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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Aug 02. 2024

사랑의 찬가

파리올림픽, 셀린 디옹

 파리에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음색과 언어와 선율이었다. 올림픽을 열어가는 파리의 밤에 흐르는 셀린 디옹의 『사랑의찬가』. 에펠탑의 중간에 서서 별빛과 같은 흰 드레스를 입고 열창하는 노가수의 노래는 희귀병에 투병중인 이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한 힘과 울림이 있었다. 여러 평이 갈리던 파리 올림픽의 개막식이었지만, 이 무대만큼은 모두의 찬사를 아낌없이 받았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이다. 좋은 기회로 한달 가까이 머문 적 있는 이 도시는 전통과 예술이 어우러진 곳이다. 오랜 건물과 도보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와 같이 언제라도 벨 에포크로 초대받을 것 같은 분위기를 뿜어낸다. 대가들의 작품을 품은 미술관에는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따라 그린다. 아름다운 다리들과 따뜻한 온도의 가로등은 세느강을 꾸며낸다. 이 도시에서 피를 대가로 현대 민주정을 열어낸 기념비적인 혁명이 있었고, 자유, 평등, 우애의 가치는 오늘날 더 나은 인류와 세상을 꿈꾸는 예술로 계승된 듯하다.

 올림픽의 세세한 결과들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개막식과 폐막식은 뒤늦게라도 챙겨보곤 한다. 냉혹한 국제 질서속에서 온실과도 같이 인류애를 부르짖는 이 철없는 행사가 냉소와 비관속에서 희망과 낙관을 찾으려 아둥바둥 거리는 내 모습과 비슷해서일까? 그래도 매번 개최국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연출해내는 인간 문화의 성과와 인류애는 항상 오묘한 뭉클함을 느끼게 해준다.


 결국은 사랑이다. 모두 답을 알지만 도달하지 못하는 결론. 인류는 사랑으로 생존해왔고, 사랑으로 고고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생존에 대한 걱정이 부재한 가운데 질투와 혐오로 점철된 이 시대는 그 풍요로움만큼이나 거대한 고통들을 겪고 있다. 여기서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은 지나치게 천진한 것이 되어버렸다. 마치 혐오를 채택하는 것이 우월전략인 거대한 죄수의 딜레마를 보는 듯하다.


 그 가운데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사랑의찬가』는 애처롭지만 잊고있던 것들을 노크하는 듯 하다. 병마를 극복하며 부르짖는 사랑이라니, 얼마나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가? 결국은 사랑이다. 나에 대한, 가족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인류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점증적 사랑. 이것은 모든 종교가 이야기 하는 것이며, 예술사에 남은 걸작들이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을 이야기한 이들은 고통 받는 인류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선지자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를 현실주의의 기치 앞에 온갖 잔혹함을 묵인하는 국제사회가 겸연쩍게 내보이는 일종의 기만과 같은 이벤트로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성격이 있더라도, 한 시점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남겨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남아있는 인간으로서의 양심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이 아름다운 도시의 중심에서 울려퍼진 노가수의 찬가는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심어둘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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