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을 키운 적이 없다. 게다가 식물도 키운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한 일 년 정도 거북이를 맡아준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기억은 없다. 그것도 내가 케어한 게 아니라 엄마가 거의 다 하신 거라 케어했다고 볼 수도 없다. 나의 삶은 동물과는 동떨어진 삶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쯤 한 말이 있었다.
“나는 개를 키워. 다섯 살이야”
개를 키운다고? 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나름의 로망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호감도가 급상승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아는 사람이었던 남편은 남친이 되었고 지금은 남편이 되었다.
남편이 남친인 시절, 우리는 그 개와 함께한 시간이 종종 있었다. 그 개의 이름은 ‘복실이’였다. 복을 많이 받으라고 지은 이름 같은데 이름처럼 복도 많아서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개였다. 요크셔테리어임에도 나름 순둥이라 자기 입맛에도 안 맞는 바나나를 내가 줬다는 이유로 억지로 받아먹기도 했고, 또 나름 성깔도 있어서 내가 더울까 봐 부채로 부쳐주다가 잠깐 멈췄더니 다시 부채질을 하라고 긁어대기도 했었다.
그런 앙큼하면서도 발랄했던 복실이도 어느덧 나이를 먹고 동생인지 조카인지 모를 아이들이 생겼다. 아이들은 자기 몸보다 훨씬 작지만 할 말은 제대로 캉캉! 하고 돌아서는 복실이의 매력에 빠져 잘 보이고 싶어 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복실이도 서서히 자기 옆 자리 한편을 내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실이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넘어갔었는데 이번만은 그 신호가 달랐다. 병원에서도 준비를 하라고 했고, 주 양육자였던 어머님의 상심도 컸다. 그렇게 하루는 좋았다 또 하루는 나빴다를 반복하다가 복실이는 산소방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저 편안히 갔기를 바랄 뿐이었고, 복실이를 우리 가족 각자의 마음속에 묻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복실이도 우리 마음속에서 잘 살기를 바라면서. 그렇지만 복실이 이야기가 나오면 잠시나마 흐르는 정적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다들 어쩔 줄 몰랐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복실이와는 갓난 아이 시절 몇 개월만 같이 보냈을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쑥쑥이: “복실이 보고 싶어”
나: “응? 복실이?”
쑥쑥이: “응. 복실이. 할머니 집에 있었잖아”
나: “… 근데 이제 복실이 없어. 할머니 앞에서 복실이 말하면 안 돼”
쑥쑥이: “할머니 집에 복실이 있었어”
응. 그래 있었지. 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몰라 그냥 얼버무려 버리고 말았다. 앞으로도 차차 설명할 날이 있겠지. 그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아마도 강아지의 크기에 따라 다른 소리로 구분하는 것 같은데 높은 하이톤의 강아지 소리가 나면 쑥쑥이는 복실이를 찾는다. 때마침 할머니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앙칼진 강아지의 소리가 났다.
쑥쑥이: “할머니! 복실이야!”
할머니: “응? 복실이??”
진땀이 나는 순간이다.
쑥쑥이: “응, 쑥쑥이 복실이 기억해”
그래. 우리 모두가 복실이를 기억하고 사랑하지. 할머니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우리 복실이만큼 예쁜 강아지가 없었는데, 우리 복실이처럼 우리를 사랑한 가족도 없었는데… 그 사실을 아이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이 복실이를 마음에 묻은 것처럼 아이의 마음속 한편에도 복실이의 자리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