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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 Jun 23. 2022

호모 비아트로(Homo viator), 관악산 등반기

늘솔길에 반하고 연주대에 홀렸다


이름에 매혹되어

다시 찾고 싶은 길이 있었다.


얼마 전 휴일 오후 처음 만난 "늘솔길".


금천구에 있는 호암산 호압사에서 석수역 쪽으로 뻗어있는 숲길이다.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 이라니.

이름을 보고 단번에 반해버렸다.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조선 태종의 왕명으로 창건되었다는

호압사를 가던 길에 늘솔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들이

고도를 낮춰 소음이 귀에 좀 거슬리지만,


비행기의 거대한 동체가

하늘을 나는 고래처럼 보이는 곳이다.


바람 한 점 없어도,

길을 걷는 내내 귀에서 솔바람 소리가 들렸다.  나무데크로 이어진 숲길이라 발걸음도 가벼웠다.


목적지인 호압사보다  늘솔길을 걷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늘솔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잣나무 산림욕장으로 이어져

숲길 걷기의 즐거움은 계속되었다.


좋은 것은 복기해야 비로소 기억 속에 꼭꼭

박힌다는 생각에 다시 찾아와 걸어보리라 다짐했다.


일주일 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석수역이 아닌 

사당역 관악산 초입 관악사에서 출발해

서울대 입구, 낙성대를 지나 호암산 호압사로 가는 비교적 먼 코스를 걷기로 했다.


등산이 아닌 둘레길을 걷는 거라

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첨부터  여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관악사 근처에서 이정표를 놓치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어쩔 수 없이,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물었다.


" 호압사를 가려고 하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 산 위로 계속 올라가면 그쪽으로 이어진

  길이 나와요.  편하게 가려면  관악사 옆

  아스파트 길로 계속 내려가면  되고요."  


  그는 이쪽 길을 훤이 알고 있다는 듯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아스파트로 길을 걸을 생각은

애당초 없어서 산 위로 난 길로 방향을 틀었다.


걷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 오후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가파른 길을 만날 때는 꼭 등산길 같이

험했지만 그런 구간도 있겠지 하고 넘어갔다.

바위들이 봉우리를 이룬

범상치 않은 암벽을 눈앞에 마주하고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봉우리를 지나고 나서

연주대 방향이란 이정표를 보았다.


둘레길이 아니라

관악산 정상 연주봉 방향으로 가는 등산길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머리에서 피가 굳어버린 느낌이었다.

지나고 온 길을 되돌아갈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등산길이나 둘레길이나

숲길을 걷는 건데 둘레길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


이참에 연주봉 올라가

호연지기나 느껴보자고 마음을 바꾸었다.


다시 우람한 암벽 봉우리 하나를 마주하니 연주대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봉우리를  지나고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나고 또 또 또.

철제 계단을 오르고

대체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간 건지.

산 이름에 ""자가 들어간 게 다 뜻이 있었구나.


관악산은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서울의 진산은 높이나 풍광으로 보나

백운대, 인수봉을 품고 있는 북한산과

도봉산일 거라 믿어 왔기에

한강 이남의 관악산이나  청계산은  

한 등급 아래로 여겨왔다.


그것이 착오였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관악산은 온몸으로 나를 흔들었다.


연주이 가까워질수록 몸은 힘들었지만

점점 암벽 특유의 풍광에 빠져들었다.


암벽 봉우리 어디쯤에 살고있을 신선이

구름을 잡아타고 눈앞에 나타날것만 같았다.


중국의 비경 장가계의 축소판 같기도 했다.


한강 쪽에서 보면 정상에 있는 높다란 기상 관측소 안테나 탑만  덩그러니 눈에 들어왔는데 산의 품속에 들어오니 울퉁불퉁한 바위 근육들의 각축장이었다.


연주봉 위, 연주대는 절벽위에 핀 한송이 꽃처럼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졌지만 

까지 오느라 애썼다고 환영하는 몸짓처럼 보였다.


정상 표석이 있는 연주봉에 서니

몸의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호압사나 늘솔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연주봉 위에 다소곳이 서있는 연주대를 보고 반해버렸으니 서운할 것도 없었다.


인생길이나 여행길의 묘미는 

계획대로 가지 않고 딴 길로 새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제대로 길을 걸었다면 호압사도 가고

늘솔길도 다시 걸을 수 있었을 테지만

연주대를 만나지는 못했을 테니까.


둘레길을 걷는 줄 알고 홀가분하게

집을 나선  발과 다리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엉뚱한 주인 만나서 지금까지 고생한 게 어디 이번뿐일까.


어린 시절을 도봉산 아래 산동네에서 

보낸 탓에 일찍이 산은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여름에는 계곡에 가서 멱 감고 산딸기를 찾아 산을 헤맸다. 겨울에는 보지도 못한 토끼를 잡겠다고 동무들과 눈길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그때부터 발과 다리는 예감했으리라.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늘솔길이든 연주대든 아직까지 어디든

나를 끌고 다니는 그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다음에는 길을 잃지않고 

늘솔길을 다시 걸어보리라.



* Viator : 걷는 사람

* Homo Viator: 여행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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