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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Jul 27. 2024

비 내리는 날들

소나기 내리던 시간 속에서

 며칠째 비가 내렸다. 비는 변덕스럽게도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짧은 주기로 반복한다. 덕분에 외출할 때마다 우산을 챙기는걸 망설이다가 결국 챙기곤 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래도 비가 내리는 것이 썩 불쾌하지는 않다. 비내리는 날 특유의 분위기는 특유의 감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감성은 쨍하게 빛이 내리쬐고, 온갖 자연의 생물들이 목청을 돋우는 한여름날과 대비되는 차분함이다. 비가 쏟아지는 무수한 소리만 가득한 적막함은 사람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오는 날은 정적인 시간이다. 맑은 날이 활동의 시간이 되어, 이성에 따른 판단과 움직임을 장려하는데 비해, 비가 내리면 그 활동이 제약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인류의 조상들에게 비오는 날은 빗방울로 인해 시계가 뿌옇게 제약되기도 하고, 많은 소리들이 묻혀 예민하게 감지하기 어려움은 물론, 체온이 낮아져 건강에도 취약하기에 자연이 부여한 휴식 시간이었으리라. 이렇게 멈춘 시간에는 그간 유예해둔 다른 생각이나 그늘 뒤 숨었던 감성들이 신나게 뛰쳐나왔을 것이다. 비가 활동에 제약이 되지 않는 오늘날에도 그 습성은 현생 인류에 전해진 것이 아닐까?


 그렇게 비오는 날은 감성의 시간이다. 멍하니 물웅덩이에 형성되는 동심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알수 없는 기분이 든다. 그것은 긍정과 부정을 떠나 대체로 가라앉는 느낌이며, 평소 외면한 감정들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자아와 존재를 들여다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어쩌면 자연이 부여한 돌아봄의 시간일 것이다. 이 돌아봄을 통해 그림자를 마주하고, 포용하여 나아가라는 자연이 부여한 정비의 시간이 아닐까?


 그렇게 비오는 날은 재생의 시간이다. 밖을 향한 질주에 휴식을 부여하고 안을 향한 정비로 하여금 힘을 모아주는 재생의 시간. 실제로, 자연속에서 비오는 날은 노폐물을 씻어내고, 자라나는 것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온 후 세상의 색은 더욱 선명해진다. 많은 콘텐츠의 에필로그에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함을 알리는 장면으로 맑게 갠 날의 아침 신선한 나뭇잎을 따라 한방울 물이 떨어지는 컷을 활용한다. 그렇게 비는 새로운 시간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렇기에 순수한 아이들은 비오는 날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게 아닐까?


 그러므로 비오는 날은 더 나아가기 위한 멈춤의 시간이다. 세차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어느새 잦아들고, 창문으로 빛줄기와 함께 매미소리가 들려온다. 이 잠깐의 비오는 시간이 준 돌아봄의 시간. 자연이 부여한 그 시간 동안 조금은 내 마음도 정화된 기분이 든다. 조금 후 외출할때 신발과 양말이 젖을 것이 신경쓰이지만 괜찮다. 젖은 것들은 반드시 마르고, 또 즐거운 시간들이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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