 된다고? 저 언니가 된다고???


아이에게도 나이 먹은 엄마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다. 그런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니 인생은, 삶은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라도 언젠간 이해할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말을 배워가면서 인생을 배워가듯이 나도 아이의 말을 배우고 인생을 다시 보게 된다. 쑥쑥이를 통해서 전이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하나씩 배워 가고, 아이에게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한다.

쑥쑥아, 고맙다. 엄마를 사람 만들어줘서. 앞으로도 많은 지도 부탁할게~


덧.

아이가 뭘 모른다고 생각해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스스로 자존감을 세울 수 없다. 가능하면 명료하고 쉬운 말이지만 설명을 계속해주면 아이도 납득을 하고 이해를 해 나간다. 그런 아이를 보고 나를 다시 보면 역시 반성이 되는 부분이다. 이 또한 아이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무엇하나 안 고마운 게 없다. 땡큐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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